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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ING HISTORY82

비결祕訣이란 무엇인가? 편작의 경우 史記 편작扁鵲 열전 첫 대목이다. 원문은 교감하지 않았다. 扁鵲은 발해군勃海郡 정鄭 땅 사람이다. 姓은 진秦이요 이름은 월인越人이다. 젊은 시절에 어떤 사람의 舍長으로 있었다. 거기를 드나든 손님 중에 장상군長桑君이 있어 편작만이 오직 그를 기이하다고 여겨 항상 정성을 다해 대접했다. 장상군 역시 편작이 비상한 사람임을 알았다. 출입한 지 10여 년이 흘러 장상군이 편작을 불러 앉히고는 몰래 말하기를 "나에겐 비방禁方이 있지만 이젠 늙어서 그것을 그대한테 전해주려 하니 공은 절대로 이를 누설하지 마시오"라고 했다. 편작이 말하기를 "그렇게 하겠습니다"고 했다. 그러자 장상군은 그가 가슴에 품은 약을 편작에게 주면서 말하기를 "이를 上池之水와 함께 마시면 30일이 지나면 사물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이에.. 2023. 12. 29.
《어우야담》을 실록이 아니라고 비판한 계곡 장유 아래는 계곡谿谷 장유張維(1588∼1638)가 《계곡만필谿谷漫筆》에서 유몽인柳夢寅(1559~1623)의 《어우야담於于野談》을 비판한 대목이다. 당파로는 유몽인이 북인이요, 계곡은 율곡과 우계 적통 사계 김장손 제자인 서인이라, 그런 까닭에 당파가 달라 이리 비판하지 않았나 하는 의심도 해 본다. 계곡이 서른살가량 어리기는 하지만, 생몰년을 보면 어우당과 직접 교유가 있었을 법하다. 아래 비판은 어우당으로서는 억울한 측면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 제목을 야담野談이라 했으니, 실록이 아닌 것이다. 그런 야담을 실록이 아니라 해서 비판한다면 어쩌란 말인가? 다분히 뭔가 억하심정에서 쏟아낸 비난 같다. 계곡만필 제1권 / [만필(漫筆)] [유몽인의 《어우야담》에는 사실과 다른 것이 많다[柳夢寅於于野談多失實]] .. 2023. 12. 28.
일주서逸周書 세부해世俘解가 말하는 주 무왕시대 인신공희 4월 22일 경술庚戌의 새벽에 무왕은 은허의 주족 사당에서 성대한 요제燎祭를 거행했다. 수레를 타고 도착한 뒤에 그는 종묘의 남문 바깥에 섰고, 사신史臣이 상제에게 제사를 바칠 테니 왕림하여 흠향하시라고 통지하는 제문을 낭독했다. 우선 100명의 ‘대아신大亞臣’—주왕을 위해 목숨을 건 고급 무관武官—에게 전문적인 제례복[佩衣]으로 갈아 입히고, 무왕이 직접 제사에 바쳤다. 집행 방식은 ‘폐廢’이니, 손발을 잘라서 핏물 속에서 뒹굴고 비명을 지르게 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비명이 하늘에 전달되면 상제가 만족스럽게 제수품을 흠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에는 태사 여상이 다른 40명을 바쳤는데, 그들은 주왕에게 충성한 상족의 씨족 수령[家君]과 점술을 담당한 관리[貞師], 사도(司徒)와 사마(司馬) 등.. 2023. 12. 28.
유몽인을 잘근잘근 씹어돌린 제너럴 이순신 갑오년(1594) 2월 16일 을축 맑음 아침에 홍양 현감, 순천 부사가 왔다. 홍양 현감이 암행어사(유몽인)의 비밀 장계 초안을 가져왔는데 임실 현감(이몽상), 무장 현감(이충길), 영암 군수(김성헌), 낙안 군수(신호)를 파면하여 내치고, 순천 부사는 탐관오리라고 으뜸으로 거론하고, 기타 담양(이경로), 진원(조공근), 나주(이순용), 장성(이귀李貴), 창평(백유항白惟恒) 등의 수령은 악행을 덮어 주고 포상할 것을 고하였다. 임금을 속임이 여기까지 이르렀으니, 나랏일이 이러고서야 싸움이 평정될 리가 만무하여 전쟁만 쳐다보게 될 뿐이다. 또 수군 일족에 대한 징발과 장정 넷 중에 둘이 전쟁에 나가는 일을 논하여 비난하였다. 암행어사 유몽인은 나라의 위급한 난리는 생각지 않고 다만 눈앞의 임시방편에만 힘.. 2023. 12. 28.
신라 시조묘始祖廟의 재궁齋宮 아로阿老 삼국사기 신라 남해차차웅본기와 同 제사지를 종합하면 이 왕은 신라 창업주이자 아버지인 혁거세가 죽자 그를 제사하는 시조묘始祖廟를 세우되 그것을 주관할 이로 남해南解의 누이동생 아로阿老를 삼았다고 했다. 아로는 시조묘 제주祭主였다. 이것이 바로 중국사에서는 좀처럼 흔적이 보이지 않으나 고대 일본에선 흔해 빠진 재궁齋宮이다. 재궁이란 신궁神宮 혹은 신사神社의 제사를 주관하는 최고 우두머리로 일본을 보면 결혼하지 않은 황녀皇女로 삼았다. 이런 재궁은 나중에 몸을 더럽히거나 하면 그 지위를 박탈당한다. 신라 국가제사는 기록이 얼마되지 않으나 아로가 재궁임을 알면 그 이야기는 사뭇 풍부해진다. 말한다. 일본사는 곧 한국사다. 이 신라 시조묘와 밀접한 것이 신궁이거나 이 신궁은 주周나라 시조 후직后稷의 어미를 제사.. 2023. 12. 28.
공자? 입시학원으로 변질한 성균관 뭐 공자와 맹자, 그리고 주희가 절대의 이데올로기로 등극한 조선시대 지식인 사회는 시종 근엄했다고 생각한다. 그 전당인 성균관은 공자 사당인 대성전까지 있으니, 더욱 그러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공자? 웃기는 소리다. 물론 시대별 넘나듦이 있겠지만, 조선중기를 살다간 심수경(沈守慶․1516~1599)이 《견한잡록(遣閑雜錄)》에 남긴 성균관 관련 다음 한 토막을 보면 공자는 먼나라 딴나라 얘기임을 안다. 성균관은 단순한 입시학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수업 일수 채우기 위한 식당 출석체크가 전부였다. 문과 식년 초시(文科式年初試)는 생원生員과 진사進士가 성균관에서 생활한 지 3백 일이 넘는 자를 50명 뽑으니, 이는 생원과 진사가 성균관에서 지내도록 권유하는 것이다. 양현고養賢庫를 성균관 옆.. 2023.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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