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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야, 기자를 만나지 못해 매몰한 500년 고대왕국 어느 정도 역사적 실상에 부합하는지는 차치하기로 한다. 고고학 발굴조사 결과를 토대로 해서 작성한 대가야 영역이라 해서 대가야 전문박물관을 표방하는 고령 대가야박물관에서 내건 지도다. 이것이 시간이 누층한 결과인지, 다시 말해 시기를 달리하는 대가야 흔적인지, 아니면 특정 시기 대가야 흔적인지는 내가 모르겠다. 나아가 저들 지역에 대가야 영향이 농후한 고고학적 성과가 있음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정치역학의 관점에서 직접 지배 흔적을 말하는지, 혹은 문화의 영향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나에게 중요한 것은 저 강역의 사실성 여부와는 별도로 대가야라는 왕조가 한때 이 한반도에 존재했고, 그 존속기간은 물경 500년에 달하지만, 그들의 활동상을 전하는 기록이 전무에 가깝다는 섬뜩함이다. 대가야는 《삼국사기》 《삼.. 2019. 6. 21.
까불다 BTS ARMY 폭격 맞은 호주방송사 호주방송사, BTS 조롱·비하에 뭇매…"불쾌했다면 사과" 한 호주방송사가 토크쇼인지 뭔지에서 방탄소년단을 소재로 올려놓고 비아냥대다가 폭격을 맞았다. 관련 보도에 의하면, 이들이 입에 올린 말들은 인종차별성 모욕까지 포함한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있다. 나는 방탄소년단을 둘러싼 그 팬클럽 ARMY의 반응을 본 적은 없다. 그것은 무엇보다 BTS가 저런 식의 비아냥에 노출된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언젠가는 터질 줄은 알았으되, 정작으로 내가 궁금한 것은 BTS를 보호하고자 하는 팬클럽의 대응이었다. 그 대응 수준이 어느 정도일 줄은, 그런 일이 없었으니 가늠이 힘들었다. 한데, BTS가 그에 노출되고, 이른바 씹히자, 아미 회원들이 들고 일어났다. 그 공격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 2019. 6. 21.
이 땅의 도굴꾼들에게 告함 (1) 고달사지 부도의 경우 *** 2006.01.20 01:04:55 지금은 역사속으로 사라진 내 과거 블로그 포스팅이다. 경기 여주군 북대면에 고달사지高達寺址라는 옛 절터가 있다. 신라 경덕왕 23년(764)에 창건된 고찰로 고려시대에는 왕들이 특별히 보호하는 사찰로 번성했던 곳이나 언제 폐기되었는지는 명확치 않다. 현재 이곳에는 국보 4호인 고려시대 부도浮屠를 필두로 원종대사혜진탑비 귀부 및 이수(보물 6호), 원종대사혜진탑(보물 7호) 및 석불좌(보물 8호) 등의 국가지정 문화재가 있으며, 이때문에 절터 전체가 사적 제382호로 보호받는 중이다. 2002년 7월 21일, 문화재청은 요상한 소식을 각 언론사 문화재 담당기자들 앞으로 전했다. 이르되 이곳 고려시대 부도가 도굴꾼들에 의해 상륜부相輪部 일부가 훼손됐다는 요지였다. .. 2019. 6. 20.
조계종은 왜 이 시점에 문화재관람료를 들고 나왔을까? "보상" vs "폐지"…수십년 논란 빚은 사찰 문화재관람료(종합)송고시간 | 2019-06-20 14:42국립공원 내 사찰 23곳 포함 67곳서 징수…해결책 없이 헛바퀴만 어제 저녁이다. 우리 종교 담당이 내일자 엠바고를 달아 느닷없이 사찰 문화재관람료 관련 기사를 올리는 것이었다. 살피니 오늘 오전 10시에 기자회견을 열어 이와 관련한 조계종 입장을 발표한다는 것이었다. 이 소식을 접하면서 나는 뜨악했다. 왜 이 시점에서 조계종이 문화재관람료 문제를 들고나왔을까? 왜 뜨악이라 하는가?문화재관람료 문제가 어제오늘의 논란이 아니기는 하지만, 이 시점에 그것을 들고나와야 할 시급성은 전연 없다고 나는 보았기 때문이다. 저런 휘발성 높은 논란에 그에 관련되는 종단이 무슨 입장을 기자회견이라는 정식 자리를 마련.. 2019. 6. 20.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은 혁명을 못한다 Taeshik KimJune 20, 2015 at 11:31 PM · 찢어지게 가난하고 찢어지게 학벌 없는 사람들은 혁명을 못한다.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는 척하고 찢어지게 학벌 없는 사람들의 수호자인양 가장해서 그들을 농노처럼 부리는 자들이 바로 혁명가다. 이런 혁명가들이 집권하고 나서 하나같이 철권통치 절대의 폭압군주가 되는 이유는 이 노예 근성을 알기 때문이다. 2019. 6. 20.
산림파괴가 도굴의 지름길 이 사진이 아마도 1938년 4월, 후지다 료사쿠藤田亮策가 부여 능산리陵産里 동고분군東古墳群을 발굴조사할 무렵에 촬영한 이 일대 유리건판일 것이다. 무엇이 도굴을 유발했는가? 그 해답의 일단을 본다. 산림파괴가 핵심이다. 산림파괴는 산을 사막으로 만든다. 그에 따라 지표가 깎인 데서 무덤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런 점에서 1971년까지도 무령왕릉이 발견되지 않은 것은 기적이라 불러야 한다. 이런 상황이 지금의 북한 개성이다. 북한은 산림 황폐화 수준이라 산에서는 고려시대 무덤들이 저딴 식으로 노출됐으니, 도굴이 아니될 수가 없다. 박정희시대 산림녹화 사업 여파로 온 반도가 밀림으로 변한 지금.... 얼마나 도굴이 힘들어졌는지 한번 생각해 봐라. 여름철이면 무덤은 흔적도 찾기 힘들다. 이 사진 역시 당시 능.. 2019.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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