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고대사를 공부하시는 충북대 임병덕 교수님은 나랑은 이런저런 인연으로 얽힌 분이다.
어쩐 일로 페이스북이라는 sns 공간까지 연결되어 이런저런 정보를 주고받는 연으로 발전했거니와,
선생은 나를 통해 주된 분야인 중국사를 배운다는 겸양을 표하지만,
설혹 그럴 여지가 아주 없지는 않겠지만 나 역시 선생을 통해 귀한 정보들을 접하기도 한다.
선생이 내 글에다가 자주 형의전 이라는 대만 학자분 연구성과를 소개하는데 유감스럽게도 내가 저 분야를 전업으로 삼는 연구자는 아닌 까닭에
나로선 생소한 분이라
그 분이 邢義田 이라 쓴다는 이 사상사학도 내지 역사학도라로 짐작하거니와
선생 전언을 종합하면 이 분이 동서교류사에서는 내가 생각하는 그것이랑 얼추 비슷한 그림을 그리신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아래 첨부하는 글이 혹 남들이 바라볼 때는 어린아해 장난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내가 생각하는 그 장대한 문명교류사 그 얼개 중 일단을 드러내며 나름 그 줄기로 초한 것이어니와,
이걸 죽기 전에는 단행본으로 완성하고픈 욕망은 아직 살아있다.
저 논의에서 누락한 대목이 있으니, 기존 논의에 그것을 엎어서 간단히 추리면 이렇다.
나는 불교 만한 동서교류사 소재 없다 본다.
동서문화교류 양상을 캐겠다며 주로 실크로드입네 하며 팔아먹는 지식분자들을 나는 증오하는데,
저 불교를 놔두고 무슨 시시껍쩍한 유리쪼가리 하나, 장식보검 하나로 저 장대한 동서문화교류사를 논한단 말인가?
그건 저 불교에 견주면 찻잔 속 태풍이요 해수욕장 모래알에 박힌 실바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한데 그 불교는 인도불교가 아니다.
그리스가 주물한 새로운 불교다.
이른바 알렉산더 동방원정이 대표하는 그 그리스 문화가 인도 문화권에 이식하면서 탄생한 그 새로운 불교가 힌두쿠시 히말라야를 넘고 인도양을 거쳐 태평양 한 귀퉁이를 지나 중국을 치고 한반도를 점령하고선 일본까지 손아귀에 넣었다.
이 불교는 기존 인도불교랑은 왕청나게 달라 무엇보다 추상을 구상화한 그리스 불교다.
알렉산더 이전 인도 불교는 조각을 몰랐다. 아니 몰랐다기 보다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그 불교를 구상화하는 통로가 없었다.
이런 시대를 흔히 무불상 불교시대라 한다고 알거니와, 이 무불상, 무회화 시대 불교는 오로지 세 치 혀로 전승할 뿐이었다.
물론 문자가 있었지만, 그 문자로 정착하는 일이 구상화는 아니었다.
불법은 우리가 손으로 만질 수 있고 눈으로 볼 수 있는 구상으로 해체되어야 했다.
이 틈바구니를 교묘하게 파고든 이가 바로 그리스였다.
그네들은 모든 근간이 조각과 회화다. 아무리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라도 그것은 웹툰으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었다.
그네라고 무슨 거창한 불교 교리를 알았겠는가?
하지만 그것이 조금씩 깊어지고, 야부리 세 치 혀를 통하고 문자를 통해 접촉한 그 불법들을 구상화하기 시작했으니,
그 구상화 모델이 자기네가 본국에서 이식한 바로 그 방법, 곧 조각과 회화였다.
따라서 우리가 말하는 그 불교는 그 직접 연원이 명명백백히 그리스에 있다.
우리는 지금 그리스 불교의 직접 계승자들이다.

예까지가 기존 논의요, 저에서 빠진 것이 그렇다면 그 그리스는 무슨 그리스냐는 것이다.
그 그리스 또한 무수한 문화 문명을 흡수통합한 종합선물세트다.
요컨대 A Greece가 아니라 Greeces다.
그 흐름에서 뚜렷이 간취되는 것들로 제법 구찌가 큰 것으로는 이집트와 근동 양대 흐름으로 대별할 수 있거니와,
물론 어찌 이 두 가지 흐름만 있으리오?
그에는 발칸반도와 유라시아 대륙에서 비롯하는 트라키아며 스키타이 흔적, 덧붙여 그네가 그토록 경멸한 켈트 문화도 스펀지 스며들듯 했을 것이요,
나아가 그 본래하는 문화 힘 역시 그에 못지 아니해서 저 멀리는 미노아 미케네 문명 혹은 키클라데스 문명으로 소급하며 그에서 비롯하는 무수한 잔가지를 흡수한 그런 것들이 일체 혼융해서 빚어낸 것이 알렉산더 당시 그리스 문화 아니겠는가?
또 편의상 저 근동이라 했지만, 그 양태가 어찌 단수리오?
그에는 무수한 흐름이 있거니와, 그만큼 실로 다종다양하거니와, 가는 그 직접하는 거대한 흐름으로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전통을 가장 강하게 본다.
알렉산더 동방원정이라 하지만 동방?
웃기는 소리 작작하시고 동방이고 나발이고 그의 목표는 오직 하나였으니 아케메네스 제국이 통치한 구역을 그대로 접수하겠다는 딱 이거 하나 일념만 있었을 뿐이다.
그래서 그의 이른바 동방원정은 그 나와바리에서 딱 멈추어 버린 것이며,
천운이 도왔는지 모르지만 마침 그때 제대로 훅 가줬다.
그 아케메네스라는 거대한 제국 동방 변경이 바로 인도문화권 변경이었다.
이 변경을 훗날 간다라라 하거니와,
이 간다라를 포함한 저 변경, 이질하는 두 문화, 혹은 그것을 구축한 무수한 열 개 이상 되는 문화 흐름이 멜팅 폿처럼 녹아들어 새로운 문화를 주물했으니
그에서 우뚝 솟아난 불교 또한 종래와는 확연히 다른, 면모 일신한 새로운 양태로 재탄생한 것이다.
이는 싯타르타의 재림이었다.
싯타르타는 알렉산더를 만나 비로소 세계시장을 석권할 기반을 구축했다.
이렇게 요란스럽게 올컬러로 장착하고 새로 태어난 불교는 마침내 그것을 가능케 한 알렉산더 동방원정보다 더 위대한 동방원정을 떠나게 된다.
알렉산더가 이룩한 그 제국보다 훨씬 더 큰 동아시아 전체를 흑사병 덮치듯 정복했고, 쓰나미처럼 인도차이나를 삼켜 버렸다.
알렉산더는 꿈도 꾸지 못한 중앙아시아도 코로나 덮치듯 수하에 두었으니, 이 거대한 불교제국, 그것은 알렉산더가 준 선물이었다.
알렉산더가 장착한 새로운 불교에는 따라서 무수한 문화요소가 접합하게 되는데 삼존불?
개풀 뜯어먹는 소리 할 생각 마라.
이 삼존상 전통은 분명 이집트랑 메소포타미아, 그리고 그리스에 있다.
이런 이야기들을 총합할 날이 있을란지 모르지만, 위선은 그 얼개는 이리 적어둔다.
나는 형의전을 접한 적 없으나 틀림없이, 보나마나 내가 품은 이 의문, 혹은 저 그랜드디자인에서 풀어갔으리라 본다.
파동은 시간과 공간을 넘는다, 불상 혹은 불교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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