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4109

하타모토와 경화사족 (2) 사무라이가 몰린 에도, 무관들이 운집한 한성 앞에서 하타모토 8만기라는 이야기를 했지만, 이들 대다수는 에도시대 수도인 에도에 머물며 명분상 쇼군을 호위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가족들 숫자만 헤아려도 인구가 상당히 될 것이라는 점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여기에 참근 교대로 지방과 수도를 정기적으로 순회하며 사는 300 제후의 번저와 그 족속들이 에도에 살아가니이 인구를 먹여 살려야 하는 도시민(조닌)까지 있으니 이를 다 합치면 백만 명이라는 인구가 이해가 안 가는 것이 아니다. 우리 한성이라고 달랐을 것인가. 한 번 따져 보자. 한성부에 살아가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사족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앞에서 본 것처럼 문과 급제자 수나 진사 급제자 수를 보면 전체 40 프로 정도가 한성부 안에 살았으니 사실상 조선의 제대로 된 사족의 절대다수가.. 2026. 5. 23.
그 많은 경화사족은 다 어디로 갔을까 우리나라 경화사족-. 흔히 서인 독재가 시작된 조선후기에나 등장한 것처럼 역사책에는 써 놨지만앞에서 필자가 쓴 대로 우리나라 역사에서 수도 근방의 사족들이 절대 우위를 점하지 않은 시대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경화사족이라는 것이 조선후기에나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오늘날 조선시대 선비 집안 하면 지방의 사족들이 하도 떠드는 통에 마치 우리나라 역사는 이들 향촌 사족들이 주도하고 좌지우지한 것 같이 보이고, 심지어는 몇몇 좀 잘 나갔다는 집안들이 자기들은 국반이니 도반이니 하며 보학하는 사람들 사이에 말들이 오가지만이런 분류는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 우리나라 조선시대는 그 전 시기 내내수도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 바글 바글 모여 살았던 사족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전주이씨가 가장 우위를 점한 것은.. 2026. 5. 23.
하타모토와 경화사족 이야기 (1) 쇼군을 대면할 자격이 있는 사람들 일본사에는 하타모토 8만기(旗本八万騎)라는 말이 있다. 하타모토旗本란 에도시대 사무라이 계급 사다리에서 최정점에 있던 이들로,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쇼군과 직접적인 주종관계가 맺어진 이들이 바로 하타모토와 번주 (영주)들이고, 번주에 소속된 번 사무라이들은 쇼군이 볼 때는 배신陪臣이 된다. 따라서 쇼군은 원칙적으로는 하타모토나 번주 정도나 되야 대면이 가능하지 번주의 신하인 배신들은 상대도 해주지 않았다. 에도시대 소위 말하는 300제후에 소속된 사무라이들은 쇼군이 볼 때 모두 배신들이었기 때문에, 쇼군이 직접 상대 할 만한 가격의 사무라이 숫자는 많지 않았다 할 것이다. 하타모토는 쉽게 말해 쇼군에 직속된 무사들이라 할 수 있다. 에도시대 대부분의 사무라이가 번주에게 소속된 사무라이였던 데 반해, 하.. 2026. 5. 23.
꼴랑 45채 루마니아 선사 시대 마을에 350제곱미터 규모 초대형 건축물 프리드리히-알렉산더 에를랑겐-뉘른베르크 대학교Friedrich–Alexander University Erlangen–Nurnberg 제공 프리드리히-알렉산더 에를랑겐-뉘른베르크 대학교Friedrich–Alexander University Erlangen–Nurnberg (FAU) 연구진이 대규모 선사 시대 정착지의 조직 방식에 대한 새로운 단서를 발견했다. 연구진은 초대형 구조물로 알려진 특별한 유형의 건축물에 주목했다.루마니아에서 진행된 발굴 조사를 통해 이러한 유형의 건축물이 소규모 정착지에서도 발견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초대형 구조물은 수천 명의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공동체가 뚜렷한 위계질서 없이 어떻게 기능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제공한다.루마니아 북동부 보토샤니 지역Botoșani.. 2026. 5. 23.
잉카 제국 통치 수 세기 전 페루의 혼인과 이주 네트워크 드러나 시드니 대학교 제공페루 태평양 연안을 따라 장거리 이주가 최소 800년 전, 잉카 제국이 등장하기 수 세기 전, 그리고 기존에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일찍 시작되었다는 새로운 국제 연구 결과가 나왔다.고대 DNA(aDNA)를 고고학적 및 역사적 자료와 함께 분석한 이 연구는 잉카 제국 시대(서기 1400년~1532년) 이전 태평양 연안을 따라 인구 이동이 있었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를 제시하며, 잉카 이전 해안 공동체가 역사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활발하게 이동하고 지역 및 광역적으로 연결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된 이 연구는 사람들이 페루 북부 해안에서 남쪽 친차 계곡Chincha Valley까지 700km 이상을 이동했음을 시사한다.. 2026. 5. 22.
[세계고고학은 지금 잔류물 분석 전쟁 중, 너무나 고요한 한국고고학] 육개장 사발면의 경우 하루가 멀다 않고 요새 쏟아져 들어오는 세계고고학 최신 흐름이 저것이다.residue라 해서 잔류물을 말한다. 주로 도기나 자기, 혹은 금속기, 혹은 석기라 대상이라, 과거 우리 조상들이 쓰다 버린 것들이니, 이 쓰레기더미가 실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둔갑한지 오래라왜 저런 쓰레기가 고고학에서는 보석인가?저런 도구들에 우리 조상님들이 살아간 흔적이 녹아있기 때문이다.구체로 무엇인가?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로 흔히 의식주 세 가지를 거론하거니와, 저 잔류물 검사는 모름지기 그런 것은 아니지만 주로 먹거리와 관련한다. 말할 것도 없이 먹거리는 그 자체 기적으로 가끔 남아있기는 하나 대부분 부패해서 사라진다. 하지만 어딘가는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라, 특히 지방이나 단백질은 어딘가에 반드시 눌러붙어 끈질.. 2026. 5. 22.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