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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그 시절 무령왕릉 공부](1) 경복궁 국립문화재연구소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5. 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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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경복궁 조감도

 
한때 무령왕릉을 제대로 공부 혹은 이해하고 싶다 해서 닥치는 대로 자료를 긁어 모으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인터넷 시대에 막 돌입하기는 했지만 지금과는 사정이 또 왕청나게 달라 근간은 필요한 자료 논문 자료집은 일일이 도서관 가서 대출하거나 복사 혹은 스캔을 하던 시대였다. 

그 무렵 자주 이용한 데가 국립문화재연구소, 지금의 국립문화유산연구원 자료실이었다. 

난 여기 가서 살다시피 했다. 

물론 기자질을 해야 했으니 여가엔 이 자료실을 그만큼 자주 이용했다는 의미다.

당시 자료실장이 성함이 각중에 안 떠오르는데 안 머라 하던 분이었으니 이 즈음 퇴임했거나 앞두고 있을 것이다.

참 신세 많이 진 분이었다.

그 연구소가 지금의 경복궁 안 국립고궁박물관 북쪽 인접 지점에 있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대전으로 내려가면서 건물조차 사라졌으니,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는 그곳이었다. 

국립중앙박물관 자료실은 당시에는 이용이 쉽지 않았고 이후 2005년인가 용산으로 이전하면서 천지개벽한 시대를 맞았다. 

두 문화재 관련 기관 장서는 성격이 다르다. 상호 보완이라 할 수 있는데, 박물관 쪽은 식민지시대 초창기 자료가 엄청 많고 나아가 각종 문화재 관련 저명한 잡지는 다 들어왔으니 이 점에서는 이쪽이 컬렉션이 좋다. 
 

붉은 동글배기가 국립문화재연구소 건물이다.

 
연구소 자료실 또한 특장이 아주 많아 무엇보다 한국학중앙연구원으로 다 넘겨주지 아니한 장서각 자료가 많았으니,

이게 당시에도 귀중본으로 분류가 되었지만 나는 하도 이쪽을 자주 이용하는 바람에 마음대로 자료를 열람하던 시절이다.

뭐 또 기자였으니 특혜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천마총 황남대총 등등 70년대 80년대 보고서 내기 전 각종 자료도 있었으니, 그때 이미 자료 관리가 개판이라, 그 자료뭉치에는 슬라이드 필름 첩도 있었지만 쓸 만한 필름은 다 빼간 상태였다. 

그땐 자료가 그리 관리되던 때였다. 그 자료를 빼간 주범들이 실은 연구소에 근무하던 사람들이었다.

내가 노땅 연구관 이상들 사무실 빼다지에서 자료실에서 빌려다가 반납하지 아니한 슬라이드 필름 수두룩빽빽하게 봤다. 

잉?

이 이야기하고 싶어 꺼낸 것이 아닌데 쏘리, 다음호로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들을 풀어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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