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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 출신 관료, 대장장이 출신 관료 기록상 제주 출신으로 처음 고려의 과거에 급제해 관직생활을 한 고유高維라는 분이 있다. 이 어른은 뒷날 정2품 우복야右僕射에 오를 정도로 출세했지만, 섬 사람으로써 겪는 차별이 생각보다 컸던 모양이다. 문종 11년(1057) 정월 정기인사의 한 장면을 보자. 기축 고유高維를 우습유(右拾遺, 종6품)로 삼았다. 중서성中書省에서 아뢰기를, “고유는 탐라 출신이므로 간성諫省에는 합당하지 않은데, 만일 그 재주를 아깝게 여긴다면 다른 관직을 제수하길 요청합니다.”라고 하자, 이를 받아들였다. 우습유는 중서문하성의 종6품 관직으로, 높지는 않지만 간쟁諫爭과 봉박封駁을 담당하는 청요직淸要職이었다. 그런데 그런 자리에 고유가 임명되자 중서문하성이 "탐라 사람은 사절하겠습니다"라고 어깃장을 놓은 것이다. 문종은 그 말.. 2023. 1. 22.
카미카제 설날이다. 객지에서 활동하던 모든 사람들도 귀향하는 뜻깊은 시절이다. 설날이 명절이니, 차례니 하는 스트레스 가득한 이야기를 제외하면 가족들이 정기적으로 다시 모일 기회를 주는 것만으로도 설날의 의미는 매우 깊다. 각설하고, 2차대전때 카미카제를 사무라이 정신의 정화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어떻게 생각하면 그 정신이 사무라이 정신이건 뭐건 간에 그들이 죽는 순간에는 부모 형제를 떠올렸을 것이다. 재미 있는 이야기가 있다. 미국은 전사자 송환에 아주 관심이 많은 나라다. 이 때문에 전사자의 유해가 확인이 안되면 끝까지 이를 추적한다. 미국은 이미 1차 세계대전때 대규모 전사자가 나올것을 예상하고 유해 송환을 위한 부대를 창설하였고, 2차대전때는 인식표 없이 사망한 유해를 확인하기 위해 인류학자로 구.. 2023. 1. 22.
점제현 신사비와 관구검 (무구검) 기공비 김단장께서 쓰신 글도 있고하여 조금 더 살펴 본다. 점제현 신사비와 시대가 비교적 가까운 관구검 (무구검) 기공비를 소개한다. 점제현 신사비가 왜 그 양식에 있어 상당히 이탈적인 것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관구검 (무구검) 기공비를 보자. 서기 244년의 비로 필체와 비의 모양이 점제현 신사비와 완연히 다르다. 중국 쪽에서 흔히 보는 규형비이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에 -. 관구검기공비는 규형비인 듯 | 한국역사연구회 관구검기공비는 규형비(圭形碑)인 듯 하일식(고대사분과, 연세대 사학과 교수) 2014년 5월 4일. 한국역사연구회 고대사분과원들, 몇 대학 대학원생들과 함께 들린 심양 요령성박물관에는 관구 www.koreanhistory.org 아래는 동한 시기에서 북위 때까지의 중국 비의 모양이다. .. 2023. 1. 21.
입사지정立砂地定? 한단지보邯鄲之步의 다른 이름 한국건축 혹은 고고학에서 쓰는 개념어로 입사지정立砂地定이란 요물이 있어 그 요체는 공평유적전시관 설명을 빌리면 이렇댄다. 입사지정立砂地定 Ipsa-Jijeong (Sand Foundation) 공평동 유적의 10호 건물지에서 발굴된 입사 지정이다. 구조물을 세우기 위해 땅의 연약한 지반을 보강하는 일을 지정地定이라 하는데, 입사지정은 기초웅덩이를 파고 모래에 물을 부어가면서 층층이 다져 올리는 건축공법을 말한다. 이 입사지정은 조선 전기 건축물의 기초 공법을 실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This foundation was excavated at the building site no.10 of Gongpyeong-dong sites. It strengthens the unstable gr.. 2023. 1. 21.
거북등껍데기를 고려왕조에 바친 탐라국 문종 7년(1053) 2월, 개경에 멀리 탐라에서 온 손님이 도착했다. 뭔가 바리바리 싸들고 온 이의 이름이...탐라국耽羅國 왕자 수운나殊雲那가 아들 배융교위陪戎校尉 고물古物 등을 보내어 우황牛黃·우각牛角·우피牛皮·나육螺肉·비자榧子·해조海藻·구갑龜甲 등 물품을 바치므로, 왕이 〈탐라국〉 왕자에게 중호장군中虎將軍을 제수除授하고 공복公服·은대銀帶·채단彩段·약물藥物을 하사하였다. - 권7, 세가7, 문종 7년 2월고려시대에는 제주 소가 지금보다 더 유명했던 모양으로, 원 간섭기에는 탐라 소고기를 원나라 황제에게 꼬박꼬박 바칠 정도였다 한다. 전복과 비자, 미역이야 지금도 제주 명물로 유명하고, 거북이 등딱지도 제주가 섬인 걸 생각하면 이상할 것은 없다. 그러나저러나 배융교위께서 얼마나 노안이었으면 이름마저 .. 2023. 1. 21.
선우씨鮮于氏 이야기 (5): 한국의 경우 앞에서 중국의 선우씨에 대해 장황하게 썼다. 이들의 연원이 매우 깊어 빠르게는 전한 한무제때 기록에 나타나며 매우 이른 시기부터 자신들은 기자의 후손이라는 의식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재미있는 것은 정작 한국의 선우씨 일족은 앞에서 이야기한 여러 가지 중국 쪽의 전승-기록들을 거의 모르고 있었던 것같다. 한국의 선우씨 족보에 따르면 이들 역시 기자후손을 자처했지만 중간에 세계를 잃어버려 고려 문종 때 중서주서中書注書를 지낸 선우정鮮于靖을 1세조로 하는 모양이다. 따라서 기자의 후손이라는 기억만 희미하게 남은 상태에서 고려 전기의 조상만 기억하고 있는 상태가 한국의 선우씨의 상황이었겠다. 이들이 조선시대에 들어와 일약 조명을 받게 되었는데 다름 아니라 평양에 기자의 국가사전인 숭인전이 세워지면서부터이.. 2023.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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