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ESSAYS & MISCELLANIES2498 지금 이후의 삶은 매우 이기적으로, 그리고 아주 영악하게 준비해야 한다 주변 친한 지인들은 부쩍 자주 말해서 그 분들은 내가 어떤 맥락에서 저 말을 하는지를 잘 알리라 본다.내가 이 말을 꼰대마냥 점점 더 강하게 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내 경험 때문이고 그에 더해 나랑 다른 이유로 혹은 비슷한 이유로 라이프 워크라 간주한 지금의 일을 떠났거나 떠나기 직전인 사람들에서 공통이라 할 만한 점이 관찰되기 때문이다.이 점에서 내 지인 중에 가장 요란한 분이 이 블로그 맹렬 필자이신 신동훈 선생이라 남들 볼 때는 정년 5년이나 더 남은 서울대 의대 현직 교수가 무얼 걱정하냐 하겠지만 그 5년이란 것도 순식간이라 미리미리 준비해야 퇴직 이후 삶이 제대로 선다는 절박성이 있다고 본다.퇴직 시점 기준 나도 그렇고, 나보다 먼저 나간 선배들도 그러하며 비슷한 시기에 나가거나 나갈 준비를 하는.. 2024. 7. 16. 박물관의 접근성과 포용성은 보편주의에 입각해야 한다 근자 박물관계 새로운 흐름, 아니 새롭다 할 수는 없지만, 최근 들어 부쩍 중요성이 대두하는 문제가 바로 저 두 가지 곧 inclusivity와 accessibility라,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박물관은 저와 같은 포용성과 접근성에 대한 보폭을 더욱 넓혀야 한다는 당위가 그것이라 누가 저와 같은 말에 의의를 달 수 있겠는가? 박물관이 특수한 사람만을 위한 기회균등 행복추구가 아니라 그런 차별을 없애야 하며, 이를 통해 박물관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박물관은 특정한 계층만을 대변하는 기관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박물관이어야 한다는 데 누가 그리 해서는 안 된다고 하겠는가? 문제는 그 방향성이다. 이 방향성이 곧 내가 보는 박물관 철학인데, 유감스럽게도 그 구체하는 방향으로 들어가면 아주 멀어서 지나친 .. 2024. 7. 15. "나도 봤다" 그 징표 남기기의 욕망과 루브르, 그리고 모나리자 나는 파리는 물론이고 불란서 자체를 아주 늦게 갔다. 어찌하다 보니 연이 닿지 아니해서 그리 됐을 뿐이며, 내가 불란서에 무슨 억하심정 유별나서이겠는가? 저 프랑스 땅을 처음 밟고, 나아가 파리를 난생 처음 입성하고서, 모름지기 불란서를, 파리를 가 본 사람이라면 한 번은 들려봐야 한다는 그 루브르박물관을 그리고 그곳 모나리자 안장실 채플을 간 시점이 보니 2017년 7월 15일이라 저날 나는 이리 적었다. 어떤 놈이 이 할망구 이리 만든겨? 왜 가는가? 모름지기 불란서라면, 파리라면 왜 저 할매를 친견해야 한다 생각하는가? 누구도 윽박한 적 없지만, 누구나 그래얄 것 같은 강박 나를 이를 지적 허영이라 부르며 사치라 이름한다. 나도 봤다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대한민국 사람이면 누구나, 아니 세계.. 2024. 7. 15. 로마 스페인광장 키츠-셸리 하우스에 남긴 편린 에서 그 깜찍 공주 오드리 햅번이 미국 기뤠기 그레고리 펙을 만나 수작을 하는 배경 중 하나가 된 삐아짜 스파냐는 그 기분과 폼을 내려는 사람으로 언제나 북적이는 overtourism의 총본산이 되었거니와,분수대를 앞세우고 계단이 시작하는 오른편 바로 귀퉁이에 Keats-Shelly House란 작은 기념관 하나가 있어 이곳이 바로 영국 낭만파 문학의 기린아, 아이돌인 존 키츠(John Keats. 1795~1821)와 퍼시 비시 셸리(Percy Bysshe Shelley. 1792~1822)를 기념하는 공간이다.둘 다 요절했으며, 삼두마차 중 개중 나이가 많은 조지 고던 바이런(George Gordon Byron. 1788~1824) 역시 한창 때 느닷없이 갔다.빨리 핀 꽃은 빨리 시드는 법이다.디스트.. 2024. 7. 14. 40대, 관성이 지배한 무기력의 시대 30대가 겁대가리 없던 시절이라면 40대는 저랬다. 그 사십대가 시작하기 전엔 이젠 황금기가 올 줄 알았다. 하지만 사십대 나는 족적이 없다. 책을 낸 것도 아니요 기자로서는 관성과 관록만 지배했다. 훗날 지금 생각하니 삼십대가 황금기였고 실상 내가 이룰 만한 건 그 시절어 다 이뤘기 때문이었다. 기자 생활만 해도 벌써 십년은 훅 지나 이십년째 접어들기 시작했으니 직급도 평기자를 탈출해 차장 대우 차장이 되어 있었다. 노력하지 않아도 정보는 들어왔고 현장은 나가지 않아도 훤했다. 더는 습득할 것이 없었고 사회 역시 나를 중견으로 대접했으며 그래서 그에 쩔어 살았다. 무엇보다 확실히 체력도 떨어졌고 열정도 눈에 띄게 줄었다.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픈 생각도 없고 돌아간다한들 이미 한 번 겪은 그 삶이랑 .. 2024. 7. 13. "치중輜重을 버리고 도망쳤다" 중무장은 생존의 장애물! 우리는 중무장 장비를 보고서는 거개 찬탄을 거듭하니 멋진 투구, 폼나는 갑옷, 더 폼나는 말갖춤을 보고서는 와! 저렇게 폼날 수가? 한다. 이런 반응이 나라고 무에 별다를 수 있겠느냐마는, 돌이켜 생각해보면 참말로 불쌍하기 짝이 없어 저러고도 무슨 쌈박질을 하려 하는지 나는 도통 모르겠더라. 저런 중무장 장비는 개똥폼 낼 때나 잠시간 걸쳤을 뿐이며, 저 상태로는 기동력이 현격히 떨어져 나 같으면 다 벗어버리고 도망쳐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저런 중무장 장비는 늘 강조해서 거듭거듭 말하지만, 전쟁을 해서 이기겠다는 발상의 산물이 아니라 실은 어찌하면 적들이 쏘는 총탄에도 살아남겠다는 처절한 발악의 소산이다. 그게 그거 아닌가 묻겠지만 그런 측면도 없지는 않겠지만, 이 둘을 구분해서 접근하는 방식이 나는 필.. 2024. 7. 13. 이전 1 ··· 59 60 61 62 63 64 65 ··· 417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