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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의 중요성 방영한지 20년이 훌쩍 지났음에도 아직 짤, 밈으로 살아 숨쉬는(?) 드라마 . 그 2부에서 가장 유명한 밈이라고 하면 아마 아래 사진일 것이다. 사실 이 주인공 심영沈影(1910-1971(?))은 이런 밈으로 소비되긴 좀 아까운 인물이다. 고종 때 예조참판을 지낸 심상학沈相學(1830-1890)의 손자였던 그는 젊어서부터 무용, 노래, 연극, 영화 등 다방면에 재주를 발휘한 배우였다. 그리고 그는 총을 맞고도 어쨌거나 치료 받고 멀쩡히 살아서 월북했고, 70년대 초 숙청당할 때까지 북한 정권 아래에서 승승장구했다.하지만 워낙 의 인상이 강해서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심영' 하면 "내가 고자라니!"를 떠올리곤 한다. 그런데 고려 초기에도 그런 오해를 받을 만한 사람이 있었던 모양이다.《고려사》를 보면 .. 2024. 12. 26.
주간을 틈탄 바티칸 2차 공습 어제 이어 오늘도 성탄 연장이라고국에 있는 친구가 마침 희년을 맞아 바티칸 성문을 내년 초까진 열어준다는 정보를 주었으므로야경 맛본 성 베드로 대성당으로 발길을 옮겨 코폴라로 직행했다.성당이 삥을 왜 뜯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오르는 길이 공짜는 아니어서 엘리베이터는 15유로, 걸어서는 10유로라 돈 좀 아껴 맛난 거 먹겠다 해서 뚜벅뚜벅 걸어올랐으니아들놈은 정상에 오르니 이미 땀으로 범벅이라 오늘 저녁 벌써 빨래 걱정이 앞선다.그래도 힘들게 오르고 나서 와 탄성을 지르니 그걸로 보람을 찾지 않겠는가?그 위에서 내려다 보는데 문젠 시스티나 예배당이 어딘지 헷갈려 저 어디메쯤이라 퉁치고 말았다.교황 할아버지는 저 어딘가서 사신다 하고 말았으니 내가 알게 뭐람.암튼 이곳에 오른 이상 로마 절반은 본 것이요 나머.. 2024. 12. 26.
헤이안 시대 (3): 무가정권이 주는 그늘 앞에서 헤이안시대 문화수준은 한반도에 방불할 정도로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음을 이야기했지만, 왜 한반도에서는 일본의 문화수준을 낮게 보는 시각을 근세까지 유지했는가. 바로 무가정권 때문이다. 무가정권이 시작되면서 헤이안시대에 쌓아 올린 지적 성과들은 이른바 공경과 승려들에게로 퇴축되었고 이를 대신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무사들은 솔직히 필자의 생각으로 볼 때 글이나 알았을까 싶은 자들도 상당히 있다. 물론 그 중에는 헤이안시대 이래의 문화적 유산에 감화해서 인텔리 사무라이로 자처한 이들도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러한 식자층의 위축은 간단히 다음 사실이 반영한다. 일본에는 에도시대 이전, 전해오는 문적에는 목판본이 많지 않다. 대부분 필사본이다. 비교적 많은 수의 문적이 남아 있지만 대부분이 필사본이며목.. 2024. 12. 26.
로마 컵라면 실종사건 어제 로마 입성하고서 성탄절이라 잠깐 앞에서 바티칸 구경을 했으니그래도 교황님 집이 어케 생겼는지는 보여주고 싶어서였다.이곳은 호텔 생활이라 아파트 임대한 아테네랑은 달라서 아무래도 셋이 한 방을 쓰다 보니 좀 좁아서 불편한 점이 있지만 나는 드디어 밥을 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났다.문제는 새로운 과제가 출현했으니 빨래다.물론 빨래방을 이용하면 되겠지만 일단 내가 직접 손빨래를 한다.셋이 내어놓는 빨래가 한 아름이라 호텔 온 방이 빨래 천지다.바티칸 다녀오는 길에 한인마트에 들렀다.컵라면을 잔뜩 샀다.잔뜩이라지만 순식간에 사라진다.두 개를 한꺼번에 해치우더라.호텔 바로 앞이 미니 마켓.그걸 먹더니 마실걸 사오겠다 나간 놈들이 빨래가 끝날 때까지 안들어온다.전화를 해서 혼꾸녕을 냈다.여기가 서울인 줄 아.. 2024. 12. 26.
헤이안 시대 (2): 중국식 왕조의 수준 일본의 헤이안시대는 대략 우리의 통일신라시대에서 고려초기에 해당하는데 이 시대는 견당사 파견이전까지 한반 도를 통해 대륙문화를 섭취하던 일본이중국으로부터 직접 문화를 수용하여 비약적 도약을 한다는 데 있다. 우리가 일본사에 대해 관심이 없으면 흔히 생각하는 오류 중 하나가 일본은 근세 이전까지 항상 한국에 대해서는 문화적 수혜자의 입장에 있었다는 생각인데, 이런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일본의 헤이안시대는 문화적으로 볼 때 한반도의 수준을 방불하거나일부 추월한 측면도 많이 보여준다. 통일 이전의 정치사회 체제를 계속 고수한 신라에 비해 헤이안시대 일본은 중국식 정치체제로 일변하고 문화적 수준도 상당한 정도에 도달했다. 예를 들어 이 시기에는 일본사에서 이른바 육국사라는 것을 남긴 시대인데, 육국사 중 .. 2024. 12. 26.
헤이안시대 (1): 이른바 율령국가를 다시 본다 일본사에서 말하는 율령국가를 한국사에 그대로 적응하여역사의 발전단계를 설정하고자 하는 시도도 보지만, 필자가 생각하는 바 율령국가, 혹은 율령제란 일본사에서나 의미가 있는 것이지 한국이나 중국사에서는 적용하기 힘든 개념이라 본다. 율령국가란 일본사에서 이른바 무가 정권, 헤이케 정권 이래 도쿠가와 시대까지 무가 정권의 대척점으로 설정된 개념이다. 쉽게 말해 중국식 왕조라는 뜻이다. 율령으로 지배하느냐 마느냐 이런 건 하나도 중요한 게 아니다. 무가정권시대라고 해서 칼로만 통치했던 것은 아니다.그 시대 역시 사회를 통제한 법규는 존재했으므로 굳이 율령국가라는 법치제체가 한 시대의 특징인양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율령국가란 헤이케 정권 이래 무가정권을 경험한 일본사에서 이와는 다른 성격의 중국식 왕.. 2024.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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