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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해양 성지 오키노시마 옛날 창을 분석했더니 각종 금상감 문양이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5.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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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년 무렵 고분시대 후기 유물, 해양 제사에 사용한 듯

 

 
이 이야기 절대의 무대가 되는 오키노시마沖ノ島라는 섬이 도대체 어디메쯤 있는지를 확인하면 단박에 왜 이 유물이 고대 동아시아사, 특히 한일관계사에서 중요할지 드러난다. 

딱 봐도 일본열도와 한반도를 연결하는 중간기착지다. 그러니 해상 제사밖에 더 지냈겠는가? 
 

CT 스캔의 X-ray를 통해 본 창의 3차원 이미지(무나카타 지역의 신성한 섬 오키노시마와 관련 유적 보존 및 활용 협의회 제공)

 
저곳 오키노시마Okinoshima에서 1954년 고고학적 발견을 통해 고분시대 후기의 화려하게 장식된 철창iron spear 한 점이  다른 비슷한 시대 각종 유물과 함께 무더기로 발견됐다.

최근 아사히신문 보도에 의하면 문화재청 지원 아래 가시하라고고연구소에서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그러니깐 대략 서기 600년 무렵에 만든 이 철제 창 끝을 끄집어내서 각종 첨단장비 동원해 금박 청동 덮개 안에 봉인된 창을 들여다 본 결과 각종 정교한 장식 무늬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참 일본도 답답한 것이, 발굴한지 물경 70년이 지나도록 국보니 보물이니 해서 쳐박아만 뒀다가 지금에서야 뒤늦게 끄집어 내서 저런 일을 했다는 사실이다. 

암튼 고해상도 X선 CT와 X선 형광 기술 검사 결과, 녹슨 층 아래에 숨어 있던 정교한 무늬가 표면 전체를 뒤덮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바로 앞에 첨부한 사진이 그것이다. 

길이 30.5cm 이 창 끝은 오키노시마에서 고분시대(3세기~7세기) 후기로 추정되는 다른 유물들과 함께 발굴되었다.
 

창 실물(무나카타 지역의 신성한 섬 오키노시마와 관련 유적 보존 및 활용 협의회 제공)

 
이 사진이 현재의 상태다. 보다시피 금박 입힌 청동 덮개 안에다가 창끝을 넣은 상태다. 

이를 조사한 사람들은 이 창이 일본에서 제작되었지만 그 기법은 한반도에서 유래했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암튼 속내를 드러낸 저 창에서는 정교한 봉황과 덩굴 문양이 있으며, 순금으로 추정되는 물질이 상감되어 있는데, 이는 '금상감金象嵌kinzogan'이라는 첨단 금속 가공 기법을 사용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창은 해양 의례 성지로 숭배된 오키노시마 바위 아래에서 발견됐다.

오키노시마는 오래도록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었으며, 이 신성한 섬을 관리하는 무나카타 타이샤 신사의 엄격한 의례적 정화 의식을 통해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다.

오늘날에도 여성은 섬에 들어갈 수 없으며, 남성 방문객은 섬에 발을 들여놓기 전에 정화 의식을 거쳐야 한다.

4세기부터 9세기까지 오키노시마는 일본의 초기 제국주의 국가였던 야마토 정권의 중심 제의 장소였다.

야마토 정권은 특히 한반도로의 외교 및 무역 사절단 파견과 관련된 해상 항해의 안전을 기원하는 정교한 의식을 거행했다.

이러한 항해를 수호한다고 믿어지는 바다의 신에게 '봉납품hōnōhin奉納品'이라고 불리는 제물을 바쳤다. 그 일환으로 저 창을 바치지 않았겠는가 한댄다. 

저에서 드러난 봉황  문양은 천상의 은총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여겨진다.

금박과 당초 무늬 조합은 분명 그 유래가 한반도일 테지만 구조는 여전히 일본 특유하는 양식을 유지한다고 말한다. 




덧붙이자면 금속을 조각선으로 박아 넣는 금상감 단조법이 창 무늬를 만드는 데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한다.

어떤 물질이 박혀 있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금으로 추정된다.

표면 전체를 덮고 있는 장식 무늬로 미루어 보아, 이 창은 실용적인 용도가 아닌 신에게 바치는 제물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하나마나 한 말이다. 저런 무기를 실제로 썼겠는가?] 

창은 단면 삼각형이다. [이런 기술은 한국과 일본고고학이 무척이나 중요하다고 대서특필하지만 뭐가 중요한가? 이런 데 정신 팔릴 여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두어 가지 기사를 짬뽕하는 바람에 내 기술이 헷갈리는데, 봉황을 둘러싼 육각형 문양은 정체에 대한 논란이 좀 있는 모양이다.

어떤 이는 일본식 당초 무늬Japanese arabesque design라고 하는 반면 다른 연구자는 이 문양이 꽃이나 깃털 문양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한댄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오키노시마 섬에서는 약 8만 점에 달하는 유물이 발견되어 일괄로 국보로 지정되었다.

일본 문화청은 개중 약 4,200점의 금속 유물에 대한 X선 검사를 위한 보조금을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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