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1944 [독설고고학] 투고 자격도 주지 않는 해외 저널들 [독설고고학] 형식분류 제작기법 축조기술은 투고 자체를 원천봉쇄해야 한다 [독설고고학] 형식분류 제작기법 축조기술은 투고 자체를 원천봉쇄해야 한다그렇다면 한국고고학은 당장 어찌해야 하는가? 저거다. 형식분류 제작기법 축조기술 타령 일삼는 그 어떤 논문도 투고 자체를 원천 금지하며 그런 논문이 들어와도 자동으로 퇴짜를 놓아야 한historylibrary.net 망조가 든 한국고고학 구출을 위해서는 저와 같이 해야 한다고 나는 적었거니와, 이게 장난처럼 보이겠지만 천만에. 실제 외국 저명 저널에서는 저런 일이 아주 빈발한다. 클리쉐한 논문은 아예 투고도 못하게 하는 규정이 수시로 발동되고 있다. 실제 외국 어느 저명한 고고공예 관련 관련 저널 중에서 저와 같은 통제를 실시하는 데를 봤다. 왜 그.. 2024. 1. 7. 장례식 조문객과 사찰 낙성 축하객 (1) 빈소와 조문객 고관대작을 지내거나 다른 분야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사람의 죽음에 이르러 항용 보이는 표현 중 하나가 임금이 부의를 후하게 해서 장례를 치르게 했다는 말이거니와, 이런 점들이 왜 고고학도들한테는 심각하게 보이지 않는지 나로서는 신통방통할 뿐이다. 조선시대는 기본이 이른바 박장薄藏이라, 일부러 값나가는 물건을 무덤에 넣는 일을 피한 전통이 오래되는 바람에 이걸 잊어버렸는지 모르지만, 나아가 시대별 문화권별로 넒나듦이 있지만, 근간은 후장厚藏이라, 값나가는 물건을 될수록 많이 넣음으로써 부와 권력을 과시하곤 했으니 해당 무덤에 들어가는 껴묻거리 상당수가 이른바 부의賻儀였다는 사실을 하시라도 잊으면 안 된다. 이 부의를 가능케 하는 절대 근거가 빈殯이라, 빈은 간단히 말하자면 조문을 받는 기간이다. 동아시아.. 2024. 1. 7. 백제와 고려군의 전투: 입표立標란 무엇인가 전술한 일본서기 흠명기欽明紀를 보면 백제 부여창과 고구려 군 전투장면이 나오는데 다시 써보면 아래와 같다. 때마침 날이 밝자 목에 경개頸鎧를 입은 자 1騎, 징을 꼽은 자鐃자는 자세하지 않다 2騎, 표범 꼬리를 끼운 자 2騎 모두 합해 5騎가 말고삐를 나란히 하고 와서 묻기를 “어린아이들이 ‘우리 들판에 손님이 있다’고 하였는데 어찌 맞이하는 예를 행하지 않는가. 우리와 더불어 예로써 문답할 만한 사람의 이름과 나이, 관위를 미리 알고자 한다”고 하였다. 餘昌이 “姓은 (高麗 왕실과) 同姓이고 관위는 杆率이며 나이는 29세이다”라고 대답하였다. 百濟 편에서 반문하니 또한 앞의 법식대로 대답하였다. 드디어 표를 세우고 싸우기 시작하였다. 여기서 마지막 줄, "표를 세우고"라는 말. 무슨 뜻일까? 원문에는 .. 2024. 1. 7. 고려군은 나노리名乗り를 했을까? 나노리名乗り라는 것이 있다. 일본사에서 흔히 보는 것으로 무장들이 서로 싸우기 전에 자기 관등성명을 대는 것이다. 이기면 이기는 대로 공명을 높일 수 있고, 져도 지는대로 싸우다 죽었다고 알릴 수 있으므로 전장에서 꼭 필요한 의례였을 것이다. 그야말로 일본적인 의례같지만, 일본사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역사상의 나노리는 한국과 관련이 있다. 바로 성왕의 아들 부여창이 고구려군과 다툴 때 서로 나노리 하는 장면이 나온다. 겨울 10월 庚寅 초하루 己酉 百濟 왕자 여창餘昌(明王의 아들 威德王註 001이다)이 나라 안 모든 군대를 내어 高麗國을 향했는데,註 002 百合의 들판에 보루를 쌓고 군사들 속에서 함께 먹고 잤다. 이날 저녁 바라보니 커다란 들은 비옥하고 평원은 끝없이 넓은데, 사람 자취는 드물고 개소리.. 2024. 1. 7. 무덤 벽화로 보는 거란 한 장면 어느 무덤인지 특정하지는 못하나 거란 벽화 한 장면이다. 남자들 머리는 다 대머리 독수리머리로 만들었으니, 고려거란전쟁에서 소배압을 필두로 하는 거란 군인들을 저리 처리한 것은 나름 고증에 철저한 면을 보여준다. 인종이 어디에 속하는지 모르겠지만 모조리 매부리코다. 세발 솥으로 죽을 끓여서 먹는 장면인 듯하다. 국자 숟가락 젓가락이 다 보이는데 문제는 젓가락으로 집을 만한 반찬은 그림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엎은 사발을 나르는 남자가 보인다. 개죽통 같은 걸로 국자로 무얼 먹으려는지 하는 남자도 있다. 틀림없이 죽을 해 먹었는데 곡식은 잡곡일 것이다. 잡곡을 죽으로!!! 저들이 양을 많이 키운다고 양고기 주식으로 먹었을 것이다? 위험한 발상이다. 2024. 1. 7. [독설고고학] 고고학의 오만이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한강 유역을 고구려가 확실히 장악한 시기와 그 기간이 어떤지에 천착한 근자 어떤 고고학도 글을 보니, 한강 이북 지역, 혹은 임진강 유역 일대에서 한성백제 유적이 잘 안 나오는 점을 근거로 백제는 이 지역을 475년 전쟁에서 개로왕이 참수됨과 더불어 고구려에 다 빼앗겼다는 주장을 본 적이 있으니 이 대목을 보고는 고고학의 오만이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통탄 또 통탄하고 말았으니, 왜 나는 이를 고고학의 오만이라 하는가? 고고학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다. 고고학이 그 시대 모든 것을 증언하지는 못한다. 내가 항용 예를 드는 것이 서울 고려라, 지금의 서울은 고려시대에는 남경南京으로 일컬으면서 지금의 평양인 서경, 그리고 신라 천년 고도 이래 고려시대에 아주 중요한 도시로 동경東京으로 일컬은 경주와 함.. 2024. 1. 7. 이전 1 ··· 1355 1356 1357 1358 1359 1360 1361 ··· 3658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