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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아들놈한테 주는 아비의 회한 *** 아래는 January 30, 2013 긁적거린 글이다. 아들놈한테 준다 했는데, 아들놈은 지 애비가 이런 글을 썼는지도 모르고, 공부랑은 일찌감치 담을 쌓았노라 써둔다. 언젠간 볼 날 있지 않겠는가 해서 옮겨둔다. 돌이켜 보면 내가 한문에 혹닉惑溺이랍시고 한 시절은 중2 무렵이었다. 줄곧 말했듯이 내가 나고 자란 고향엔 책이라곤 교과서와 전과가 전부였으니 한문 교재라고 있을리 만무한 법. 한데 어찌하여 그 무렵에 고등학교 한문책이 내 손에 들어오게 되었거니와, 한데 어찌하여 거기에서 동파東坡 소식蘇軾의 전적벽부前赤壁賦와 태백太白 이백李白의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를 알게 되었다. 중학생이 뭘 알겠냐만 그걸 번역문으로 읽고는 얼마나 가슴이 벅찼는지 그날로 단숨에 두 작품을 반복하여 읽고는 전체를 ..
독과점의 붕괴와 권위의 상실 권력과 권위는 독과점에서 비롯한다.인문학이 죽어간다는 아우성....이건 인문학의 보편화에 비롯한다. (함에도 인문학도들은 인문학이 죽은 것처럼 설레발을 친다.묻는다. 인문학이 죽었니?단군조선이래 인문학이 이토록 융성한 적 없다.) 기자 역시 마찬가지라, 한국사회에 국한하건대 그나마 있던 권위 혹은 권력조차 개차반으로 전락한 징조는 시민 누구나 기자를 표방한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의 등장에서 비롯한다. (요새는 유튜브가 대표하는 1인 매체, 1인 언론 전성시대라그 덕을 톡톡히 보는 대표 케이스가 유시민이라 그에다가 유시민은 일방적 한쪽 편들기를 표방하니 그 스스로가 어용언론임을 표방하는 자가 나타나는 시대를 내가 살 줄은 내가 꿈에도 몰랐다. 언론의 위기라 한다. 언론의 위기인가? 언론이 이렇게 융숭한 시대..
《천공개물天工開物》을 불태우라 업계물이란 게 있다. 저 《천공개물天工開物》과 《중국도량형도집中國度量衡圖集》이란 게 그 대표주자인데, 고고학입네 미술사입네 고건축입네 하는 것들로 방귀께나 낀다는 친구들 책상머리엔 모름지기 구비하는 이른바 공구서들이라 속내 뒤지면 개똥폼내자 하는 짓들이라 실은 생평 가도 먼지만 수북히 쌓이며, 개중 어떤이는 논문쓸 때 필요한 도판 긁어올 일 있을까 해서 놔두는 것뿐다. 나? 저런 짓으로 밥벌이한다는 놈들이라면 모름지기 책상머리에 있기에 아, 이걸로 밥묵고 살라면 모름지기 갖추어야 하는 갑다 해서 꿔다논 보릿자루 모양으로 갖다놨을 뿐이다. 고백하자면 저런 것들이 나를 계발하고 촉박하고 분발께 하는 건 눈꼽만큼도 없다. 내가 혹 학문으로 나름 의미없는 것들만 썼다 할 수 없다 한다면 그 자양은 저 따위 공구..
온갖 인간군상이 용트림하는 농촌 내가 자주 하는 말이다. 농촌을 낭만 혹은 순진무구로 보지 마라. 그곳에도 욕망이 불타고, 정념이 타오르며, 환멸이 일고, 분노가 치솟으며, 치정이 펄떡인다. 이랬더니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그게 낭만 아녜요?" 맞는 말이다. 농민이 순진무구? 이는 농민들을 등신으로 규정하는 말이다. 개중에는 온갖 군상이 있기 마련이라, 착한 사람도 있고 등쳐 먹는 놈이 있으며, 난봉꾼도 있다. 나는 민중을 믿지 않는다.
