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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해 외딴 섬 개뼈, 분석했더니 개는 사라지고 늑대가 3,000~5,000년 인간과 함께한 가축화 단계 늑대로 추정 스톡홀름 대학교 제공 과학자들이 발트해 작은 외딴 섬에서 수천 년 된 늑대 화석을 발견했다. 이 늑대는 인간에 의해서만 옮겨질 수 있는 곳이었다. 프랜시스 크릭 연구소Francis Crick Institute, 스톡홀름 대학교, 애버딘 대학교, 이스트 앵글리아 대학교 연구진이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에 발표한 이 연구는 회색늑대가 선사 시대 사회에 의해 관리되거나 통제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3,000~5,000년 된 이 늑대 유골이 스웨덴 스토라 카를쇠Stora Karlsö 섬 스토라 푀르바르Stora Förvar 동굴에서 발견되었다.이 동굴은 신석기.. 2025. 11. 26.
현대 개들은 늑대 혈통을 지니며 심지어 치와와도 그래 by 미국 자연사 박물관American Museum of Natural History 미국 자연사 박물관과 스미소니언 국립 자연사 박물관 과학자들이 주도한 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오늘날 개 대부분은 가축화 이후 늑대 혈통을 낮지만 검출 가능한 수준으로 지니며, 이는 체구, 후각, 성격 등의 특징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에 발표된 이 연구는 새롭게 밝혀진 유전자 흐름이 다양한 인간 환경에서 개의 생존에 고유한 이점을 제공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연구 결과에 따르면, 가축화 이후 늑대 혈통post-domestication wolf ancestry은 대형 샤일로 셰퍼드Shiloh sh.. 2025. 11. 26.
호적은 문란해진 것이 아니다 타협이 많아졌을 뿐 우리나라 19세기 삼정문란. 이 삼정 문란 자체를 모두 따져봐야 하겠지만그 중 하나로 나오는 예가 바로 호적의 문란. 그런데 엄밀하게 말하면 우리나라 18-19세기 호적은문란해 졌다고는 해도 그것이 무슨 없는 것 억지로 창작해낸 것이 아니라, 집단과 집단의 이해가 부딪혀. 충돌했을 때 이를 타협하는 방식으로 뭔가 이색적인 기록을 남기는 방식을 택했기 때문이다.예를 들어보자, 영조 때 균역법이 1850년인가 시행되었는데이 법은 복잡하게 볼 것 없이 지금까지 군포 2필 내는 평민들 부담을 1필로 줄여준다. 이것이다. 문제는 그러면 그렇게 줄어드는 군포를 어디서 충당하느냐 이것인데, 똑똑하디 똑똑한 영조대왕이양반이 내야 그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을 모르겠는가? 그런데 양반들에게 군포를 내라고 했다가는 당장 자신.. 2025. 11. 26.
21세기의 대동보는 어떻게 해야 살아 남는가 족보라고 하면 케케묵은 고리짝 유물처럼 인식되는 세상이지만,사실 지금 족보, 그러니까 집집마다 있는 문중 대동보라는 물건은과거의 유물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아주 빠른 집안이 15세기 경, 좀 역사가 있는 집안도 16, 17세기 경이나 되야 족보가 출현하기 시작하는데 이때 족보라는건 아는 사람 다 적고문중 후손 수단도 제대로 안 되는 터라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그나마 족보의 꼴을 갖추기 시작하는건 대략 18세기 중엽 부터인데 이것도 잘나가던 집안이나 그렇지 19, 20세기에야 대동보를 꾸린 일족도 수두룩하였다. 19세기까지도 우리나라 대동보는 서자는 서자로 표시하고 아예 빼버리는 집안도 있었던 바, 족보에 서자 적자 표시 안하기 시작한 것이 일제시대부터이고,깐깐하게 따지던 절차도 없이 문중 후손이라 하.. 2025. 11. 26.
2019년 미국 클리블랜드 워크샵 이번에 청주박물관에서 고고기생충학과 화장실고고학이라는 제목으로 워크샵을 했지만 사실 이런 워크샵은 처음이 아니고 2019년에 미국 인류학/고고학자들을 대상으로 워크샵을 했다. 클리블랜드 미국인류학회/고병리학회에서다. 필자가 주최자 Organizer였고경희대 홍종하 교수가 함께 참여했다. 2025. 11. 26.
시베리아의 겨울 앞 사진의 연속이다. 이때 경희대의 홍종하 교수, 유해감식단의 이혜진 박사와 함께 러시아 북방연구소와 공동으로 시베리아 현지민의 인골 조사를 했다. 2019년 1월의 일이니 지금 7년이 다 되어 간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자 러시아 학자들과의 연락도 끊어져 버렸다. 아마 필자도 다시는 러시아에 연구를 위해 들어갈 수는 없으리라. 죽기전에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다시 탈 일이 있을까? 알수 없는 일이다. 사람 일이라. 2025.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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