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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벡스 뿔로 받친 향로 기원전 10세기 무렵 이란 아제르바이잔Azerbaijan에서 출토한 아이벡스ibex 모양 청동 스탠드stand다. 보다시피 이 스탠드에는 아이벡스 뿔 위에 고리가 달려 있는데, 이 고리에는 그릇을 담았을 것이다. 미국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에 있는 월터스 미술관Walters Art Museum이 소장한다. 저 유물을 검색하니 저 박물관에서 아래와 같은 정보를 제공한다. Iranian (Artist) ca. 10th-9th century BCE (Iron Age) bronze (Ancient Near East ) Geographies Iran (Place of Origin) Azerbaijan (Place of Origin) Measurements H: 13 3/8 x W: 11 13/16 x D: 6 7/.. 2024. 8. 17.
미국 절반을 영향권 아래 두는 미시시피 The Mississippi River and its tributaries, 곧 미시피시강이 영향을 미치는 유역면적이라는 개념이라, 이걸 보면 미국에서 미시피시피 강이 차지하는 막중한 위상이 다시금 드러난다. 강 길이와 유역 면적은 비례하지 않는다. 비슷한 길이라 해도 나일강 같은 경우는 기럭지만 길지 계곡 혹은 사막을 흐르는 바람에 유역 면적이 상대적으로 좁으며 역시 비슷한 크기지만 아마존이나 저 미시시피, 그리고 장강 같은 경우는 그 미치는 범위가 무지막지하게 크고 넓다. 저런 유역 면적이 큰 강은 축복과 재앙이 동시에 존재한다. 곧 물이 넘치면 넋 놓고 당할 수밖에 없으니 저 면적이 다 물에 잠긴다 헤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양자강이라고도 하는 중국 장강 봐라. 그게 넘치면 중국 절반이 물에 잠.. 2024. 8. 16.
1900년 전 이집트를 놀던 아이가 갖고 놀던 인형 천이 삭아서 그렇지 요즘 흔한 인형과 다를 바가 하등 없다. 이 인형은 Doll made of linen, with real human hair, real gold jewellery and leather cuffs라 해서 저 머리를 장식한 머리카락이 실제 사람 머리카락이라 하며  실제 금 장신구를 달았고 가죽 커프cuff를 입혔다 했으니, 저런 인형을 쓸 수 있는 집안 아이가 보통 집이겠는가? 하긴 뭐 가난한 집 아이들이 무슨 장난감이 있겠는가?이른바 금수저급 집안 아이가 갖고 놀던 거라 봐야 할 것이다. 제작 시기는 서기 2세기 무렵이니, 우리로 치면 신라 파사니사금 시대 이야기다. 저 무렵 이집트는 이미 로마 제국 지배를 받던 시절이라, 아무래도 짙은 로마 문화 영향이라 해야겠다. 지금 이집트 카이로.. 2024. 8. 16.
제우스 불륜의 씨앗 디오니소스와 그를 돌보는 여인들 이탈리아 시칠리아 팔레르모 소재 A. 살리나스 고고학 박물관[A. Salinas Archaeological Museum] 서기 2세기 무렵 로마시대 바닥 모자이크 한 장면이다. 사티로스Satyr와 메나데Menade가 보인다. ​ 메나데는 방랑자 디오니소스Dionysus와 동행하는 여성들이다.제우스가 바람을 피워 세멜레Semele라는 여인한테서 낳은 아들 디오니소스는 태어난 후 제우스 조강지처로 질투의 화신 헤라Hera한테서 보호하고자 헤르메스Hermes가 메나드 여인들한테 맡겨 이 여인들한테서 양육되고 보살핌을 받았다. 2024. 8. 16.
호태왕비에는 연나라와의 싸움이 없다 재미있는 부분은-. 삼국사기의 광개토왕 기사는 영락 6년의 백제토벌 이전의 백제와의 싸움, 그리고 연나라[후연]와의 싸움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반해, 광개토왕비에는 연나라와의 싸움이 거의 기록이 되어있지 않고 반면에 삼국사기에는 없는 한반도 남정기사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삼국사기와 호태왕비는 서로간에 교집합부분이 크지 않고 별개의 사건을 각각 적고 있는 셈이다. 왜 그럴까? 필자 생각으로는 광개토왕비가 세워지던 당시까지도 호태왕이 싸웠던 연이 그대로 존립하고 있었던 부분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다시 말해 이 부분에 있어서도 광개토왕비는 있는 그대로 사실을 직필한 사서가 아니라, 당시의 정치군사적 상황을 많이 감안한 기록이라는 김단장의 의견에 공감한다. 광개토왕비문이 객관적인 사서에 준하는 기록물.. 2024. 8. 16.
광개토왕의 남정이 사서에서 빠진 경위 현재 삼국사기의 고구려본기는 김부식이 손을 많이 댔다기 보다, 전해 내려오는 고구려 사료를 많이 그대로 인용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예를 들어 고구려본기 앞부분은 신집의 내용을 그대로 받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있나 보다. 그런데-. 고구려본기 광개토왕조 기록을 보면, 전술한 바와 같이 광개토왕의 남정기사, 백제 아신왕으로부터 항복을 받은 사실,신라의 요청으로 출병한 사실, 왜병을 신라영토에서 구축하고 가야까지 쫒아갔다는 사실 등 일련의 기록이 누락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백제와의 기록이 전무하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 남정기사 이전의 기록은 매우 상세하다. 그렇다면-. 광개토왕비에는 있었던 남정기사가 언제 기록에서 누락되기 시작했을까. 이를 추정해 보면, 첫 .. 2024.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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