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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륜(慧輪) 신라 중기 당으로 건너갔다가 다시 인도로 구법 여행을 떠난 승려. 해동고승 권2 : 삼국유사 제3권 탑상 제4 귀축제사(歸竺諸師) : 광함(廣函)의 《구법고승전(求法高僧傳)》에 이렇게 말했다. 승려 아리나(阿離那·나那는 야耶라고도 했다) 발마(跋摩·마摩는 혹은 낭郞이라고도 한다)는 신라 사람이다. 처음에 정교(正敎)를 구하려 일찍이 중국에 들어갔는데, 성인(聖人)의 자취를 두루 찾아볼 마음이 더했다. 이에 정관(貞觀) 연간(627~649)에 당(唐)나라 서울인 장안(長安)을 떠나 오천(五天)에 갔다. 나란타사(那蘭陀寺)에 머물며 율장(律藏)과 논장(論藏)을 많이 읽고 패협(貝莢)에 베껴 썼다. 고국(故國)에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홀연히 그 절에서 세상을 떠나니, 그의 나이.. 2018. 3. 30.
현각(玄恪) 신라 중기 당으로 건너갔다가 다시 인도로 구법 여행을 떠난 승려. 해동고승 권2 : 삼국유사 제3권 탑상 제4 귀축제사(歸竺諸師) : 광함(廣函)의 《구법고승전(求法高僧傳)》에 이렇게 말했다. 승려 아리나(阿離那·나那는 야耶라고도 했다) 발마(跋摩·마摩는 혹은 낭郞이라고도 한다)는 신라 사람이다. 처음에 정교(正敎)를 구하려 일찍이 중국에 들어갔는데, 성인(聖人)의 자취를 두루 찾아볼 마음이 더했다. 이에 정관(貞觀) 연간(627~649)에 당(唐)나라 서울인 장안(長安)을 떠나 오천(五天)에 갔다. 나란타사(那蘭陀寺)에 머물며 율장(律藏)과 논장(論藏)을 많이 읽고 패협(貝莢)에 베껴 썼다. 고국(故國)에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홀연히 그 절에서 세상을 떠나니, 그의 나이.. 2018. 3. 30.
현조(玄照) 해동고승 권2 2018. 3. 30.
정명왕(政明王) 신라 제31대 신문왕(神文王) 본명이 김정명(金正明)이라, 이를 따서 그의 생전 즉위시에는 이리 부르기도 했다. 삼국유사 제2권 기이(紀異) 제2 가락국기(駕洛國記) : 신라 제31대 정명왕(政明王)이 즉위한 개요(開耀) 원년 신사(辛巳; 681)에는 금관경(金官京)이라 이름하고 태수(太守)를 두었다. 삼국사기 권 제32 (잡지 제1) 樂 : 고기(古記)에서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정명왕(政明王) 9년(689)에 신촌(新村)에 행차하여 잔치를 베풀고 음악을 연주케 하였는데, 가무(舞)는 감(監) 여섯 사람·가척(尺) 두 사람·무척(舞尺) 한 사람이고, 하신열무(下辛熱舞)는 감 네 사람·금척(琴尺) 한 사람·무척 두 사람·가척(歌尺) 세 사람이고, 사내무(思內舞)는 감 세 사람·금척 한 사람·무척 두 사.. 2018. 3. 30.
준필(俊必) 신라 말기, 금관성을 장악하고는 성주장군이 된 잡간(匝干) 충지(忠至)의 핵심 참모 중 한 명이었던 듯한 아간(阿干) 영규(英規)의 아들로, 김수로 사당 제사장에서 행패를 부리다가 갑자기 병이 나서 죽었다. 삼국유사 제2권 기이(紀異) 제2 가락국기(駕洛國記) : 신라 말년에 충지(忠至) 잡간(匝干)이란 이가 있었는데 높은 금관성(金官城)을 쳐서 빼앗아 성주장군(城主將軍)이 되었다. 이에 영규(英規) 아간(阿干)이 장군의 위엄을 빌어 묘향(廟享)을 빼앗아 함부로 제사를 지내더니, 단오(端午)를 맞아 고사(告祠)하는데 공연히 대들보가 부러져 깔려죽었다. 이에 장군(將軍)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다행히 전세(前世)의 인연으로 해서 외람되이 성왕(聖王)이 계시던 국성(國城)에 제사를 지내게 되었으니 마땅히 .. 2018. 3. 30.
간원(間元) 김수로왕 후손으로 신라 말기 금관에 거주하면서 아버지 규림(圭林)을 이어 김수로 사당에 제사를 지내는 일을 주관했다. 삼국유사 제2권 기이(紀異) 제2 가락국기(駕洛國記) : 신라 말년에 충지(忠至) 잡간(匝干)이란 이가 있었는데 높은 금관성(金官城)을 쳐서 빼앗아 성주장군(城主將軍)이 되었다. 이에 영규(英規) 아간(阿干)이 장군의 위엄을 빌어 묘향(廟享)을 빼앗아 함부로 제사를 지내더니, 단오(端午)를 맞아 고사(告祠)하는데 공연히 대들보가 부러져 깔려죽었다. 이에 장군(將軍)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다행히 전세(前世)의 인연으로 해서 외람되이 성왕(聖王)이 계시던 국성(國城)에 제사를 지내게 되었으니 마땅히 나는 그 영정(影幀)을 그려 모시고 향(香)과 등(燈)을 바쳐 신하된 은혜를 갚아야겠다.”.. 2018.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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