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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ING HISTORY82

[진덕眞德, 꿔다논 보릿자루 멀대여왕] (2) 또 다른 보릿자루 알천 진덕을 왜 꿔다논 보릿자루라 하는가? 단순히 여왕이었기 때문인가? 물론 아니다. 여주女主로 무자비한 철권통치를 구가한 이가 역사에는 한둘이 아니어니와, 그의 사촌언니로서 직전 재위한 선덕善德만 해도, 그런 사람으로 분류할 수 있을지 가늠이 힘들기는 하나, 단순히 꿔다논 보릿자루는 아니었던 듯하거니와, 그것은 무엇보다 그의 즉위가 그 자신이 직접 개입한 권력투쟁의 산물인 까닭이다. 이 이야기는 훗날 다시 말할 기회가 있을 듯하니 여기서는 제끼고 진덕에 집중하기로 한다. 진덕은 우선 왕이 되는 과정에 곡절이 없지는 않았으니, 그의 집권과정을 엿볼 만한 흔적이 거의 없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기존 기록은 물론이고, 화랑세기에도 이 대목에 대한 기술이 거의 없다. 물론 현재 우리한테 주어진 화랑세기가 매우 .. 2021. 4. 20.
마음이 환연歡然하며 몸이 진동하니...‘원초적 본능’을 찾아 후한後漢 시대 조엽趙曄이란 사람이 찬撰한 책으로써 《오월춘추吳越春秋》란 게 있다. 오월동주吳越同舟니, 와신상담臥薪嘗膽이니 해서, 배삯 서로 안 내겠다고 쌈박질 해대는가 하면 그 좋다는 웅담熊膽을 씹어대느니, 물침대에 자빠자면 될 것을 괜히 수련한답시며 장작 나무를 자리삼아 잤다는 이야기 따위 무대가 되는 저 중국 남방 오랑캐 대표주자들인 오吳나라와 월越나라 사이에 얽힌 사화史話 묶음집이라 할 수 있거니와, 그 주축은 말할 것도 없이 월왕越王 구천(句踐. ?~BC 464)과 오왕吳王 부차(夫差. ?~BC 473)에 얽힌 쌈박질이라. 이 《오월춘추》가 주는 교훈은 딱 하나, 쌈질하지 마라는 것이니, 오늘은 그런 진부한 이야기를 하려 함이 아니라 바로 오르가즘에 대한 것이니 어젯밤 잠자리 들기 전에 《오월춘추.. 2021. 4. 17.
[진덕眞德, 꿔다논 보릿자루 멀대여왕] (1) 김연경 + 형사 가제트 신라 제28대 왕 진덕眞德은 삼국사기 그의 본기에 의하면 본명이 승만勝曼이라, 아비는 진평왕眞平王 동생으로 국반國飯 또는 국분國芬이라고도 갈문왕葛文王이요, 어머니는 박씨朴氏 월명부인月明夫人이다. 삼국유사가 증언하는 그의 부모는 이와는 다른 대목이 있지만, 대세에는 지장이 없어 이에서 그 논의는 뒤로 제낀다. 삼국사기 본기에는 해당 왕이 즉위했음을 알리는 첫 대목에서 대체로 그의 풍모가 어떤지를 간평하게 되거니와, 진덕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이 기술했으니 姿質豊麗, 長七尺, 垂手過膝 [자질/풍려, 장/칠척, 수수/과슬...요샌 끊어읽기까지 표시해야 하니 기가 차다.] 이것만 보면 배구선수 김연경 느낌이 난다. 자질姿質이 풍려豊麗했다 함은 외모가 풍성하고 아름다웠다 했으니, 글래머 아니었나 하거니와, 쭈쭈빵빵.. 2021. 4. 11.
신라 화랑 설치를 둘러싼 착란 "三十七年春 始奉源花" [진흥왕] 37년 봄에 처음으로 원화源花를 받들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진흥왕 37년 "三十七年, 始奉原花爲仙郞" [진흥왕] 37년 처음으로 원화原花를 받들어 선랑仙郞을삼았다. 《해동고승전》 "國史 眞智王大建八年丙申 始奉花郞 恐史傳乃誤" 국사國史에서 이르기를 진지왕 대건 8년 병신년에 처음으로 화랑花郞을 받들었다 했으니, 이는 아마도 역사의 전언이 잘못일 터이다. 《삼국유사》 권 제3 제4 탑상塔像 미륵선화∙미시랑∙진자스님弥勒仙花未尸郎真慈師 착란이었다. 이 착란의 뿌리는 다음이다. "始奉薛原爲花郞" 처음으로 설원랑을 화랑으로 삼았다. 이것이었다. (2018. 4. 5) **** 신라가 언제 화랑을 설치했는지를 둘러싼 혼란은 그 사정을 전하는 저와 같은 기록들에서 말미암는다. 신.. 2021. 4. 5.
탄소목炭燒木, 그 실체는 숯인가 땔감인가 태종 16권, 8년(1408 무자 / 명 영락(永樂) 6년) 10월 16일(경인) 2번째기사 덕적도에 숯구을 나무를 싣고 오다가 선군 69인 익사, 경기 수군 첨절제사를 구금하다 물에 빠져 죽은 선군(船軍)의 집에 부의(賻儀)를 내려 주고, 또 차역(差役)을 감면(減免)하였다. 경기 수군 첨절제사(京畿水軍僉節制使) 김문발(金文發)이 아뢰기를, “도내(道內)의 선척(船隻)이 덕적도(德積島)에 들어가서 각해[各年]의 미납(未納)한 숯을 구을 나무[炭燒木]를 싣고 오다가, 큰 바람을 만나 두 척이 깨어져서 선군(船軍)이 물에 빠져 죽은 자가 69인이고, 살아남은 자가 3인입니다.” 하였다. 문발(文發)을 순금사(巡禁司)에 가두고 인하여 이 명령이 있었다. 【태백산사고본】 6책 16권 29장 B면 【영인본】 1.. 2021. 1. 23.
신라 우경牛耕을 둘러싼 미스터리 삼국사기 권 제4 신라본기 제4 지증마립간智證麻立干 3년(502) 조에 나오는 다음 구절 三月分命州郡主勸農始用牛耕 이를 흔히 "3월에 (왕이) 州主와 郡主들에게 농사를 권장케 하고, (신라가 이때) 처음으로 소를 몰아서 밭갈이를 했다" 는 식으로 이해한다. 예서 문제는 始用牛耕이 어디에 걸리느냐다. 종래의 독법은 이때에 이르러 신라가 처음으로 우경牛耕을 실시했다는 것이니, 이렇게 되면 우경한 주체는 신라가 된다. 하지만 이 독법은 적어도 문장으로는 억지에 가깝다고 본다. 신라가 우경을 이때 처음으로 했다는 뜻은 적어도 문장으로는 성립이 어렵다는 뜻이다. 텍스트로 보아 주어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첫째, 주어가 왕일 가능성이다. 이렇게 되면 저 문장은 왕께서 3월에 州主와 郡主들에게 명하시어 농사를 권.. 2020.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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