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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 왕국 원에서 왜 고려청자를? 1289년(충렬왕 15) 8월, 탐라에 있던 원나라 관리가 잠깐 대도大都(지금의 베이징)에 갔다(출장이었을지 휴가였을지?).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겸사겸사, 원나라 중서성中書省 부탁을 고려 조정에 전해주는데. 무오 탐라안무사耽羅安撫使 홀도탑아忽都塔兒가 원에서 돌아왔는데, 중서성이 첩牒을 보내어 청사靑砂 항아리[甕]와 동이[盆]·병甁을 요구하였다. - 권30, 세가 30, 충렬왕 15년 8월 아마 당시에는 청자를 청사기靑砂器라고 불렀던 모양이다. 그때도 용천요龍泉窯 같은 데서 고급 청자를 버글버글하게 구워냈는데(신안해저유물의 그 많은 그릇을 생각하시라!) 왜 고려청자를 따로 또 요구했을까. 고려청자를 원나라 사람들도 높이 평가해서-라고 생각하면 간단하지만, 글쎄 그렇게만 넘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남는다.. 2023. 7. 11.
통권 100호 맞은 문화재전문 잡지 《文化財》 현재는 국립문화재연구원이 연 네 번 발간하는 문화재 전문 잡지 《文化財》가 1965년 제1호를 낸 이래 58년 만에 통권 100호를 냈다. 창간 때는 문화재관리국이 발간하던 이 잡지는 1999년 제32호를 시작으로 지금은 국립문화재연구원으로 간판을 바꾼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내기 시작했다. 중간에 우여곡절은 없지 않아 건너 뛴 해도 있었으니, 원칙은 매년 1호씩 간행하다가 2008년에 접어들어 반년간지로 개편하고 2009년 제43호 이래 계간지 체제로 바꾸어 오늘에 이른다. 1997년 제30호(1997) 이후에는 컬러판을 적용한다. 창간사는 당시 문화부장관 권오병權五柄 이름으로 작성했으니 “선전계몽지宣傳啓蒙誌를 발간하여 세상에 문화재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연구의 체계화를 도모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 2023. 7. 11.
총무처 장학생 출신 소장님이 낸 디지털고고학 요즘도 이 제도를 다른 정부 부처에서 계승해 시행 중인지 자신은 없는데, 그 옛날엔 총무처 장학생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소정의 선발 과정을 거친 대학 재학생한테다가 국가가 장학금 일체를 지불하고 그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졸업과 동시에 국가공무원으로 정식 채용하는 방식이다. 문화재청 공무원 중에도 이런 총무처 장학생 출신이 있어 학예직을 보면 그 대표가 서울시립대 교수로 튄 신희권이랑 얼마전 마침내 국립문화재연구원 산하 지방연구소장 자리를 먹은 최인화가 대표다. 얼마전 퇴직한 김용민 선생도 이 경우 아닌가 기억한다. 희권이는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정부미요, 인화는 부산대 고고학 예비 정부미라, 둘은 졸업과 동시에 요새는 언감생심 꿈도 못꾸는 국가직 공무원 정식 학예연구사가 되어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이런.. 2023. 7. 11.
달라지는 시대 달라지는 노년 나이든 세대가 착각하는 것의 하나는, 앞으로 노동력이 부족하니 정년연장이 될 것이다 그러면 더 일할수 있게 될 것이라고 낙천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물론 노년에도 일하는 상황이야 앞으로 오겠지만, 그 모습은 지금 50-60대가 그리는 모습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1. 연금의 지급연령 조정 ; 연금지급액수의 조정 : 당연한 이야기지만 정년이 늦어진다는 것은 연금지급연령이 뒤로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연금지급액수도 무슨 명분을 붙여서든간에 줄일 것이다. 노년층이 반대하더라도 이것은 젊은 층 때문에 결국 이렇게 갈 것이다. 2. 정년연장이 지금 하고 똑같이 몇년 더 일하라고 놔두는 것이다? : 흔히 착각하는 것의 하나가 지금 일하는 그대로 몇년을 더 일하게 놔둘 거라는.. 2023. 7. 11.
일선기자보단 언론사주를 선택하며 심신 갈아넣은 K컬처기획단장 3년을 만땅으로 채우고선 나한테 두 가지 길이 있었다. 하나는 문화부 일선 기자로의 복귀요 다른 하나는 기타의 길이었다. 저짝에서는 혹 내가 전자의 길을 생각하지 않나 생각했을 수도 있겠지만, 또 내가 내 인사권을 행사하지는 못하는 까닭에 나로서야 가라는 데로 갈 수밖에 없지만 그 자리서 후자를 선택했고, 그런 의사가 반영되었는지 암튼 내가 원한 데로 낙착했다. 앞날을 어찌 알겠는가? 다만 내가 이 자리를 선택할 때는 이 자리에서 끝내고 싶다는 생각만큼은 확고하다. 해고에 앞서 17년간 몸담은 문화부 기자생활, 더 구체로는 문화재 기자는 그것을 마무리하는 모양새가 좀 우습기는 했지만, 어차피 끝내야 할 시점이었다. 그러면서 다시는 그 일선기자로 돌아올 날은 없을 것이라 다짐했.. 2023. 7. 11.
변신은 숙명, 내가 화학을 심각히 고민한 이유 앞선 많은 글에서 나는 작금 학계 풍토를 성토하며 변해야 함을 역설했거니와 그런 나는 도대체 어떤 점에서 새로운 것들을 던졌냐 자문하면 결국 공중에다 대놓고 침을 뱉는 행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내가 한창 그 돌파구로써 도교를 착목하면서 이른바 신라 화랑도란 것도 알고 보면 간단해서 위진남북조시대 중국대륙을 강타한 도교 일파 중 신천사도 오두미도의 신라식 버전이며 나아가 비슷한 맥락에서 도교학은 실상 90프로가 약물학, 특히 우리가 한의학이라 요새는 통칭하는 그 약학임을 주창하며 무엇보다 신라 적석목곽분을 수놓는 그 무수한 금은옥金銀玉 역시 광물로서 약물이기도 하다는 점을 소리 높여 외치고 또 한편으로는 그 신학의 발현이라는 측면에서 이른바 진흥왕순수비는 봉선대전의 기념물이요.. 2023. 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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