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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사금갑射琴匣을 심판한다](7) 잘못 베낀 삼국유사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5.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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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는 전반으로 보아 편술 수준이 높지는 않다. 인용에서도 빈한한 스토리 텔러 모습을 곧잘 드러낸다.

 
삼국유사 기이편이 저록한 사금갑 이야기는 물론 삼국유사 창작은 아닐 것이다.

틀림없이 그 전대 문헌 어딘가에서 가져온 것인데, 그것이 무엇인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수이전殊異傳 같은 것일 수 있지만, 그것이 망실된 지금 정확한 사정을 알 길은 없다. 

아무튼 삼국유사 창작이 아닌 것만은 명백하며, 그것이 참조했을 원전, 혹은 선대 문헌을 편의상 여기서는 A라 해둔다.

더불어 그렇게 해서 성립한 삼국유사 사금갑 이야기를 B라 지칭해둔다. 

이 삼국유사 사금갑은 실은 2부로 구성된다.

앞에서 인용한 사금갑 사건 개요, 그러니깐 신라 비처왕, 곧 소지왕이 천천정이라는 데로 행차했다가

무슨 계시를 받고서 자신의 궁주宮主가 내전에서 일하는 승려랑 바람이 난 사실을 알고는 그들을 즉결처분해서는 죽여버렸다는 것이 1부라,

그에서 비롯하는 세시풍속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덧붙이거니와 이것이 2부다. 


이로부터(사금갑 사건이 있고부터-인용자} 나라 풍습에 해마다 정월 상해일上亥日·상자일上子日·상오일(上午日에는 모든 일을 조심히 하고 감히 움직이지 않았다.

15일을 오기일烏忌日로 삼아 찰밥으로 제사를 지냈는데 지금까지 이를 행한다. 향언鄕言으로 이것을 달도怛忉라고 하니 슬퍼하고 조심하며 모든 일을 금하고 꺼려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 연못을 서출지書出池라고 부른다.



1부 사금갑 사건이 원인이라면 2부 세시풍속에 그에 따라 새로 생겨난 세시풍속을 말하거니와 결과에 해당한다.

한데 세심히 살피면 1부와 2부는 연동하지 않는다. 따로 논다.

더 간단히 말하면 1부와 같은 일에서 비롯되어 2부와 같은 일이 생겨났다고 하는데,

삼국유사 저 기술은 전연 그런 인과관계를 성립하지 못한다.

첫째 저 일이 있고서 정월 상해일上亥日·상자일上子日·상오일(上午日에는 모든 일을 조심히 하고 감히 움직이지 않았다고 하는데,

도대체 사금갑 사건 어떤 면 때문에 저 세 날을 그리 기념하게 되었는지 설명할 길이 없다. 

둘째 정월 15일을 기오일로 정하게 되어 찰밥을 해먹게 되었다는데 이것도 역시 성립하지 않는다.

사금갑 사건과 정월 15일이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기에? 

셋째 그 연못을 서출지로 부르게 되었다는데 어떤 연못? 느닷없는 말이다.

물론 전후 문맥으로 보아 왕을 향해서 당신 조심하라는 미래 경고를 담은 편지가 나온 연못을 말하는 것일 테지만, 이 역시 찬찬히 살피지 않으면 도대체가 이해 불가다.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게 되었을까?

나는 저 사금갑이 삼국유사 창작이 아니라 했거니와, 그 선대 문헌 A를 잘못 베꼈기 때문이라고 본다.

잘못 전재했으니, 더 간단히는 그것을 전재하는 과정에서 너무 많이 생략하는 바람에 원인과 결과 그 고리를 삼을 만한 대목까지 모조리 빼어버리는 바람에 저런 일이 생긴 것이다. 

저 인과 관계 불성립은 삼국유사 사금갑이 그 창작이 아니라 전대 문헌의 전재라는 결정적인 증거다.

자신이 창작했다면 저리 썼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더 간단히 말해 삼국유사 표절 수준은 빵점이다.

초등학생 저학년 수준이다.

베끼더라도 최소한 원인 결과는 연결되어야 할 게 아닌가? 

그렇다면 삼국유사 사금갑이 함유한 이런 문제들이 삼국사절요와 동국통감에서는 어떻게 드러나는가? 

미리 예고하지만, 이 문제는 심각한 다른 양상을 유발한다.

곧 절요와 통감이 삼국유사 사금갑 이야기, 곧 B를 베낀 것인가? 아니면 삼국유사도 베끼는 교본으로 삼은 A를 전재한 것인가 하는 문제를 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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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금갑射琴匣을 심판한다](6) 두 명 혹은 그 이상의 소지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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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조선시대 지식인들은 삼국사를 논할 때 모두가 동국통감을 읽었다 했거니와, 그런 까닭에 신라사를 논할 적에 이 사금갑 사건을 대서특필하면서 그네들 모두가 내전분수승과 불륜하다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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