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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없는 7,000년 전 슬로베니아 농경 사회 해골들이 말해주는 것들 킬 대학교Kiel University 제공 머리가 없는 수십 구 인골이 마치 무작위로 겹쳐 있거나 나란히 놓인 모습은 언뜻 섬뜩하다.2022년부터 연구진들은 슬로바키아 브라블레Vráble 인근에 위치한 7,000년 된 정착지에서 이러한 유골들을 발굴한다.머리 없는 해골들은 고대 사회의 위기를 보여주는 끔찍한 증거로서 신석기 시대 대학살의 잔해일까?초기 뼈 분석과 지금까지의 발굴 결과들을 종합해 보면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반면, 우리에게는 특이해 보이는 매장 방식이 지역적, 더 나아가 광범위한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사회적 관행 일부였다는 증거가 있으며, 갈등이나 위기의 흔적은 극히 제한적입니다."킬 대학교(CAU) 마틴 푸르홀트Martin Furholt 교수는 말한다.그는 이번 연구 주저자이며, 해당 .. 2026. 6. 9.
80만년 전 초기 인류은 목적에 맞는 석기 제작 위해 현무암 의도적으로 선택 by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Hebrew University of Jerusalem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약 80만 년 전 고대 인류는 단순히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돌을 사용하는 대신, 도구 제작 각 단계에 따라 특정 현무암basalt 채집지를 의도적으로 선택한 것으로 나타났다.연구진은 노출된 현무암과 현재는 매몰된 현무암 용암류에서 발견된 석기 도구의 지구화학적 "지문fingerprints"을 추적해 이 인류가 환경에 대한 상세한 지식, 뛰어난 계획 능력, 그리고 세대를 거쳐 유지되고 반복되는 장기적인 기술 전통을 지녔음을 입증했다.Scientific Reports에 발표된 새로운 연구는 게셰르 베놋 야아코브Gesher Benot Ya'aqov (GBY) 아슐리안 유적Acheulian site에서 발견된.. 2026. 6. 9.
빈돌란다 요새가 선물한 로마시대 샤워용 나막신 로마인들은 뜨거운 바닥으로부터 발을 보호하고 미끄러운 표면을 더 잘 이동하기 위해 목욕탕에서 나막신 형태의 신발clog-style footwear을 신은 최초의 사람들이었다.고고학자들은 하드리아누스 장벽Hadrian's Wall 인근 고대 로마 요새인 빈돌란다Vindolanda에서 수천 점 보존 상태가 양호한 신발을 발견했다.그중에서도 이 나막신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샤워용 신발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나무로 된 플랫폼 밑창wooden platform sole과 가죽 갑피leather upper로 구성된 "목욕용 나막신bath clog"은 오늘날 사람들이 탈의실 샤워실이나 네일샵에서 무좀과 같은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신는 슬립온 신발slip-on shoe과 유사한 형태다.하지만 로마인들은 라틴어로 "스쿨.. 2026. 6. 9.
고대 치석 분석을 통해 밝혀낸 일본 구강 미생물 군집의 지역적·역사적 변화 by 도호 대학교Toho University 일본 연구진이 인체 유골 치석dental calculus에 보존된 DNA를 분석해 일본인의 구강 미생물oral microbiomes 군집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구명했다.주로 에도 시대 사람들 치석과 현대인 치석에서 추출한 치석의 미생물 구성을 비교 분석한 결과 시대, 지역, 그리고 여러 구강 세균 종의 계통 발생과 관련된 차이점을 발견했다.이번 연구 결과는 치석이 인류 역사와 인간과 미생물 간 관계를 연구하는 새로운 길을 열어줄 수 있음을 시사한다.본 연구는 Scientific Reports에 게재되었다.도호대학교, 도쿄대학교, 규슈대학교 및 공동 연구기관 연구진은 에도 시대(1603~1868) 일본인의 구강 미생물군을 인골에서 추출한 치석에 보.. 2026. 6. 9.
만만치 않은 조선시대 족보와 호적 - CODA 앞에서 조선시대 족보와 호적이 만만치 않다는 이야기를 쓴 바,이 시대 족보와 호적이 개판 오분전이라는 인식을 갖게 된 건워낙에 19세기 삼정 문란에 엉망이라는 이야기를 교과서에서 반복적 주입을 한 데다, 족보도 날조에 사기로 가득찬 믿을 수 없는 문건이라는 선입견 때문인데, 사실 이 시대 호적과 족보는 거짓이 많은 건 사실인데, 그렇다고 해서 그 거짓이 방만함과 게으름의 산물인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족보와 호적은 정보를 수단收單하면, 그냥 싣거나 임의로 맘대로 고치거나 빼거나 한 것이 아니고, 반드시 이전 식년式年의 자료나 족보라면 이전 족보와 대조를 해서 그때와 비교하여 달라진 점을 확실 편찬자가 알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다시 말해 족보와 호적에 엉터리가 들어가더라도 방만함과 안일함.. 2026. 6. 8.
[삼국강역] 분열한 기성학단의 서기 500년 무렵 지도 이것이 일반은 물론이요, 학계에 통용하는 삼국강역도다. 475년 고구려-백제 전쟁 이후 550년대 신라에 의한 한강유역 점령까지 대강 저랬다고 한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적지 않아서 요새는 서서히 백제가 한강유역을 여전히 장악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런 반론에 의한 서기 500년 무렵 삼국 강역도는 얼추 아래와 같이 된다. 저 부분, 곧 한강 하류 유역이 관건이 된다. 암튼 저런 강역이 550년대 진흥왕 시대를 맞은 신라 팽창 정책에 따라 아래와 같이 변했다고 한다. 간평한다. 저 세 지도 중 지도1 기성 학단이 주장하는 서기 500년 무렵 강역도는 어림반푼어치도 없다. 그렇다 해서 지도2 백제의 한강 유역 상실설을 부정하는 기성 강단의 주장에 따른 서기 500년 무렵 삼국 강역도. 특히 백제.. 2026.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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