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19513 2015년 창녕 교동송현동고분 발굴 *** 이하는 2015년 9월 3일 문화재청 보도자료다.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의 숨겨진 고분, 빛을 보다 - 가야 고분 21기 신규 확인 / 9.4.(금) 발굴조사 현장설명회 개최 - 문화재청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소장 박왕희)는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에 있는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사적 제514호)에 대한 발굴조사를 통해 가야 고분 21기를 새롭게 확인하고, 발굴조사 현장설명회를 오는 4일 오전 11시 발굴현장에서 개최한다. * 발굴현장: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교리 산5(창녕박물관 옆)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은 창녕군 교동과 송현동 일대에 걸쳐 있는 고분군으로, 217기(2014년 기준)에 달하는 고분이 분포한 비화가야(非火加耶) 최고(最高) 집단의 묘역으로 알려져 있다. 고분 3기.. 2020. 10. 29. 대가리가 없어야 잘 돌아가는 사회가 정상이다 장長이 개판을 치는 조직은 그 장이 없어지면 상당히 잘 돌아간다. 그런 장 같지도 않은 장이 짤릴 무렵이면 언제나 "장이 없으면 어카냐? 공백이 없어야지" 하는 소리를 하는 사람이 꼭 있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어찌 대통령이 없을 수 있느냐고 한다. 없어봐라. 없어도 잘 돌아간다. 나는 대한민국이 그 연륜이 얼마되지는 않았지만 시스템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한다. 어줍짢은 대통령 없다 해서 나라가 망하거나, 혼란하거나 하지 않는다. 되먹지 않은 리더는 단두대에 세워 목을 잘라야 한다. 그것이 그 국가와 국민이 사는 길이다. (2016. 10. 29) 2020. 10. 29. 습지에 세운 황룡사 황룡사지 남쪽 담장 경계 전면을 팠다. 사진이 확연히 드러내는지 자신이 없으나 왼편 절터에 견주어 파제끼고 갓빠로 덮은 지점이 고도가 뚝 떨어진다. 기록을 존중한다면 황룡사는 경주 분지 저습지를 메꾸고 세웠다. 발굴성과로 볼 적에도 그렇다. 황룡사 구역만 자연 둔덕 형태였을 가능성은 있다. 주변이 늪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절터 전체 혹은 일부를 판축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번 발굴조사가 이런 점들까지 확인하는데 주력했는지는 모르겠다. (2017. 10. 29) 2020. 10. 29. 차천로는 왜 과거시험을 대리했을까 조선 선조 때 문장가로 이름을 떨친 차천로(車天輅, 1556~1615)는 1577년(선조 10) 알성문과에 급제하여 개성 교수(開城敎授)를 지냈고, 1583년 중시에도 입격하였습니다. 1586년 정자(正字)로 있던 그는 여계선(呂繼先)이 과거를 볼 때 표문(表文)을 대신 지어주는 불법행위를 저질렀습니다. 문제는 대충 쓰면 될 일이었지만 그 문장력 때문에 여계선이 장원 급제하여 일이 발각되고 말았습니다. 차천로는 이 일로 명천(明川)에 유배되었다가 글재주가 있다는 이유로 1588년 용서받았습니다. 그러나 속사정을 음미하면 당시의 부조리가 모조리 담긴 사건이었습다. 첫째, 그는 비교적 한미한 가문 출신이었던 까닭에 문과에 중시까지 거쳤어도 승진이 되지 않았습니다. 글 솜씨 좋다는 평가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던.. 2020. 10. 29. A set of accessories unearthed from 1,500 year old tomb A set of accessories including a gilt-bronze coronet, left as they were worn by the deceased at the time of burial has recently been discovered from a Silla dynasty era tomb in Changnyeong-gun County, Gyeongsangnam-do Province, which is believed to have been built 1,500 years ago. Besides the coronet, a pair of golden earrings, a necklace made of 3-4 rows of indigo glass beads, silver rings, and.. 2020. 10. 29. 창녕 신라고분, 발굴착수에서 금동관까지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가 2020년 10월 28일 창녕 교동·송현동고분군 중 63호분 발굴성과를 공개했으니, 이는 조사 중간단계 성과라는 점이다. 내부조사에 착수한 결과 금동관을 비롯해 5세기 후반 내지 6세기 초반에 묻힌 이 지역 신라 유력 지배계층 여성 무덤으로 추정하는 곳이어니와 금동관을 얼굴가리개로 썼고 귀걸이와 허리띠 일괄, 은장도 같은 착장 세트가 비교적 원래 자리를 유지한 채 확인되었다. 이 고분 발굴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은 이 블로그 게재글들을 등재 시간 순으로 배열하니 참고바란다. 비화가야가 1,500년만에 심장을 연다(2019. 11. 28) 비화가야가 1,500년만에 심장을 연다 도굴 안된 비화가야 지배자 무덤, 오늘 뚜껑돌 연다 송고시간 | 2019-11-28 09:00 창녕 교동과 송.. 2020. 10. 29. 이전 1 ··· 2145 2146 2147 2148 2149 2150 2151 ··· 3253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