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에 중학교라고 해서 전부 일본인은 아니고 조선인들도 다니는 경우가 있긴 했는데 대체로 조선인들은 고보, 일본인들은 중학교에 모였다.
따라서 일제시대에 무슨 무슨 중학, 하면 1937년 이전에는 이 학교는 일본인 학교로 생각하면 된다.
조선인들이 모이는 고보는 벌써 20년대가 되면 출세의 통로로 사람들이 인식하기 시작하여 고보 뿐 아니라 보통학교도 입학시험이 격화하는 과정에 있었다.
따라서 당시 조선인의 고보는 앞에서 조선일보 사설에서 보았듯이 똑똑한 사람들만 들어갈수 있는 학교라
일본인들이 모이는 중학교보다 고보의 인적 풀이 더 우수했다는 증언들이 꽤 있고 아마도 사실일 것이다.
일본인들 같은 경우에 식민지 조선의 중학교에 진학하는 이들이 뭐 본토에 있는 일본인들에 비해 별로 그렇게 우수했을 것 같지도 않다.
게다가 상급학교 진학도 훨씬 조선인 보다 쉬웠으니 절박함에 있어서도 고보의 조선인들보다 덜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탓에, 같은 지역의 고보와 중학은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경성제1고보의 경우, 같은 조선인의 고보인 평양고보, 경성2고보, 대구고보, 광주고보 등과는 동류의식이 있어도 경성의 일본인 학교인 경성중학과는 경원시 하며 지냈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경성제1고보가 나중의 경기중-고가 되는데 1920년대에 이미 이 학교는 조선의 수재들이 모이는 학교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잘 아는 광주학생운동-.
이 사건도 조선인이 다니는 광주고보와 일본인이 다니는 광주중학 사이에 싸움이 발단이 된 것이다.
이렇게 사이가 좋지 않았던 고보와 중학의 입지는 해방이후에 역전이 된다.
조선인이 다니던 고보는 대개 모두 해방이후 신학제로 개편된 다음에도 명문으로 존속하여 지속된 반면
이전의 일본인이 다니던 중학교는 아예 사라져 버리거나, 이전 일본인 학교의 전통과는 단절하고 해방이후 새로 출발하게 된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소위 고등학교 명문이라 알려진 학교들
예컨대 경기, 경복, 경북, 광주일고 등은 일제시대에 그렇게 차별받던 조선인 학교인 고보의 전통을 이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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