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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거대한 농업, 그를 향한 야망 이전에 소개한 것 같은데 필자는 연전에 일본의 계간고고학 별책을 하나 편집한 적 있다. 이 책의 주제는 "도시화와 고병리". 쉽게 말해 도시화라는 역사상의 변화가 사람들의 건강과 질병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에 대한 특집 단행본이었다. 물론 이 이야기를 하자는 것은 아니고. 필자 필생의 작업은 결국 사람들의 건강과 질병이 될 진대-. 지금 동물과 식물을 열심히 파고 있는 것도 결국은 작물과 가축사육이 인간 생활과 질병에 미치는 영향을 보고자 함이라. 그때문에 최근에는 따로 농업 공부를 약간씩 하고 있다. 시간을 많이 낼 수가 없어 운동할 때나 출퇴근 때 강의를 듣는다던가, 틈틈이 책을 본다던가 하는 정도인데, 이 작물과 가축사육을 대상으로 한 농학이라는 분야가 정말 거대하여 이게 이렇게 가끔 공부한다고 될.. 2024. 10. 5.
이완용의 비서 이인직 , 같은 '신소설' 작가로 이름 높은 국초 이인직(1862-1916). 그는 상당히 소신있는(?) 친일파이기도 하였다. 그는 이완용(1858-1926)의 비서 노릇도 했는데, 그래서인지 이완용이 남긴 에도 이인직이 나온다. 1911년 4월 16일, 이인직은 항아리(병?) 하나를 들고 이완용을 찾는다. 이인직이 '가모식 석유加茂式石油'의 일로 그 물건이 담긴 작은 항아리 하나를 들고 와서 그 이용하는 방법을 설명하였다. 만약 그가 좀 다른 생각을 품었다면 성냥불 하나에 역사는 바뀌었겠지만, 그럴리가. "백작 각하, 이 석유로 말씀드릴 거 같으면..." 같은 썰을 푸는 것으로 그날의 만남은 끝이었다. 근데 '가모식 석유'가 뭘까? 2024. 10. 5.
논문이라 딱딱하단 말 새빨간 거짓말이다 논문이라 딱딱한 게 아니라 다루는 주제 자체가 구닥다리라서 하품날 뿐이다. 더 간단히 말해 논문감도 안되는 글을 씨부렁거렸기 때문에 딱딱할 뿐이다. 논문 독자가 셋? 저자 본인 학회 간사 심사자? 웃기는 소리다. 읽을 가치가 없는 쓰레기라 시장에서 버림받았을 뿐이다. 논문 문체 팔아 넘어갈 생각마라. 애초 팔리지도 않을 글을 논문이라 쓴 네 잘못일 뿐이다. 내가 왜 논문 안 읽다 하는 줄 아는가? 읽고 싶게 만드는 논문이 없어서다. 재미가 있고 흥미를 끈다면 무슨 문체가 대수겠는가? 얼마나 재미없는가? 재미 하나도 없다. 왜 이딴 걸 싸질렀느냐 한숨 나오는 논문이 백편 중 아흔아홉 편이다. 논문이라 딱딱한 것이 아니라 재미라고는 애초 눈꼽만큼도 찾을 수 없기에 버림받을 뿐이다. 인용지수? 웃기고 있네. .. 2024. 10. 5.
거지소굴을 배신하는 칼라풀 선사시대 팜플렛 이 고고학 관련 축제에서 내가 주목하는 한 가지는 저 칼라풀한 홍보 팜플렛이다. 오천년 전 신석기시대 한강변이라고 지금과는 왕청 나게 달라 가을엔 흑백색 단풍이 들었겠는가? 저들이라고 색감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거지 같은 옷만 걸치고 아니면 벌개벗고 살았겠는가? 거의 모든 고고학 현장이라 해서 우리네 조상님들 생활상이라고 복원해 놓은 모습을 보면 천둥벌거숭이라 곧 쓰러지거나 빗방울 죽죽 새어들어도 하등 이상하지 않은 맨땅에 움집이라 해서 둥글게 땅 파서 거기다 덕석 하나 깔아놓고는 천둥벌거숭이로 아니면 동물가죽 가공도 하지 아니하고선 소매란 소매 팔뚝이라는 팔뚝은 엄동설한에도 다 내어놓은 거지몰골로 재현해 놓았다. 저들이라고 예술성이 없었겠으며 울긋불긋 화려한 색상이 아름다운지 몰랐겠는가? 저 빗살무늬.. 2024. 10. 5.
을축년대홍수 기념 나청호 대선사 봉은사 학술세미나 대략 2년 전쯤 이병두 선생 주선으로 강남 봉은사로 원명 주지스님을 만날 일이 잠깐 있었다. 그에서 나는 스님께 2025년이 을축년대홍수 100주년 되는 해요, 또 마침 당시 대참사에서 이곳 주지로 계시던 나청호 선사가 한강물에 둥둥 떠내려가는 이재민을 무수히 구제하시고, 또 그 내력을 담은 기념비까지 사찰 경내에 있으니, 그냥 넘길 수는 없을 듯하니 뭔가 기념사업을 꾸려 봤으면 좋겠다 말씀드렸다. 그때 드린 말씀이 저 학술세미나로 직접 연결되었는지는 나는 모른다. 다만 함께 자리한 이병두 선생이 계속 이런저런 인연을 고리로 봉은사에 간여하니, 선생이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을축년대홍수 학술세미나를 말씀드리지 않나 하는 막연한 생각은 해 본다. 이 자리는 봉은사가 주최하는 곳인 까닭에 나청호 선사 구제활동.. 2024. 10. 5.
why를 묻고 so what을 응대해야 하는 글 누누이 입이 아프도록 한 말이다. 이 말을 또 해야 하는 내가 갑갑하다. 내가 하는 일이 학문인지 아닌지 판별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So what에 대한 질문에 답이 있는가 아닌가에 달려 있을 뿐이다. 이 물음에 답을 하지 못한다면 그건 what과 how에만 머물렀다는 뜻이다. 언제나 학문은 why에서 출발해야 한다. 한반도에서 벼농사를 지었다? 언제 짓기 시작했고, 그 흔적이 구체로 어디에서 나타나며 이딴 게 학문이겠는가? 왜 그들은 벼농사를 선택했으며, 그것이 불러온 파장은 무엇인가? 이것이 학문 아니겠는가? 조 수수 기장에 대해서도 똑같은 물음을 던져야 한다. 유리? 로만글라스? 로만글라스가 어디에서 나왔고 그 양태는 어떠하며, 그 퍼진 양상은 어떠한가? 이딴 게 어찌 학문이리오? 그들이 왜 로만글.. 2024.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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