과거제의 효용성을 다시 생각한다 이하는 저와 동 제목으로 January 27, 2014에 긁적인 글이다. 지금 와서는 손대야 할 대목이 적지 않으나, 그때 나름의 생존 의의가 있다 생각해 그대로 전재한다. 예서 과거제란 점수 줄 세우기를 말한다. 지금의 수능은 전연 내가 아는 바가 없으므로 그 전 단계인 학력고사까지 포함하겠다. 줄세우기를 골자로 해서 그것을 통해 관료를 선발하는 과거제는 기록에 의하면 수나라에서 처음 시작했다 하지만 제대로 되지 않다가 唐왕조가 개창하고 나서 시행착오를 거쳐 이미 중당 이후가 되면 과거 출신자가 아닌 자에 대한 차별이 극심화한다. 이런 제도는 간단없는 비판에 시달렸으니, 가장 유력한 반론 근거는 인재의 선발과 적재적소 배치를 가로막는다는 것이었다. 그에 의해 그 이전 효렴孝廉이니 현량賢良이니 방정方正이..
박제가와 《북학의北學議》를 심판한다 조선 후기 실학을 논하면서 개중 하나로 박제가朴齊家(1750~1805)를 언급하면서 그가 수레 사용을 적극 주창한 점을 높이 평가하지만 이는 얼토당토 않는 주장이다. 한반도 사람들이 수레를 몰라 수레를 사용하지 않은 것 아니다. 산이 전국토 7할이었기 때문이다. 수레를 사용하려면 첫째. 지금의 고속도로 같은 도로가 구비되어야 하며 둘째, 그런 도로는 높낮이 차이가 현격히 낮아야 하고 셋째, 그런 까닭에 소백이며 태백이며 차령산맥 등지는 터널을 뚫어야 했다. 이것 없이 수레 사용 운운은 다 개소리라, 설혹 수레가 있다한들 도로가 없고 터널이 없는데 무슨 소용이리오? 박제가의 꿈은 그 200년 뒤에 이룩하게 되니 첫째, 일본넘들이니, 그들이 만든 경인선이며 경부선하는 철도가 그것이고 둘째, 박정희니, 197..
언론다운 언론이란 무엇일까? 내 아무리 기성 언론에 좌절하고 나 역시 그 기성언론인 한 사람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위 말하는 참다운 언론의 꿈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언론다운 언론이란 무엇인가? 과거엔 워낙에나 억누름이 많았고, 지금도 그런 사정이 나아졌다 물어본다면, 고개를 가로젓게 되지만 그 억누름에 대한 반발로써, 마음껏 표출의 욕망이 거세기 마련이다. 내가 저들을 잘못 평가했는지는 모르지만, 혹여 그렇다면 용서를 구한다만, 그런 반란 반발이 맘껏 표출된 적이 있었으니, 나는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 등장 초기가 바로 이에 해당한다고 본다. 저들은 그간 기성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권력 아래 억눌린 것들을 맘껏 표출했다. 적어도 나같은 곡학아세 언론인이 보기에는 그랬고, 그래서 참말로 부러웠다. 그렇다면 참언론은 무..
귀성전쟁..그 성립의 전제조건 추석이니 설날이니 해서 고향을 찾는 이 귀성행렬이 언제 생겨났는지는 모르겠지만 근대의 발명품 아닌가 한다. 첫째 이 귀성전쟁은 이농離農을 전제로 하거니와 이농 탈농脫農은 근대산업화 도시화 없이는 성립할 수 없다. 둘째 교통수단의 변화다. 말 타고 혹은 도보로 다니던 시대에 무슨 귀성전쟁이 있겠는가? 도로도 없다시피 했을 뿐더러 며칠 걸릴지 장담도 못하는데 무슨 귀성이란 말인가? 전근대는 귀성도 없고 귀성 전쟁도 없고 귀성 체증도 없다. 이 귀성전쟁은 내가 자세히 들여다보진 않았지만 우리한테 익숙한 이 풍경은 박정희 시대 중후반부 와서야 가능하다. 박정희 시대는 비단 이뿐만이 아니라 사회 각 부분에서 획기를 이루는 시대다. 단군 개벽 이래 변동이 가장 큰 시대는 일통삼한도 몽골침략도 임란도 병란도 한국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