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20년대 중반이 넘어가면 조선에도 제국대학이 만들어지고 전문학교들이 설립되어 학생을 뽑기 시작했기 때문에 각종 신문에는 입학률에 대한 기사가 많이 나온다.
예를 들어 제국대학 예과 합격자 명부가 나오면 이 기사는 신문 기사로 전 합격자 이름이 모두 실릴 정도였다.
경성제일고보 합격만 해도 집안에 경사가 나는데 경성제대 예과면 조선시대 과거 문과 합격 이상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몇 년 지나고 보니, 조선인들에게는 의문이 생겼다.
바로 경성제대 예과 입학생 합격률이 조선인과 일본인 차이가 있는 것이다.
조선인은 합격률이 전체 응시자 중 10프로 정도 (응시자 600명 중 합격자 66명) 인데 일본인은 350명이 응시했는데 그 중 83명을 뽑은 것이다.
위 동아일보 사설은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 한다.
"조선인 본위의 고등보통학교가 전일과 같이 일본인 본위의 중학에 비하여 그 시설과 정도가 저열하다고 하면 이와같은 차이를 보임도 우히려 괴아할 바가 없겠으나
오늘에 있어서는 전일과 같은 차이가 소멸되었을 뿐 아니라 보통학교부터 고등보통학교까지 선발에 선발을 거쳐 대학에 지원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결국 고보나 중학교나 둘다 5년제이고 별차이 없는데 왜 이렇게 조선인과 일본인의 합격률에 차이가 있느냐 라는 것이 되겠다.
그 이유를 두고 조선인과 일본인의 합격자 쿼터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설왕설래도 많았던 모양인데, 아마 총독부에 물어봤다고 하더라도 돌아올 대답은 사실 뻔했을 것이다.
"저쪽은 중학교이고 이쪽은 고보인데 이걸 어떻게 대학 입시에서 똑같이 뽑을 수 있는가"
그렇다면, 이런 대답을 어떻게 예측 할 수 있는가?
그 이유는 이렇다.
일제시대라고 해서 고보 졸업자가 대학 가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그것이 어려웠을 뿐이다. 경성제대 예과 시험도 고보 졸업자는 볼 수 있었다. 다만 그 합격률이 낮았을 뿐이다.
조선에서 일본으로 유학간 고보 졸업자들은 중학교 졸업자와 마찬가지의 대접을 받지 못했다.
이들은 대학 예과를 들어가기 위해서도 항상 예비교에 등록하여 몇 년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요약하면 무슨 말이냐
고보 졸업생은 예과 입시를 볼 수 있다는 것이지, 중학 졸업생과 동등한 자격은 아니라는 말이다.
시험을 볼 수 있다는 것과 합격을 시킨다는 것은 별개의 의미라는 말이다.
조선시대에도 준호적에서 내가 유학이고, 위로 3대조에 외조부가 학생이면 당연히 과거는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등제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또 다른 것 아니었겠나.
일제시대에서 조선은, 고보라는 저 학교를 그대로 두는 한은 절대로 중학졸업생인 일본인들과 대등한 자격에서 진학을 할 수 없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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