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대 지知는 책을 세우는 데서 시작했다.
동아시아 전근대는 책을 세울 줄 몰라 시종일관 자빠뜨려 포갰다.
이 자빠뜨림에서 중요한 요소가 구별을 위한 제첨題籤이었다.
책은 발기함으로써 비로소 경사자집 제첨의 망령을 탈출했다.
(2017. 3. 14)
***
동아시아 전근대에 책을 세우는 일은 없었다. 책이라는 것이 결국 종이를 바탕으로 삼거니와,
이 종이책이 등장하기 이전에도 그 주종인 죽책竹冊혹은 죽간竹簡 또한 근간에서 세울 수 없는 구조였다.
모조리 펑퍼짐하니 이불을 쟁여 쌓아 놓듯이 책을 그리 관리했다.
이때 문제는 그런 책이 많을 때였다.
뉘여놓고 쌓아놓기라, 그 양이 많을 때 문제가 된다.
어느 책이 어느 책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 구별을 위해 책 모서리, 그러니깐 사람 눈에 띄는 쪽을 따라서 그 책 제목을 써 두거나
아니면 그런 책 가운데다가 그 책 제목 혹은 문서 내용을 간단히 정리한 넙쩍한 종이 쪽지를 꽂아두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제첨이라 일컫는 것이다.

이 제첨이라는 말은 題簽이라고도 쓰면서 이르기를 "동장본東裝本 표지의 좌측 상단 또는 중앙에 붙이는 단찰短札 형태의 종이 또는 천으로, 주로 책의 서명인 제명題名과 책의 순서인 책차冊次 등을 기록한 첨지이다.
절첩본과 선장본의 경우에는 표지의 좌측 상단에 붙였고, 권자본의 경우에는 펼쳤을 때 본문이 시작하는 뒷면, 즉 책을 말았을 때 보이는 겉면의 가장자리에 붙였다"고
설명하거니와(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제첨 설명), 이건 뭐 설명이 더 어려우니 누가 쓴 거임?
저런 불편이 근대가 개막하고, 새로운 출판문화가 서구에서 도입하면서 일거에 변모를 겪게 되었으니
서구 서가 전통 혁신 중 하나가 책을 세우기를 한다는 사실이다.
세우면 좋은 점이 어느 책이건 내가 필요할 때 바로바로 빼낼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간단한 편리를 동아시아 근대는 알 수가 없었다.
아니, 책 시스템 자체가 그것이 애초에는 불가능했다.
따라서 근대 知의 성립은 책을 발기하는 데서 시작한다는 말은 맞다!
하긴 뭐 내가 틀리는 말 하는 거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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