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ESSAYS & MISCELLANIES2266 훈민정음 창제의 이면, 이토록 쪽팔린 민족 없다 현재 우리가 흔히 한글이라 부르는 한국어 문자표기 체계인 훈민정음이 완성되기는 1443년(세종 25), 그것이 공식 반시되기는 3년 후인 1446년(세종 28년)이다. 이 일을 어찌 대서특필하지 않겠는가? 반면 우리가 생각할 지점이 있다. 이 말은 곧 그 이전에는 한국어를 한국어로 표기하는 체계가 없었다는 뜻이다. 물론 한자를 빌려온 이두니 구결이니 하는 방식이 있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보조수단이었으며, 그것이 문자 표기체계로써 제대로 정착했다고는 볼 수 없다. 더 간단히 말해 한민족은 자기네 언어를 문자로 표기하는 체계를 550년 전에야 겨우 발명했다는 뜻이다. 이것이 얼마나 늦은가 하면, 저짝 메소포타미아 이집트는 볼 것도 없고, 동아시아 문화권만 해도 이런 나라가 없다. 그 존재조차도 잘 모르는 .. 2024. 10. 9. 파주를 파고든 고맙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 장기 출타가 코앞이라 되도록이면 운신의 폭을 줄이고자 하지만 가을바람 쐬자는 유혹 떨치지 못하고 친구들과 서울 가까운 곳으로 행차했으니 마침 절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어 내가 자주 찾는 서울 인근 곳으로야 수종사와 더불어 매양 보광사를 들거니와, 개중 다들 파주 보광사는 본 적 없다기에 올커니 잘됐다 해서 보광사로 길을 몰았다. 근자 같이 움직이는 멤버는 대학 친구 다섯인데, 꼭 한둘은 빵꾸가 나기 마련이라, 어제도 하나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탈락하고 넷이서 내 차로 움직였다. 보광사만 덜렁 둘러볼 수는 없어 이럴 때마다 내가 매양 파주를 찾는 코스를 찾아들었으니 그 대미는 저 오두산전망대였다. 이 오두산전망대는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하는 두물머리라, 한국 두물머리 중에서는 규모가 가장 큰 축에 속할 것이다.. 2024. 10. 7. 계관시인 워즈워스, 그리고 발분發憤 책이 없거나 있어도 금전 여력 따위로 엄두가 내기 싫은 시절엔 저것 하나만 해결하면 대작을 쓸 것만 같았다. 다른 일에 시간이 쫓길 적엔 시간만 나면 전무후무한 성과를 낼 것만 같았다. 젊은시절 혁명아였고 절절한 시를 벤딩 머신 찍어내듯 한 윌리엄 워즈워스. 계관시인이 되고 안락의자에 앉자마다 그의 시는 볼품이 없어졌다. 초원의 영광을 부르짖던 시심은 시궁창에 쳐박히고 말았다. 내가 아무리봐도 훌륭한 글은 발분發憤에서 나온다. 똥침맞은 촉급함이 대작을 낸다. (2014년 10월 6일) *** related articles *** 공무원하다 교수질하는 者로 왜 대성한 者가 없는가? 분노가 힘이다, 절망은 구렁텅이다 남의 성공은 아낌없이 박수하되 치욕하라 태사공자서를 읽다가 차기箚記와 발분發憤, 깊은 빡침의.. 2024. 10. 7. 죽었다 깨나도 읽을 만한 논문이 없는 이유 뛰어난 글 발군하는 논문이 발주에서 나올 수는 없다.대한민국 직업적 학문종사자가 쏟아내는 논문 백편 중 99편은 발주에서 비롯한다.노벨상에 버금하는 인문학 업적이 나오지 않는 이유다.딴 거 없다.누가누가 후원 주최하는 무슨무슨 학술대회 발표 치고 새길 만한 글이 있던가?들을 만한 글이 있던가?열정이 아니라 배당에서 나온 글인 까닭이다.그리 쓴 글들을 나중에 묶어 단행본이라 내고는 나 작가요 한다.그 딴 책이 무슨 단행본이겠는가? 2024. 10. 6. 논문이라 딱딱하단 말 새빨간 거짓말이다 논문이라 딱딱한 게 아니라 다루는 주제 자체가 구닥다리라서 하품날 뿐이다. 더 간단히 말해 논문감도 안되는 글을 씨부렁거렸기 때문에 딱딱할 뿐이다. 논문 독자가 셋? 저자 본인 학회 간사 심사자? 웃기는 소리다. 읽을 가치가 없는 쓰레기라 시장에서 버림받았을 뿐이다. 논문 문체 팔아 넘어갈 생각마라. 애초 팔리지도 않을 글을 논문이라 쓴 네 잘못일 뿐이다. 내가 왜 논문 안 읽다 하는 줄 아는가? 읽고 싶게 만드는 논문이 없어서다. 재미가 있고 흥미를 끈다면 무슨 문체가 대수겠는가? 얼마나 재미없는가? 재미 하나도 없다. 왜 이딴 걸 싸질렀느냐 한숨 나오는 논문이 백편 중 아흔아홉 편이다. 논문이라 딱딱한 것이 아니라 재미라고는 애초 눈꼽만큼도 찾을 수 없기에 버림받을 뿐이다. 인용지수? 웃기고 있네. .. 2024. 10. 5. why를 묻고 so what을 응대해야 하는 글 누누이 입이 아프도록 한 말이다. 이 말을 또 해야 하는 내가 갑갑하다. 내가 하는 일이 학문인지 아닌지 판별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So what에 대한 질문에 답이 있는가 아닌가에 달려 있을 뿐이다. 이 물음에 답을 하지 못한다면 그건 what과 how에만 머물렀다는 뜻이다. 언제나 학문은 why에서 출발해야 한다. 한반도에서 벼농사를 지었다? 언제 짓기 시작했고, 그 흔적이 구체로 어디에서 나타나며 이딴 게 학문이겠는가? 왜 그들은 벼농사를 선택했으며, 그것이 불러온 파장은 무엇인가? 이것이 학문 아니겠는가? 조 수수 기장에 대해서도 똑같은 물음을 던져야 한다. 유리? 로만글라스? 로만글라스가 어디에서 나왔고 그 양태는 어떠하며, 그 퍼진 양상은 어떠한가? 이딴 게 어찌 학문이리오? 그들이 왜 로만글.. 2024. 10. 5. 이전 1 ··· 4 5 6 7 8 9 10 ··· 378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