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문화 이모저모

[또라이 고고여행] (7) 비파형동검으로 돼지 잡았는가?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5. 3. 19.
반응형
돼지 잡았나?


중국사 기준으로 서주 시대 이래 전국시대까지 요하 유역을 중심으로 유행한 이른바 '丁'자형 혹은 T자형 자루 청동 단검은 특징적인 청동 문화로,

흔히 중국에서는 그 출토 집중 지역에 착목해 '요식 청동검辽式青铜剑'이라고 일컫기도 하거니와

이를 따라서인지, 아니면 저쪽에서 이쪽을 존중해서인지 국내 고고학도들은 요령식 동검이라 하거나,

혹은 그 생김새가 비파를 닮았다 해서 비파형 동검으로 일컫거니와

중국에서는 북방식 곡인 청동 단검北方式曲刃青铜短剑 혹은 곡인청동단검曲刃青铜短剑이라 일컫지만

저 말들이 실은 어려운 데다 동북방은 저네들 기준일 뿐이라서 그대로 따를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한편 저를 일본에서는 요령식동검辽宁式铜剑이라 하는데, 이것이 한국에 역수입되어, 혹은 식민지시대 이래 무비판으로 쓰이는 중이다. 

요녕 길림 지역이 가장 많은 출토 양상을 보이기는 한반도와 일본 열도까지 분포 양상을 보인다는 점에서 저 명칭은 이제는 문제가 없지 않다. 

암튼 이 청동 단검이 지역성을 완강히 보이고, 그 유행 시점이 일정한 바운더리가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고고학적 현상인 것만은 분명하다. 

중국 동북지역에서는 하도 이런 친구가 이제는 많이 나오니, 그 형태와 변화 양상에 따라 크게 세 가지 형태로 농구고

또 때에 따라 그 하부 카테고리까지 10여 가지로 분포하는 양상이라 대체로 보아 초기엔 넓은 잎 곡날 형태를 보이다가 후기로 갈수록 좁은 형태로 변화해 갔다고 본다. 

그것을 집중으로 계발 사용한 주체와 관련해서는 중국 학계에서는 북방 유목 민족이라 퉁치면서도 문헌을 존중해 동호東胡니 부여扶余니 하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저런 칼로 무얼 했을까?

저런 칼이 베고 쪼개고 찌르는 무기 일종임은 말할 나위가 없거니와 그래서 도대체 저 발명 도입 확산이 어떤 의미를 주느냐다.

이것이 궁극하는 연구 목적 혹은 방향일 텐데, 어찌된 셈인지 한국고고학은 죽어나사나 모양 분류한다 여념이 없고 정작 가장 중요한 저 문제는 치지도외 패대기를 친다.

물론 꼭 이런 말만 하면 다 아는 내용이다, 다 지적했다 하는데 정말 그런가?

그 어떤 글을 읽어봐도 그딴 데 심각히 고민한 놈을 나는 못봤다.

죽어나사나 모양 타령을 일삼을 뿐이다.

동시대 중원 문화와 비교할 때, 이 그네들 기준 동북지역 동검이 지닌 가장 뚜렷한 단병기 사용을 매우 선호한다는 사실이다,

중원 문화가 창을 주전 무기로 대량 사용하는 데 견주어, 그래서 칼도 무척이나 길기는 하지만 유목 특성이 강하거나 그에서 강한 영향을 받은 동북 지역에서는 이런 단검을 선호한다고 한다.

이것이 독특한 기병문화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설명하는데, 기병 작전은 전광석화와 같아야 하고 그럴러면 긴 창보다는 단검이 효율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른바 히트앤드런 전법에 최적화했다는 것이다. 

구조를 보면 날이 양단이라 이건 명백히 찌르기 용이다. 목이나 배를 찌르기 위함이다.

베는 용도가 아니라는 뜻이다. 물론 아주 베는 용도로 안 썼다는 뜻이 아니다.

그냥 찌르기다. 찔러서 그냥 그대로 푹 빼기가 아니라, 뺄 때 뭔가를 더 많이 빼내기 위한 구조다. 

내심으로는 찌르고 나서 돌리지 않았겠는가 하는데 모르겠다. 

이 동검은 단검이기에 또 구조로 봐도 한 손으로만 잡게끔 했다. 
또 특징이 그 자루 끝에다가 가중기라 해서 무게를 더 나가게 하는 구조물을 매달았다는 사실이다.
 



이 대목을 중국학계에서는 기병 싸움에서 이것이 스퍼트 위력을 배가하며  이러한 강력한 스퍼트가 분명히 목표에 더 큰 상처를 낼 수 있으며 서 있거나 이미 쓰러진 적을 마주할 때도 효율적이라 설명한다.

이 단검은 분리식이라는 점도 주목할 것을 주문한다.

말에셔 내려 근거리 백병전을 할 때는 이 분리체를 제거하고서 싸움에 나섰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기병전투에서는 가중기를 추가해 돌격 위력을 배가하고  말에서 내려 전투를 벌여야 하거나 낙마하여 전투를 벌여야 할 때는 그 무거운 것들을 신속하게 제거한 채 돌격 작전 방식을 변경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를 우리가 다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무엇보다 유목 기마전술을 운위했지만 한반도에 과연 그 기마 전술이 언제 도입되었는지 논란이 적지 않고, 또 중원이나 북방에 견주어 상당히 늦을 것으로 본다.

왜 저 비파형동검이 생각보다 한반도에 크게 유행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은 저에서 풀 수 있지 않을까 본다.

저런 동검을 보면서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그것이 수행한 기능이다.

이 기능을 생각하는 데서 그것이 초래했을 혁명? 혹은 변화 양상이 보이는 법이다.

도대체 작금 한국고고학이 구축한 비파형동검 양상을 보면 저에 댈한 의문이 전연 없어 나는 저걸로 돼지 잡는 데 썼는가 했다. 

국립중앙박물관 가 봐라!

잔뜩 전시해 놓았는데 정작 가장 중요한 내용, 도대체 저 칼을 어디다가 썼는지는 꿀먹은 벙어리인양 아무 말도 없다! 

뭐 또 다 안다고 하면 할 말은 없겠지만 말이다. 

 
*** previous article *** 

 
[또라이 고고여행] (6) 비파형동검, 장갑은 어디 갔는가?
https://historylibrary.net/entry/%E3%85%87-686

[또라이 고고여행] (6) 비파형동검, 장갑은 어디 갔는가?

흔히 바이킹 시대를 무대로 삼은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저런 식으로 무장 양태를 설정한다. 저딴 모습 존재할 수도 없고 존재해서도 안 되는 거짓말이다. 한 손엔 칼 한 손엔 도끼?저러다 칼 맞

historylibrary.net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