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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을 희생해 탄생한 한국민족주의 한국 민족주의는 김유신 붕괴를 발판으로 삼는다. 내셔널리즘이 할퀴고 지난 자리에 김유신은 넝마가 되고 오물이 되었으니, 이후 그를 지나는 사람마다 입을 가리고 코를 막았으며 눈쌀을 찌푸렸다. 젊은 시절, 말 타고 가던 단재는 그를 도중에서 만나자 하마下馬하며 경의를 표했다. 얼마 뒤 단재는 갔던 길을 돌아오다 다시 김유신을 같은 자리에서 마주했는데 이번엔 꼿꼿이 말 안장에 걸터앉아서는 김유신을 내려다보며 얼굴에다 가래침을 세번 뱉고는 이렇게 단죄했다. "지용智勇 있는 명장名將이 안이요, 음험취한陰險鷲悍한 정치가이며 그 평생의 대공大功이 전장戰場에 잇지 안코 음모陰謀로 인국隣國을 난한 자者" 김유신은 종래 이 땅에는 생소하기만 한 내셔널리즘의 거대한 창시자인 까닭이 이에서 말미암는다. (June 25, 2.. 2020. 6. 28.
언론으로 뜬 사람들 특징 1. 이에서 언론이란 전통의 매체 외에도 새로운 언론환경에 따른 언론매체 광의를 말한다.2. 무명시절이 길다.3. 어쩌다 언론을 탄다.4.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유명해진다.5. 거물취급 받는다.6. 자신이 진짜 거물이라 내면화한다.7. 자기가 잘 나서 거물이 된 줄 안다.8. 언론을 공격하기 시작한다.9. 기성 명성에 기성 권력을 비판하는 저항인으로 포장한다.10. 언론으로 망한다. 한방에 간다. (June 27, 2018) 2020. 6. 27.
처절한 발악 서중자유천종속書中自有千鐘粟, 책에서 천 톤에 이르는 곡식이 저절로 나온다는 말이다. 책 많이 읽으면 떼부자 된다는 말이다. 내가 저 말을 믿을 정도로 바보는 아니다. 그래도 이만큼 먹고 사는 까닭도 그나마 책을 읽었기 때문이었을런지도 모른다. 저 말이 불변의 진리라면, 나는 지금 이 순간 이건희보다, 빌 게이츠보다 부자가 되어 있어야 한다. 나보다 책 많이 읽은 사람 아직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긴 그러고 보니 그게 어쩌면 발악이었는지도 모른다. 처절한 발악. June 27, 2014 2020. 6. 27.
작가가 질 수밖에 없던 구름빵 저작권 소송 동화 '구름빵' 작가, 출판사와 저작권 소송서 최종 패소 | 연합뉴스 동화 '구름빵' 작가, 출판사와 저작권 소송서 최종 패소, 민경락기자, 사회뉴스 (송고시간 2020-06-26 17:49) www.yna.co.kr 이 소식은 여러번 전했거니와, 그러면서 이 소송은 결국 작가가 질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렇다. 졌다. 대법원까지 갔지만 지고 말았다. 질 것임을 누구보다 작가 스스로도 안다고 했다. 다만 부당한 계약을 알리고자 해서 그리한다고 했다고 기억한다. 이 건은 매절계약이 문제가 된 것이라, 매절계약이란 간단히 말해 돈 얼마 받는 것으로 제반 권리를 일체 출판사에 양도하는 것을 말한다. 이에는 재판매도 포함됨은 물론이다. 이런 매절계약은 보통 작가가 신인으로서 급전이 필요할 적에, 그리고 상품성이 .. 2020. 6. 27.
홍수도 규모가 다른 중국 중국 남부 '물난리 중'…25일 연속 경보·싼샤댐 붕괴설까지 | 연합뉴스 중국 남부 '물난리 중'…25일 연속 경보·싼샤댐 붕괴설까지, 김진방기자, 국제뉴스 (송고시간 2020-06-27 16:43) www.yna.co.kr 중국 남부 최악 홍수 사태…"싼샤댐 붕괴 우려" 소문마저 | 연합뉴스 중국 남부 최악 홍수 사태…"싼샤댐 붕괴 우려" 소문마저, 안승섭기자, 국제뉴스 (송고시간 2020-06-24 19:57) www.yna.co.kr 중국이 대국大國이긴 한가 보다. 홍수도 짱이다. 규모가 역대급이고 여타 지역 그 규모를 압도한다. 한반도엔 장마선선이 상륙했으니 같은 몬순기후 지역으로 그 영향이 더 직접적인 중국 강남은 더 피해가 극심할 수밖에 없으리라. 오죽했으면 저쪽을 수향水鄕이라 했겠는가? 황하.. 2020. 6. 27.
교수 겸 교주 배기동 교수 겸 교주 배기동 선생이다. 본인은 구석기가 전공이라지만 내 보기엔 잡탕 고고학이다. 한때는 백제 고고학을 꿈꾸었지만, 선후배 등쌀을 견디지 못하고 구석기로 올라갔다. 위로 윤덕향이 있고, 아래로는 임영진 박순발 이선복 등쌀이 있었다. 담달 정년퇴임. 남대문이 홀라당 불타내리기 전날인 2008년 2월 8일, 이란 카스피해 남방 어느메쯤 발굴현장이다. 첫째 사진에서 뒤쪽 원색 컬러 점퍼 걸치고 알랑거리며 사진 방해하는 이는 경향신문 기자 이기환이다. 둘째 사진을 보니, 촬영 중인 쎄미는 이후 시집가서 애 낳고 잘 살고 소희는 시름시름 앓다가 영원히 갔다. 이 페르샤 답사반 부두목 이한용은 저 교주님께 물려받아 전곡선사박물관장질 하는 중이다. (2017. 7. 27) 현재 배기동 선생은 국립중앙박물관장이.. 2020.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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