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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만 년 전 케냐 발자국이 폭로한 파란트로푸스 보이세이Paranthropus boisei 케냐 북부 고대 호수 옆에서 발견된 화석 발자국들은 초기 인류의 행동을 보여주는 가장 명확한 기록 중 하나를 연구자들에게 제공한다. 이 발자국들은 약 143만 년 전 것으로, 적어도 8개체 호미닌hominins이 땅이 굳기 전 젖은 땅을 가로질러 걸은 한 순간을 포착한다.이 발자국들은 투르카나 호수Lake Turkana 근처 쿠비 포라 지층Koobi Fora Formation에서 발견되었다. 발 모양과 걸음걸이를 바탕으로 연구자들은 발자국을 남긴 사람들이 멸종된 인류 친척 파란트로푸스 보이세이Paranthropus boisei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추측한다. 이 종 화석은 대부분 두개골과 치아뿐이어서, 나머지 신체 부위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발자국은 화석이 거의 보존하지 못하는 중요한 정.. 2026. 7. 30.
독일 중부서 로마 시대 장옥長屋 30채가 이룬 게르만 정착지 발견 독일 빌레펠트-지커Bielefeld-Sieker에서 서기 2세기에서 5세기 사이에 조성된 대규모 게르만 정착지가 발굴되었다. 베스트팔렌-리페 지역 협회Regional Association of Westphalia-Lippe (LWL) 발굴 조사 결과, 당시 대부분의 공동체가 소규모 농가나 흩어진 주택군에서 생활한 동부 베스트팔렌East Westphalia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정착 형태가 드러났다.발굴팀은 최소 30채 대형 장옥longhouses을 확인했는데, 일부는 너비가 최대 8미터(26피트), 길이가 최대 30미터(98피트)에 달했다. 연구진은 또한 공예 작업이나 저장 공간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움푹 들어간 구조물을 포함한 여러 개 작은 건물도 발견했다.이 정착지 규모와 배치로 미루어 보아 로.. 2026. 7. 30.
발굴 조사를 통해 드러난 칼리닌글라드의 전신 쾨니히스베르크의 역사 러시아 칼리닌그라드Kaliningrad의 역사적인 외곽 지역(Far Forstadt)에서 진행된 긴급 발굴 조사에서 400년이 넘는 세월을 아우르는 놀라운 유물들이 발견되어, 16세기부터 제2차 세계 대전까지 옛 프로이센 도시 쾨니히스베르크Königsberg의 일상생활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제공한다.러시아 과학 아카데미 고고학 연구소 삼비아 고고학 탐사대Sambian Archaeological Expedition가 2026년에 실시한 이번 발굴 조사는 레닌스키 프로스펙트Leninsky Prospekt, 크라스누크탸브르스카야 거리Krasnooktyabrskaya Street, 모레호드나야 거리Morekhodnaya Street로 둘러싸인 공원에서 계획된 재개발 공사에 앞서 진행되었다.고고학자들은 쾨니히스.. 2026. 7. 29.
중세 공동묘지에서 드러난 유럽 최후의 이교 국가 리투아니아로의 이주 역사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Vilnius에 있는 중세 공동묘지에서 실시된 동위원소 연구를 통해 이 도시 초기 기독교 거주민 중 일부가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이주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리투아니아가 유럽에서 마지막으로 공식적으로 이교 국가였던 시절에도 민족적, 종교적 다양성이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새로운 증거다.이번 연구는 빌뉴스 구시가지 복슈토 거리Bokšto Street에 있는 13~14세기 중세시대 공동묘지를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고고학자들은 이곳에서 도시 초기 기독교 공동체와 관련된 매장지를 발굴했다. 연구진은 인골에 보존된 화학적 특징을 분석해 많은 사람이 어린 시절을 어디에서 보냈는지 밝혀냈다.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곳에 묻힌 사람 상당수는 리투아니아 토착민이 아니었다. 동위원소 분석 결과.. 2026. 7. 29.
[시장 없는 귀신 왕조] (5-총결) 봄날 신기루 같은 오일장의 추억 대략 10년 안쪽에 일어난 일이다. 무형유산 삼을 만한 먹거리를 찾던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이 5일장을 착목한 적이 있다. 그 무렵이면 김치 담그기 문화가 일약 인류무형유산에 등재하고, 그에 힘입어 장담그기니 하는 유사 상품 개발이 잇따를 때라, 옳거니 해서 이런저런 의견 받아서 그래 오일장도 있지! 해서 조사에 나섰더랬다. 그 기초 조사를 어느 연구소에서 맡았으니, 그네들이 그렇게 조사하고선 (무형)문화재위원회에 보고까지 했더랬다. 당시 나는 그 위원이었으니, 그날 일을 어렴풋이 기억한다. 문제는 그 오일장이 유구한 전통쯤 되는 줄 알았는데 웬걸?근현대를 지나 조선시대로 들어가니?오일장이 없네?당혹스럽기는 연구소도, 위원회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나는 그런갑다 했다.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2026. 7. 29.
[배째!] 일제시대 족보 편찬 흔한 풍경 일제시대 일기를 보면, 그 당시 족보를 만들던 정황이 적혀 있어 흥미를 끈다. 모 집안에서 족보를 만들던 시점은 1930년대 중반-. 일제시대는 이전에 목판으로 찍던 족보가납활자로 전환하였던 시기이다. 인쇄가 깨끗하고 제본 등이 폼 나는 대신에, 가격이 많이 상승한 것 같다. 그 당시 족보를 만들던 정황이 일기에 적혀 있는데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이 집안은 족보를 만들 때 비용이 넉넉치 않았던 것 같다. 가장 문제는 수단收單 작업에서 명단을 보내 오고는, [수단이란 단자를 거두어 들인다는 족보 용어다.]납부해야 하는 비용을 내지 못하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는 참 난처하겠다. 명단이 왔으니 뺄 수도 없는데 나 돈 몬냅니다 하고 뒤로 자빠진 것이다. 그래서 일기를 적은 이가 대금을 받기 위해 후손들을 만나.. 2026. 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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