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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갈월동 후암동 달동네 둘러보기(2)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1. 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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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대로를 따라 숙대역 방면에서 서울역을 향하는 고갯길을 잡았으니 이쪽 지형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남산 기슭이 만든 언덕을 떠올리리라.




이쪽은 남산 자락이 흘러내린 능선이라 애초엔, 아마도 조선시대 후기까지만 해도 산이었을지 모르겠다.

용산역 방면 한강대교를 출발점으로 잡으면 삼각지와 숙대역, 그리고 서울역을 지나는 간선도로 한강대로가 펼쳐지니 이 도로가 그대로 남대문인 숭례문을 관통해서 광화문을 뚫고는 경복궁으로 치닫는다.


괴테하우스
용산도서관



이 한강대로를 따라 그 반대편엔 용산역과 서울역을 연결하는 철로도 지난다.

갈월동과 후암동은 숙대역~서울역 구간 오른편 언덕배기를 터전으로 삼거니와 그것이 끝나는 지점에 용산고가 있고 이제는 비기 시작한 용산 미군기지가 펼쳐진다.

이 일대가 달동네로 개발되기 시작한 근대의 획기는 두 번을 지적할 수 있으니 첫째가 식민지시대요 둘째가 한국전쟁 직후다.




식민지시대 지금의 용산 미군기지는 조선군주차사령부가 있던 자리라 후암동 일대는 군대마을이 집중형성된다.

조선에 주둔하는 장교들은 아마도 후암동 쪽에 집중 기거하는 터전이 있었던 모양이라 그 흔적이 곳곳에 남았으니 지금도 후암동 일대는 그네가 남긴 적산가옥이 무수히 분포한다.




그런 후암동과 주변은 일본이 물러나고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기존 고급주택들 사이로 판자촌이 언덕배기를 따라 우후죽순으로 들어차기 시작하니 특히 북한에서 내려온 피난촌이 형성된 것이라 이것이 해방촌이니 하는 지금의 달동네다.

그래서 갈월동과 후암동 골목을 비집고 다니다 보면 전형적인 일본주택과 판자촌 혹은 그것을 대강, 혹은 덕지덕지 수리한 집 천지다.



이들이 그런 곳이다.



이 기묘한 조화를 뭐라 부르겠는가?

용산역 일대 개발을 단군조선 이래 최대 역사라 하지만, 그 개발 광풍은 실은 서울역 근방이 먼저였으니 저 마천루 건물 바로 앞이 서울역이다.

저 개발 바람이 언제 후암동으로 넘어올지 모르겠지만 멀지는 않았다고 본다.




내가 아는 개발이라는 신이 저 자락들을 가만 놔둘 리 만무하다.



힐튼호텔 뒤켠 남산 자락, 여길 가만 놔두겠는가?



턱밑까지 치고 들어왔다.



이 미어터진 달동네가 언제까지 달동네이겠는가?



적산가옥과 판잣집이 공존하는 이 마을을 서울역사박물관이 조사하기도 했지만 살피니 그리 철저하지는 아니했으니

지금부터라도 샅샅한 기록을 남기는 일이 필요할 성 싶다.

오늘 살피니 얼마전까지 살아남은 용산고 사택도 사라지고 콘크리트 건물이 들어섰더라.

그렇게 흔적은 소리소문없이 사라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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