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앞서 바이킹 선박의 대명사 오세베르그 선 Oseberg ship 이야기를 하면서
그에서 상여로 쓴 목제 마차가 있음을 주목하면서
한데 어찌하여 한국 문화에서는 저와 같은 양상이 왜 쉽게 드러나지 않는지를 착목하라 주문했거니와
상여bier라고 하면 한국문화에서는 뺄 수 없는 이른바 K-헤러티지 중 하나라 할 거니와
동서고금 막론하고 거의 다 확연히 드러나는 저런 상여 매장 전통이 왜 한국문화에서는 쉽게 보이지 않을까?
물론 그럴 만한 흔적이 없는 것은 아니어서,
내 기억에 경주 조양동 38호분인가 하는 기원전 1세기 무렵 목관묘에서는 마차 부속품인 개궁모蓋弓帽가 나왔다는 기억이 있거니와
그에 이어 2003년인가 경북문화재연구원이 조사한 성주 예전리 무덤에서도 같은 개궁모가 덜렁 한 점 나왔으니
이것도 마차 자체가 아니라 그 부속품 꼴랑 한 점 나사 빼서 넣은 데 지나지 않으니 도대체 이런 양상을 어찌 설명할 것이냐 이거다.
발굴?
하면 뭐하니?
어느 것 하나 왜 그런 물건을 묻었는지 설명도 못하는데 파서 뭐하느냐 말이다.
왜 수레 부품을 넣었는 줄 아는가?
이 상여라는 키워드를 머리속에 넣지 않으니 그냥 저런 물건 나왔다 하면 덮어놓고 낙랑 타령밖에 더 하겠는가?
낙랑 귀신들밖에 없으니 맨날맨날 낙랑 타령이다.
개궁모는 시신을 무덤까지 옮기는 데 쓴 탈것에 대한 상징물이다.
말 에둘릴 필요 없다.
다시 본론으로 가자.
왜 한국무덤에서는 반드시 나와야 하는 탈것이 안 나오는가?
거지라서 그렇다.
헐벗고 주려서 먹을 것도 없고 입을 것도 없는 이 땅의 우리네 조상님들은 그 상여도 아까워서 한 번 쓰고 버려야 하지만,
아니 더욱 정확히는 그것이 실어나른 주검과 함께 불태워 없애거나 혹은 그 무덤에 같이 묻혀야 하지만
그것도 재산이라고 아까워서 거듭거듭 재활용을 했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재활용?
더는 쓰지 못할 정도로 닳아 없어질 때까지 주구장창 재활용했다.
그래서 상여 하나로 이 사람도 실어나르고 저 사람도 실어나르고 온갖 시체라는 시체는 다 실어날랐으니,
그런 시체 실어나르는 상여를 따로 보관하는 집이 동네마다 꼭 하나씩 인기척 드문 골짜기에 있었으니 이를 상여집이라 한다.
우리는 왜 거지인가?
저짝에서는 소나 말이 수레로 실어나르는데, 그것을 실어나를 소나 말은커녕 수레조차 없었으니,
뭐 번듯한 도로가 있어야 수레나 말이 다니지 않겠는가?
이 도로 사정이 얼마나 심각한가 하면, 요새 내 고향 시골 깡촌에도 이제는 골짜기까지 논밭이 있는 데는 다 시멘트 도로를 깔아놓았지만
이런 사정이 10년 전, 20년 전만 해도 전연 딴판이라, 도로다운 도로는 구경도 하지 못해서
그런 골짜기 비포장 도로 닦아놓으면 뭐하는가?
비 한 번 내리면 그냥 휩쓸려 내려가 버리고 말아 도로라고 하는 곳 곳곳이 날아가고 패이고 하는 통에 경운기조차 다닐 수 없었다.
그런 도로를 보통 동네서 마을회관 마이크 방송으로 동민 여러분 해서 불러 모아 삽 곡갱이 들고 한 번씩 닦는 시늉냈거니와
사정이 이런 판국에 죄다 산에다가 묘소를 쓰는 우리네 전통에서 무슨 수레?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다.
그런 거지 같은 나라였기에 상여도 아껴서 쓰야 했다.
그게 다 돈이었으니, 가뜩이나 주리고 헐벗은 조상님들이 장례 한 번마다 상여 하나씩 아작 내서 태워버리거나 무덤에 묻어버리면
그걸 다시 만들 여력도, 돈도 없었으니 그래서 상여 대여시스템이라는 웃지 못할 제도를 만들어낸 것이다.
바로 이 거지 나라가 상여가 무덤에서 발견되지 않는 이유다.
상여는 한 번 쓰고 폐기하거나 묻어야 한다.
왜? 그건 그 죽은 사람의 탈것이기 때문이다.
이승에서의 마지막 여행 그 탈것이 바로 상여다.
왜 저런 상여가 이곳저곳 가릴것 없이 무덤에서 그리 많이 나오는가?
그 이유는 저리 간단하다.
심지어 그것을 끌던 말 소조차(소는 생전 짐 나를 때 많이 쓰고 송장 치우는 데는 잘 쓰지 않았다. 왜? 아까워서다. 소가 없으면 농사를 못 짓는다.) 같이 죽여서 묻어 버렸던 것이다.
왜 우리는 이 일을 안했는가?
아까워서다.
그만큼 거지처럼 살았기 때문이다.
불쌍하다 조상들이여.
'역사문화 이모저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네안데르탈인 약사 (0) | 2025.03.14 |
---|---|
발기한 책에서 시작한 근대 知 (0) | 2025.03.14 |
[전주 상림리 중국 동검] (6) 새삐구삐한 중국 전국시대 칼들 (1) | 2025.03.14 |
무덤 속 탈것은 덮어놓고 상여! 바이킹 무덤의 경우 (1) | 2025.03.14 |
[전주 상림리 중국 동검] (5) 26자루는 중고품 거래 단위였다! (0) | 2025.03.1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