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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외세 때문에 못 산 것이 아니다 조선시대까지의 대중국 사대와 20-21세기의 남한의 대미관계는 유사한 점이 많다. 지금 한국은 미국에 분명히 한수 접고 들어가지만 과연 한미관계가 한국 측에 손해였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어떤 나라가 외부의 수탈에 의해 정상적인 발전을 저해 받는것이 사실이라면 당연히 그 나라가 발전의 정상궤도를 걷기 위해서는 그 외세를 물리치는 것이 첫 번째 과업이 될 것이다. 이런 세계관에 따라 만들어진 나라가 북한이다. 이들의 시각으로는 조선시대의 "사대주의"와 남한과 같은 "대미종속"은 정상적인 발전을 가로막는 질곡이다. 이것이 바뀌어야 정상적인 발전이 가능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북한이 볼 때 한국사가 정상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외세에 종속되지 않는 국가가 되는 것이 첫 번째 과업이 되는 셈이다. 그렇게.. 2022. 7. 10.
소위 "독자적" 역법의 신화 (2) 지난 번에 쓴 동아시아 독자적 역법의 신화. 이번에는 일본편이다. 일본은 알다시피 최초로 달력이 소개 된 것이 백제를 통해서였다. 서기 6세기 백제로부터 국가를 운영하는데 필요한 모든 기술이 패키지로 일본으로 도입될 즈음 "역박사"를 통해 달력이 소개되었으리라 본다. 지난 글에도 썼지만 "달력이 소개되어 쓴다는 것"과 "달력을 이해한다는 것"은 다르다. 사실 달력이 소개되어 쓰기만 해도 그게 잘 맞아 떨어지는 한은 달력을 이해할 필요까지는 없다. 우리는 해마다 새로 만들어지는 달력을 얼마나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전세계가 동일한 달력을 써도 "독자적 역법"에 대한 고민이라던가 왜 달력이 정월 초하루가 하필이면 저날일까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는다. 달력이란 그런 것이다. 일본으로 달력의 도입은 한동안 한.. 2022. 7. 10.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려 현판 글씨 쓰다 백발이 된 중장仲將 위탄韋誕 우리의 삼국시대 중반에 해당하는 중국사 남북조시대 남조南朝 왕조 중 하나인 유송劉宋 시대 황족 일원 유의경劉義慶이 엮은 일화 모음집 《세설신어世說新語》 중 교예巧藝 제21에 세 번째로 수록된 일화가 다음이라 위중장은 글씨를 잘 썼다. 위 명제가 궁전을 세우면서 편액을 달고는 중장을 시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글을 쓰게 하고자 했다. (중장이 일을 마치고) 내려오니 머리카락과 귀밑머리가 허애졌다. 이 때문에 자식들한데는 다시는 글씨를 배우지 말라고 했다. 韋仲將能書. 魏明帝起殿, 欲安㮄, 使仲將登梯題之, 旣下, 頭𩯭皓然, 因敕兒孫, 勿復學書. 이것이 《世說新語》 본문이다. 이 일화 주인공 위탄韋誕(179~253)은 자를 중랑仲將이라 하는데, 저 이야기에서는 본명 대신 字로 등장한다. 경조군京兆郡 두릉현杜.. 2022. 7. 10.
쪽동백 이맘쯤이면 해마다 쪽동백이 이런 열매를 선사한다. 익어가는 것이니 조락을 준비한다. 2022. 7. 9.
접신接神과 강신무降神巫, 루도비카 알베르토니 Ludovica Albertoni의 경우 소위 한국 무속에서 무당 출신 내력을 따져서 1, 세습무 2, 강신무 두 가지로 나누거니와, 세습무란 글자 그대로 집안 대대로 가업을 전승한 무당을 말하고, 강신무란 어느날 뿅 하고 신과 접속해서 신내림을 해서 된 무당을 말한다. 이 강신무가 무슨 한국 무속의 전매특허처럼 말하는 한국무속 연구자들이 다대하지만, 개소리다. 이건 동아시아 보편이며, 어쩌면 세계 보편적인 무당 되기 내력 중 하나다. 중국사에서 도교를 반석에 올린 인물로 소위 상청파 계열 위화존이라는 여자가 있거니와, 이 여자가 바로 강신무다. 강제 결혼을 하고 아들 둘을 두었으나, 남편과는 데면데면. 혼자 문 걸어 잠근 채, 방구석에 틀어박혀 기도만 열심해 했더니, 어느날 접신해서는 뿅하고는 도교 일파를 창설하니, 이것이 바로 훗날 도교 상.. 2022. 7. 9.
길항하는 통합과 분열, 분단체제론은 근간이 폭력에 기반한다 이것이 결국 봉건제인가 군현제인가 하는 해묵은 논란으로 직결하거니와 우리는 한국 혹은 한민족 혹은 대한민국이라는 단일체로 호명하지만 그것은 실은 분열을 임시봉합한 데 지나지 아니하는 김유신과 김법민의 이데올로기다. 그 이데올로기를 붕파하고는 그 아련한 시대로 돌아가고자 한 것이 궁예와 견훤이었으니, 둘이 각각 고구려와 백제의 계승을 표방한 것이 우연은 아니었다. 통일왕조라라는 고려가 등장하면서 그 분열의 시대는 가라앉은 듯했지만, 그에서 탈출하려는 시도는 간단없었으니, 고려 중기만 해도 특히 경주 쪽에서 신라 부활을 기치로 내건 반발이 심했고, 또 그 직전에는 묘청이 주도한 평양과 고구려 중심 반동이 있었다. 조선시대 역시 내내 이를 우려해 그에 대한 봉쇄를 감행하고자 강력한 군현제를 관철하고자 했으니,.. 2022. 7.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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