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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국사, 고려실록, 구삼국사 우리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 동문선 기타 등등국보로 등재된 거의 모든 책들이 인출되어 나온 것이다 보니 인쇄본에 대해 좀 무감각해지는 감이 없지 않은데,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일본의 경우 헤이안시대까지의 역사를 담은 소위 육국사 모두 필사본으로 에도시대 이전까지 그 상태로 내려왔다. 목판화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말이다. 고려시대에 있었다는 실록. 임진왜란때까지 경복궁에 보관하다가 전란 당시 다 태워먹은 것으로 되어 있다만이게 무슨 인출본일 리가 없다. 필사본이었을 것이다.일본의 경우 육국사 중에 일본서기를 제외한 나머지는 말이 역사서지 이건 전부 실록이나 다름없는 기록들인데전부 필사본이었다. 고려실록도 딱 한 부, 필사본이었음은 당연한 이아기겠다. 삼국사기 이전에 있었다는 구삼국사. 인출된 것일까.. 2025. 1. 27.
금속활자의 경제학 금속활자의 출현은 경제적인 문제였을 것 같다. 목판으로 뭔가 수지타산이 안 맞으니 적은 부수를 싸게 인출해 낼 방법으로 활자인쇄가 성행했을 것이라는 말이다. 우리나라 목판 인쇄에서 대략 몇 부 정도 찍어내야 필사의 비용을 확실히 넘어설 수 있었을까. 우리나라 목판인쇄, 활자인쇄 등등은 아마 돈의 원리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을 것 같다. 어떤 책이 왜 목판으로 나왔는가, 왜 활자로 찍혔는가, 왜 필사가 되었는가, 결국 돈 아니겠는가? 경제적 문제가 책의 형식을 결정했을 것이라 본다. 이것 남아 있는 문서들을 잘 살피면수학 공식화할 수 있을 수도 있고, 이 공식으로 부터 당시의 인쇄와 관련된 경제적 사정을 역으로 유추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 editor's note ***  전통시대 한국 출판은 상업.. 2025. 1. 27.
인쇄의 경제학 한국 정도 나라의 크기 경제 규모에 독자층 규모를 생각하면경제적으로 더 유리한 것은 목판이 아니라 활자본 아니었을까. 목판인쇄를 하면 손익분기점이 대략 몇 부였을까. 몇 부는 찍어야 필사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계산이 나오지 않을까.책의 두께도 중요할 것이다. 두꺼운 책일수록 활자가 유리할까 목판이 유리할까. 조선시대 우리 조상님들이라고 해서 책 인쇄 해 찍어 내는데 그 정도 수지타산도 안 따져봤겠는가 책을 딱 보면 목판으로 할지 활자로 할지, 목판으로 한다면 몇 부나 찍을지대략 견적을 내지 않았을까. 그러면 이러한 수지타산에 도저히 안맞는 목판 인쇄도 있었을 텐데, 그것을 필자는 고려시대 대장경 사업과 조선시대 송자대전 같은 것이라 본다마는, 이런 목판은 목표가 서책의 인출이 아니었을 것이다. 서책이야.. 2025. 1. 27.
조선시대 목판인쇄에 대한 의문 조선시대 활자인쇄는 그렇다고 치고 목판인쇄-. 목판인쇄를 하고 나면 충분한 부수가 인출되어 목판을 만든 수고와 경비를 상쇄하고도 남는 경우도 물론 경우에 따라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같은 시기 일본은 거의 목판이 없다. 에도시대 이전 이야기다 . 왠 만한 건 전부 필사본이다. 일본서기 고사기 심지어는 육국사까지도 에도시대 이전 흘러 내려오는 것들은 모두 필사본이고 독서층이 급증하는 에도시대 이후에나 이런 책들은 인쇄되어 산출되었다. 문제는우리나라 책들인데 우리는 물론 필사본도 많겠지만 인쇄본이 정말 많은 것 같다. 활자본은 그렇다고 쳐도 과연 이 많은 목판 인쇄본이 경제적으로 타당한 것들이었을까.예를 들어 팔만 대장경초조대장경까지 하면 16만장 이라는 건데 도대체 이 팔만 대장경 몇 부나 인쇄했을까. .. 2025. 1. 27.
[사금갑射琴匣을 심판한다](5) 정월 15일은 절요와 통감 논술이다 삼국유사 역주본으로 국가기관에 의한 웹서비스까지 장착하는 바람에 가장 널리 활용되는 것이 한국학중앙연구원, 옛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판이라 할 수 있거니와, 이에는 당시까지 거의 모든 관련 연구성과를 집약했다 할 만한 노작이다. 그에서 사금갑을 역주하면서 저 사금갑 사건 발단이 되는 무대 천천정天泉亭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주석이 있다. 현재 천정정이 어디에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신증동국여지승람≫ 권21 경주부 고적조에는 신라 소지왕 10년 정월 15일에 왕이 천정천에 행차하였다고 하여 ≪삼국유사≫의 기사보다 자세한 날짜를 기록하고 있다. 반면 ≪삼국사기≫에는 이와 관련된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명색이 역사로, 고대사로 밥을 빌어먹고 산다는 자들이 아무도 삼국사절요와 동국통감을 아무도 보지 않았다고 내가.. 2025. 1. 27.
[외치이야기-5] 관광도시에서 연구도시로 바뀐 볼차노 볼차노는 전술한 것처럼 등산과 스키, 휴양의 도시였는데 이곳으로 30여년전 5천년 된 외치 할아버지께서 이 도시로 강림하시면서이 도시는 그 성격이 일변하게 되었다. 먼저 외치를 보존하고 관련된 유물을 연구하기 위한 전용 박물관이 건설되었으니, 그것이 앞서 설명한 남티롤 고고학 박물관(South Tyrol Museum of Archaeology)이다. 이 도시에는 외치 연구만을 위해 움직이는 연구소도 하나 있다. 미라를 위한 연구소인데, Institute for Mummy Studies라 한다. https://www.eurac.edu/en/institutes-centers/institute-for-mummy-studies Institute for Mummy StudiesSnapshots of the pas.. 2025. 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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