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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으로 육고기 충당은 조선시대까지도 그랬다 흔히 신석기시대는 초보적 농경(?)으로 잡곡이나 좀 짓다가, 먹거리가 모자라니 산에 들에 멧돼지 잡고 꿩 잡고 돌아다니며 살았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필자가 보기엔 그게 아니다. 육고기 충당을 사냥으로 하고 돌아다닌 건 우리나라 삼국시대 고려시대는 물론이고 조선시대 후기까지도 그랬다. 우리나라는 농가에서 가축을 키워 그것을 잡아 먹으면서 단백질을 보충한 그런 나라가 아니다. 조선시대 후기까지도 닭보다 꿩을 훨씬 많이 먹었고, 우리나라 발굴 현장에서 사슴뼈가 사라지고 돼지뼈가 더 많아지는 것이 생각보다 무지하게 늦다. 육고기를 사냥으로 충당한다고 해서 그것이 "수렵사회"는 아니라는 말이다. 조선후기가 "수렵사회"여서 될 말인가? 신석기시대도 마찬가지다. *** previous article *** 신석기시대 .. 2024. 7. 4.
투탕카멘 엄마 키는 158센티미터 공식적으로 투탕카멘 왕의 어머니이자 KV55(몇몇 연구자는 아케나톤Akhenaten이라 하지만 공식화하지는 않았다)로 알려진 미라의 완전한 친누이로 확인된 이 “젊은 부인 Younger Lady” 미라는 아멘호테프 3세 왕과 그의 위대한 왕비 티예Tiye 사이에서 난 딸이다. 이 “젊은 부인”에 대한 현대적인 분석에 따르면 그녀가 죽었을 때 나이는 25~35세 사이였고, 키는 158cm였다.최근의 CT 스캔은 또한 아들 투탕카멘과 마찬가지로 이 “젊은 부인”이 사랑니가 나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는데, 이 또한 그녀가 젊은 나이에 죽었다는 또 다른 지표이기도 하다.  이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소식은 다음 참조.  https://egypt-museum.com/tutankhamuns-mother-the-young.. 2024. 7. 4.
신석기시대 농경 어찌 봐야 하나? 우리나라 신석기시대 농경에 대해서는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신석기 시대 유적에서 조, 기장을 비롯한 쌀, 보리, 밀, 콩, 팥 등의 탄화 곡물이 다수 확인되어..." 필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것이다. 조, 기장, 쌀, 보리, 밀, 콩, 팥을 키우고 있었다면, 아니 여기서 쌀과 보리는 빼도 좋다. 조, 기장, 밀, 콩, 팥만이라도 한 번 동시에 키워보기를-. 산에 들에 멧돼지 꿩 잡고 도토리 주우러 다닐 시간이 나나 안나나. 저렇게 다양한 곡물을 동시에 재배하고 있었다면 그게 어떻게 초보적 농경이 될 수 있는 것인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밭에다 씨만 뿌려 놓는다고 가을 되면 그게 다 익어 추수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 세상에 그런 농사는 없다. 뭔가 쌀 농사를 대대적으로 해야 제대.. 2024. 7. 4.
다리우스가 닦은 아케메네스 고속도로 도로를 정비하지 아니하고서 무슨 국가 통치를 하겠는가? 이 점에서 한반도 전근대는 재앙이다. 도로다운 도로도 없어 수레 하나 제대로 다닐 길이 없었다. 물론 전국토 70%가 산악이라는 특성에서 말미암기는 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간선도로 하나 없었다. 영남대로? 호남대로? 웃기는 소리. 그게 무슨 요즘 기준으로 도로 축에 속하는 줄 아는가? 그런 도로라 해 봐야 포장도 되지 않았다. 포장한 도로 봤는가? 기껏 왕성 혹은 왕궁이라 할 만 한데 흉내만 내다 말았을 뿐이다. 고갯길은 도로라도 있었던 것 같은가? 천만에. 오죽하면 육십령은 육십명이 모여야 비로소 통행을 허락하지 않았겠는가? 왜? 호랑이 산도적 때문이었다. 다리우스 대왕 Darius the Great (Darius I) 시절 기원전 5세기에.. 2024. 7. 3.
닳고 닳았으며 닳고 닳는 피사의 탑 계단을 보며 뭔가 하겠지만 그 유명한 이탈리아 피사의 탑 Tower of Pisa 돌계단이다. 나선형이라 저리 빙빙 돌아 사람들은 오르락내리락 한다. 하도 유명하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오가겠는가? 저 탑이 들어선 시점이 1373년이니, 물경 800년을 사람들이 오르락내리락하다 보니 저렇게 홈이 생겼다. 계단은 모두 294개. 그리 높은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녹록치는 않다. 사지 멀쩡한 젊은 시절에야 저것도 계단이냐 하겠지만, 조금만 아파보고, 조금만 나이들어봐도 저 계단이 얼마나 힘든 줄 알며, 전 세계 몇 십억 사람 중에 저길 걸어서 오르지 못하는 사람이 절반 이상이라는 사실을 하시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 각설하고 그 양태로 몇 백년을 저 지속하면 저 홈은 더 깊어질 것이며, 종국에는 아주 바닥을 드러낼 것이다... 2024. 7. 3.
천애절벽 올라 베히스툰 비문 조사하는 서 헨리 롤린슨 Sir Henry Rawlinson 베히스툰 비문 Behistun Rock이 인류사, 특히 고대 근동사는 물론이고 쐐기문자 판독에 결정타를 날렸다는 점에서 그 중대성은 이집트 문자를 읽게 만든 로제타스톤에 비견한다. 그 발판을 마련한 이가 19세기 중반 헨리 롤린슨 Henry Rawlinson 경이라는 영국 동인도 회사 군인이었다. 그는 이 설형 문자를 판독 번역해 냈다. 그의 초인적인 노력이야 뭐라 하겠냐마는 그 발판을 마련한 베히스툰 비문을 조사하고자 그가 저런 험준한 벼랑을 올라 그가 비문을 조사했다 해서 회화로 표현한 한 장면이다. 내가 볼 땐 저리 오를 수도 없고, 더구나 저 상태로 계속 조사한다? 밧줄을 매달고 대롱대롱 매달려 조사하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물론 내 막연한 추측이다. 지극히 극화한 상상화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2024. 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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