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4849 뚜껑이 날아가면 고인돌이 되어버리는 석실분, 일본 석무대 고분의 경우 한반도 청동기시대 유산을 대표한다는 소위 고인돌은 그 형식에 따라 상다리 모양으로 울뚝한 탁자식(북방식)과 옴팡하니 돌뚜껑이 바닥에 찰삭 들어붙은 바둑판식(남방식), 그리고 뚜껑은 돌판으로 덮어버리고 그 아래다가 매장 주체 시설을 마련한 개석식(지하석곽식) 세 가지로 흔히 구분하거니와 저 중에서도 마지막 개석식은 실상 고인돌이 아니라 완연한 석실분이라, 고인돌로 볼 수도 없거니와 문제는 나머지 둘, 곧 상다리 탁자식과 배깔고 바닥에 누운 바둑판식이 되겠거니와 저 배깔고 누운 바둑판식도 이런 시설을 만들던 당시(대체로 청동기시대) 지표 사정을 알기 힘든 경우가 많거니와, 이 경우는 돌뚜껑 자체를 봉분으로 썼다 봐야 한다.문제는 우리가 고인돌이라 할 때 그 마스코트와 같은 탁자식. 그 대표주자가 앞서 여러 .. 2026. 7. 31. 의도하지 않은, 일상성이 의미를 부여하는 일기 필자는 최근 조선시대의 일기를 탐닉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이것저것 찾아 닥치는 대로 읽고 있는 바, 그 동안 파고 들던 호적과 족보의 문제도 옆으로 잠시 제쳐둔 상태다. 일기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조선시대 일기 중에는 누군가 읽을 것을 의식하고 쓴 일기가 상당히 많은데, 이런 일기들에서는 필자가 원하는 정보들을 얻기가 쉽지 않다. 이런 일기들은 대개 정치판 이야기가 많고, 당파의 문제도 예민하게 건드리는데, 정치사 하는 분들에게는 관심의 대상이 되겠지만, 필자에게는 치지도외의 내용이 되겠다. 필자는 이 블로그에 쓰는 대로 조선시대 사람의 일상, 삶, 건강과 질병 등 부분을 파고 드는데이런 정보는 사료에서 얻기가 쉽지가 않다. 우리나라는 문헌이 많은 나라라 하지만 일상의 삶을 적어 놓은 글이 많지가 않기.. 2026. 7. 31. 조선시대 서북지역을 주목하라 한 가지 생각을 써 둔다. 우리나라 18세기 초반까지 향촌 사회에 노비가 바글바글하고 이 노비사역을 기반으로 양반이 존재한 것은앞에서도 한 번 썼지만, 기본적으로 이런 모양의 대농장이 노비사역을 바탕으로 발달하게 된 것은산수의 문제라, 우리나라 남부지역 전역이 비슷한 상황이었을 것으로 본다. 물론 지역간 차이가 조금씩은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이런 현상은 조선의 시스템이 만든 문제라 시간이 흘러가면 이런 식으로 발달할 수밖에 없어, 지역간 차이가 별로 없었을 것으로 본다는 말이다. 간혹 우리나라 호적이 제대로 남아 있는 곳이 한반도 내 일부지역에 국한되어 있어, 노비가 많은 것은 그 지역 특유의 상황으로 이야기하는 경우고 보는데, 앞에서도 한 번 썼지만 산수계산만 해도 저런 방식으로 될 수밖에 없는 것은 .. 2026. 7. 31. 노비의 숫자와 양반 18세기 중엽까지도 우리나라 향촌에는 양반이 많게는 수백 명씩 노비를 거느리고 있으며이런 양반이 한 마을에 여러 명 있는 있는 것이 포착된다. 이들이 바로 그 마을 대부분 토지를 점유하고 노비를 사역시켜 농사짓는 사족들로, 이들은 이 노비와 토지를 근거로 심지어는 과거 급제 없이도 대대로 유학 이상의 직역을 안정적으로 받으며 사족으로 동네에 군림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당쟁이 수백 년에 걸쳐 장기간 지속되며 불이 꺼지지 않고 내연한 것도 바로 이때문으로, 당쟁에서 패배한 족속들도 향촌에 가지고 있는 토지와 노비만으로도 충분히 존속하며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이 대과는 하지말고 생원진사까지만 하라고 했다고 하고, 몇 대에 한 번씩 생원 진사만 내고도 향촌의 유종으로 군림.. 2026. 7. 31. 일제시대 내내 출판 1위는 족보 앞서 포스팅한 통계에서 1920년대 10년간 조선에서 가장 많이 출판된 책은 족보라고 했거니와그러면 시간이 흘렀을 때 상황은 좀 달라졌을 것인가, 1938년에는 아래와 같은 기사가 있다. 근년 들어 다른 종류의 도서가 점차 늘어가고 족보와 문집은 그 숫자가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전체 출판물의 30프로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족보와 문집이 출판물 중 가장 많았다는 기사는 1930년대 내내 신문기사를 장식한다. 이 당시 조선의 신문에서는 매년 출판물 통계를 계속 인용 보도하였는데, 해마다 올해도 1위는 족보이다, 라고 기사를 쓰고, 한심하다, 운운의 개탄조 글을 계속 싣고하였는데 이런 상황이 거의 30년대 말까지 계속되었으니우리나라는 일제시대 내내 출판물은족보와 문집만 찍어대고 있었던 .. 2026. 7. 31. 일제시대 서자를 굳이 표기 하겠다는 족보 앞서 일제시대 신문기사에도 족보에 굳이 서자를 표기하겠다는 통에 적서간 싸움이 벌어져작게는 소송전, 크게는 패싸움까지 벌이는 신문기사가 나오는 바, 사실 족보에 서자를 표시하는가 아닌가 하는 것은 집안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족보에서 서자 표기가 사라지는 것은 19세기 후반 되면 왠만한 집 족보에서는 서자 표기가 잘 보이지 않는다. 일제시대까지 서자를 굳이 표기하겠다고 박박 우기는 것은 문제가 있는 행동으로, 서자들 쪽에서는 당연히 들고 일어나 패싸움이라도 벌여 막고자 했을 것이다. 이처럼 일제시대 신문기사에는 서자를 표기하려다 싸움이 난 족보 이야기를 가끔 보도하고 있지만 필자 생각으로는 이런 상황이 일반적인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일제시대 기사르 보면, 이 당시 족보란 이미 상업화하여 구매자라 할 .. 2026. 7. 31. 이전 1 ··· 3 4 5 6 7 8 9 ··· 4142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