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주몽은 부여 떨거지다.
부여왕 금와의 양아들인 듯 보이지만 양아들이 아니었던 듯하며그냥 첩이 업어온 자식이었다.
엄마 유화柳花가 어떤 개망나니랑 놀다 덜커덩 임신하고 낳은 아들이 주몽이다.
유화는 그 사내한테 이내 버림 받았는데 이름으로 유추하면 백퍼 기생이다.
기록에 따라 그 사내가 북부여왕 해모수라 하지만 이는 틀림없이 계보 조작을 통한 신성성을 강조하려는 가탁이며
뜨내기 혹은 돈께나 있는 불한당이다.
그런 사나랑 하룻밤 혹은 며칠 놀다 피임에 실패하는 바람에 임신한 것이며 그런 까닭에 싱글맘으로 아들을 키웠다.
유화가 미모와 가무 하나는 끝내주었음에는 틀림없다. 이름이 벌써 유화니깐.
이를 바탕으로 금와왕 눈에 들어 후궁으로 발탁되고 총애를 입었다.
하지만 총애는 곧 독이 되어 돌아왔으니 금와의 정실과 그 아들들이 못살게 굴기 시작했다.
그 압박을 견디다 못한 주몽은 마리 협보니 하는 졸개 몇 명을 거느리고선 마침내 부여를 탈출해 남하한다.
이 그림은 천상 여산 시황제릉 건설에 동원되어 십장으로 동네 양아치 몇 명 데리고 가다가 탈출한 유방과 똑같다.
기록들에는 그가 추격병들을 따돌리고 곧바로 나라를 건국했다 하지만 왕국 수립이 소꿉장난도 아니고 이는 먼 훗날 이야기라 그 도망자 초창기에는 혐준한 간난이 줄줄이 사탕 엮이듯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도 그가 정착한 곳은 송양왕이 다스리는 비류국 나와바리 변두리였던 듯한데 이곳에 웅거하며 때를 기다렸다.
이는 실상 위만의 그것과 똑같다.
오야붕 노관이 일망타진되자 위기감을 느낀 위만은 졸개 몇 명을 데리고 국경을 탈출해 이웃 조선으로 도망 가서는 그 서쪽 변두리 한 켠을 세내어 살았으니 말이다.
나아가 이는 조금 뒤 그 자신의 전철을 그대로 밟게 되는 비류 온조 형제의 그것과도 똑같다.
다름 아닌 양아비 주몽의 압제를 견디다 못한 온조 형제도 남으로 남으로 도망가 마한 땅 귀퉁이 황무지에서 절치부심했으니 말이다.
기회를 엿보던 주몽한테는 신출귀몰한 재주가 있었으니 이 재주는 사마상여를 사숙하며 터득했다.
그가 걸은 길은 딱 사마상여 그것이었다.
돈 많은 과부를 후려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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