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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마음 속 저장하는 즐거움 : 박물관 교육은 이런 것이 재미있다! 입버릇처럼 늘 말하곤 했다. 쉬운 일 따윈 없다고. 엄살 같은 말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는데, 정말 그렇다. 멀리서 볼 때는 쉬운 일이었는데, 막상 내가 하려면 어려운 것들이 너무 많았다. 관람객들이 그냥 보고 지나치는 짧은 네임텍 조차 쉽지 않다고, 네임텍 원고를 쓸 때마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고 진심으로 남들에게 말했다. 이런 내 말에 ‘네임텍 따위 그다지 길지도 않은데’라고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런데 최근에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어려움이 생겼다. 요즘의 나에게 어려운 일 최근에 과를 옮겼다. 교육 업무는 그래도 간간이 해본 적은 있으나, 본격적인 업무가 된 것은 처음이다. 초등학생 교육은 직접 진행도 해본 적이 있으니 적응할 만 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이것만큼은 땀을 삐질삐질 흘려야했다.. 2023. 6. 4.
윤동주와 "방계입학" 일제시대 조선에는 대학이 거의 없어 전문학교 졸업생들, 특히 연전과 보전 졸업생은 많이들 일본으로 가 대학을 다녔다는 이야기를 썼다. 그런데 당시 일본에는 많은 "전문대학"이 있었는데 이들은 졸업 후 어떻게 살아갔을까? 아래 위키의 "구제전문학교"항목에 답이 있다. 旧制専門学校における教育は完成教育であり、卒業生の大半は大学等に進学せず企業や官公庁等に就職して社会に出た。制度上は「傍系入学」という形で帝国大学等の官立大学に進学することも可能ではあったが、進学するものは少なかった。例えば横浜高工の場合、大正12年から昭和12年の15回の卒業者2081人のうち、上級学校に進学したものは37人のみであった。就職者は会社工場技術員1284人、官庁技術員372人等であった[8]。 구제전문학교라는 것은 쉽게 말해서 계속 공부하여 학문적 성과를 쌓아가는 과정.. 2023. 6. 4.
목소리의 볼륨을 낮춰야 할 식민지시대 연구 우리나라 일제시대 연구는 그 결론의 격앙됨에 비추어 보면 내용이 없다. 흥분은 있는데 팩트는 없다. 논문에서 일본인들의 속셈이 뭔지 다 가르쳐 준다. 드라마 대본에서 혹시 청중이 이해를 못할까봐 배우가 줄거리를 요약해주는 꼴이다. 술자리나 블로그에서나 나와야 할 감정의 토로가 논문을 횡행한다. 궁금해서 조금만 찾아보면 응당 있어야 할 초보적 팩트 규명도 안되어 있다. 일제시대 차별을 이야기하면서 일제시대 교육제도 변천에 대한 초보적 연구도 안 되어 있다. 기본적인 팩트 규명도 안 된 판국에 일제시대가 맞네 일제강점기가 맞네 그게 뭐가 중요한가? 그런 자치통감 정통론 같은 소리를 하며 싸우는 거 보다는 일제시대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었는지 그거나 제대로 규명하는 것이 당시 조선인들이 어떻게 고생하고 .. 2023. 6. 4.
연희전문이 4년교육을 한 이유 이 부분에 대해서 필자의 생각을 써 본다. 연희전문이 3년이 아니라 4년 교육을 한 이유에 대해서는 몇 가지 이유가 추정된 것이 있는데, 필자 생각으로는 연희전문이 대학 승격을 노리고 있었다는 설이 옳다고 본다. 왜냐-. 연희전문이 4년 교육을 택한 것은 조선교육령에 의한 것이다. 조선교육령에 의하면 전문학교는 3년 혹은 4년 교육을 한다고 되어 있다 하였다. 3년이건 4년이건 선택해서 할 수 있다는 이야긴데 이 경우 대개 3년 교육을 택했다. 수업 연한이 짧을수록 빈궁한 조선에서는 많은 지원자가 올 것은 당연한 이야기다. 앞에서 쓴 것처럼 전문학교는 의대를 제외하면 거의 3년제였고 의대는 전문학교이건 경성제대 본과이건 간에 모두 4년 제였다. 일본에서는 1919년 대학령 발효 이후 전문학교가 대학으로 .. 2023. 6. 4.
일제시대의 지식인: [11] 이효석과 [12] 유진오 메밀꽃 필 무렵의 이효석은 당대 최고의 학벌을 가진 사람이었다. 평창공립보통학교 (1914-1920년) -- 경성제일고보 (1920-1925) -- 경성제대 예과 (1925-1927) -- 경성제대 본과 (법문학부 문학과, 영문학) (1927-1930) 이효석의 프로필은 일제시대 조선 교육이 완성되었던 당시의 교육제도를 잘 보여준다. 보통학교 6년 -- 고등보통 5년 -- 제대 예과 2년 -- 제대 본과 3년이다. 그 당시 이 정도로 순탄한 교육과정을 조선 땅에서 밟아 졸업 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의 1년 선배라는 유진오 정도가 아마 그 예가 될것이다. 유진오의 프로필은 다음과 같다. 재동보통학교(1914-1918) --경성고등보통학교 (1919-1924)-- 경성제대 예과 (1924-1926) --.. 2023. 6. 4.
일제시대의 지식인: [10] 시인 이상 시인 이상은 잘 알려진대로 정식으로 문학을 공부한 사람은 아니며, 오히려 당시 공업전문을 졸업한 엔지니어 출신이다. 신명학교(新明學校) (1921) -- 보성고보 (1926) -- 경성고등공업 건축과 (1929) -- 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수 (기사?) 이것이 그의 프로필이다. 신명학교는 보통학교인데, 이상이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4년제였다. 4년제 보통학교-5년제 고보를 졸업하면 고등학교 (전문학교)를 입학하는데 필요한 수업연한에서 2년이 모자라는데, 아마 이 당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떠한 형식이라도 경과조치가 있었을 것 같다. 아무튼 보성고보 5년 졸업 후에는 중졸 학력이 되어 경성고등공업에 입학했다고 한다. 경성고등공업은 전문학교로 고등학교 과정이다. 당시 경성고등공업은 3년제였으니 정확히 3년.. 2023.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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