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4153 20빌딩이었다가 63빌딩으로 The 63 Building 현재 한화생명 소유인 63빌딩은 1979년 신동아 그룹 대한생명의 사옥으로 설계 당시 20층으로 계획되었습니다. 그러나 1980년에 건물을 착공한 이후 서울시로부터 60층 규모로 최종 건축허가를 받아 지하 3층, 지상 60층의 63빌딩을 건설했습니다. 1985년 5월에 준공된 63빌딩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건물의 모든 면을 유리로 마감하는 공법을 사용했고, 높이는 249.58m로 당시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습니다. 건물 내부에는 전망대, 아이맥스 영화관, 수족관 등이 자리 잡았습니다. 63빌딩은 당시 최고, 최대의 건물로 필수 관광 코스였으며, 사람들에게 여의도의 랜드마크로 각인되었습니다. The 63 Building, which is currently owned .. 2021. 6. 4. 용인 석성산 금수암(金水庵)터를 찾아서 '삼국시대 용인 사람들의 삶과 죽음'이란 주제로 를 오늘(2021. 6. 4.) 개최했다. 이번 학술대회는 서영일 한백문화재연구원장님의 ‘고고유적을 통해 본 삼국시대 용인지역’기조발표를 시작으로, 김도훈 혜안문화재연구원장님이 ‘용인지역 삼국시대 분묘의 변천양상과 지역성에 관한 연구’에 대해, 이상국 한국문화유산연구원 연구부장님이 ‘용인 석성산성의 현황과 과제’에 대해, 이형원 한신대학교 교수님이 ‘용인지역 삼국시대 주거문화’에 대해 주제 발표를 진행했다. 사실, 이 학술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석성산성을 주목해 보고 싶었다. 할미산성과 관련해서 반드시 연관성이 언급되기도 하거니와, 정상에 군부대로 인해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2017년도에 비지정문화재 발굴조사 지원사업으로 동문지.. 2021. 6. 4. 수국의 변화상을 관찰한다 노느니 염불하는 심정으로 수송동 공장 인근 어느 호텔 화단 산수국을 매일 관찰한다. 만개 직전이라 그로 가는 중간 기착역의 순간을 포착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오늘 상태다. 주말이 지난 다음 어찌 바뀌어 있는지는 다시 담고자 한다. 2021. 6. 4. 둔芚과 동구미, 상장례의 필수품 둔(芚)이 무엇일까? 전근대 기록에는 유둔(油芚)이니 초둔(草芚), 지둔(紙芚) 같은 것들이 많이 나오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을 이르는지 알기 어렵다. 의궤에 많이 나오는데, 이는 상장례에 필요한 물품이었기 때문이다. 둔(芚)은 오늘날 동구미라는 뜻으로 풀이하는데, 동구미는 짚으로 둥글고 울이 깊게 결어 만든 그릇으로 주로 곡식이나 채소 따위를 담는 데에 쓰인다. 어쩌다가 둔(芚)이 동구미를 이르게 되었을까? 《세종실록》 5년 1월 9일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있다. “좌대언(左代言) 권도(權蹈)의 어머니 숙경 택주(叔敬宅主) 이씨(李氏)가 죽으니, 부의(賻儀)로 종이 1백권, 초 열 자루, 초둔(草芚) 【띠[茅]를 엮어서 덮기도 하고 깔기도 하는데, 민간에서 이를 초둔이라고 한다. 】 과 관곽(棺槨)을 내.. 2021. 6. 4. 고려사를 읽다가 - 화가의 대우 이광필이라는 화가가 있었다. 고려 무신정권기를 살았던 인물인데, 초상화와 산수화에 능했다고 전해진다. 그런 그의 아들이 9품 군직인 대정에 올랐다. 그런데 이에 딴지를 건 인물이 있었으니... 이광필의 아들이 서경(西京)을 정벌한 공으로 대정(隊正)에 임명되자, 정언(正言) 최기후(崔基厚)가 잘못을 지적하며 말하기를, “이 아이의 나이가 겨우 20세인데, 서경 정벌 때에는 10세에 불과하였다. 어찌 10세의 어린아이가 종군할 수 있었는가?” 라고 하며 자기주장을 고집하며 서명하지 않으니, 왕이 최기후를 불러 꾸짖으며 말하기를, “너는 이광필이 우리나라를 빛낸 사실을 생각하지 않는가? 이광필이 아니었다면 삼한(三韓)에 그림의 명맥이 거의 단절되었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이에 최기후가 서명하였다. 여기에.. 2021. 6. 4. 애꿎은 낙타 굶겨죽인 왕건 권13, 고려 태조 25년의 史贊. 忠宣王이 일찍이 臣 이제현에게 묻기를, ‘우리 태조 때에 거란이 보내온 낙타를 다리 아래에 매어 놓고 꼴이나 콩을 주지 않아 굶어 죽게 하였기 때문에 그 다리 이름을 '낙타다리'라 하였다. 낙타가 비록 中國에서 생산되지 않지만 중국에서도 일찍이 낙타를 기르지 않은 것이 아니다. 나라의 임금으로서 수 십 마리의 낙타를 가지고 있더라도 그 피해가 백성을 해치는 데에는 이르지 않을 것이며, 또 이를 물리치면 그만이지 어찌하여 굶겨서 죽이기까지 하였을까?’ 하므로, 대답하기를, ‘創業하여 왕통을 전하여 주는 임금은 그 보는 것이 멀고 생각하는 것이 깊어서, 후세 사람으로는 따를 수가 없습니다. ... 우리 태조께서 이렇게 한 까닭은 장차 오랑캐의 간사한 계책을 꺾으려 함이었는.. 2021. 6. 4. 이전 1 ··· 2656 2657 2658 2659 2660 2661 2662 ··· 4026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