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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쓴 글,
읽어보면 대강 눈치를 채셨겠지만
최한기에 대한 글이다.
최한기는 필자는 근대적 사유로 간주하지 않는다.
그가 지동설이라고 했건 안했건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근대적 사유는 땅이 돈다 하늘이 돈다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어떻게 그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는가, 그 과정이 훨씬 중요하다.
바로 그런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충분한 관찰과 실험에 기반한 경험주의적 검증을 거쳤는가,
아니 최소한 그렇게 하고자 하는 시도라도 있었는가,
이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최한기 뿐 아니라 우리나라는 실학사 전반이
바닥부터 놓고 과연 근대적 사유가 무엇을 말하는가,
서양까지는 갈 것도 없고 바로 옆나라
에도시대 지식인들의 동향을 옆에 두고 하나씩 축조비교하면서
바닥부터 다시 봐야 한다.
서양의 해부학책을 보고는
아 사람 몸이 이렇게 생겼구나,
이렇게 감탄하여 떠들고 다니는 것은
안타깝지만 과학적 사유가 아니다.
과학적 사유, 근대적 사고라는 것은 이거 정말 이런지 한 번 보자고 사형수의 해부에 직접 참관해서 관찰하고는,
하나도 빠짐없이 사실과 일치한데 놀라 전율하며 나와
해체신서를 저술한 에도시대의 지식인들,
이것이야말로 초보적이긴 해도
확실히 근대적 사유의 첫발을 떼었다고 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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