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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철의 잡동산이雜同散異

김성원(金成遠, 1525~1597) 〈식영정 18영( 息影亭十八詠)〉

장성 獨居翁 기호철 해제하고 번역하고 해설함 


이번에 소개하는  〈식영정 18영( 息影亭十八詠)〉은 식영정이라는 정자를 지어 그의 장인 석천(石川) 임억령(林億齡, 1496~1568)이 쉬도록 제공한 서하당(棲霞堂)  김성원(金成遠, 1525∼1597)이 지은 연작시다. 임억령이 쓴 〈식영정기〉에 따르면, 김성원은 1563년에 정자를 지어 식영정이란 이름을 짓고 그 기문을 지었다 했다. 


하지만 김성원 행장에 따르면 식영정은 서하당과 같은 1560년에 이미 지었다고 했다. 이런 차이는 아마도 임억령이 그 정자가 대단히 초라함을 강조해서 식영(息影)의 본래 뜻인 은거(隱居)가 지닌 의미를 극대화하고자 해서 쓴 글이기 때문일 것이다. 


임억령은 식영정기에서 이 정자가 허름하다 했지만, 1563년에 쓴 시들을 보아도 ‘수함관어(水檻觀魚)’라는 말이 보여 이미 난간까지 갖춘 정자라 임억령이 묘사한 초정(草亭)과는 동떨어진 모습이었음을 짐작한다. 


김성원이 쓴 이 연작시는 장인 임억령과 화답한 것이라, 아마도 임억령 시와 비슷한 시기에 지었다고 생각한다. 현판은 해서로 썼는데, 후대에 다시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식영정




息影亭十八咏 


偶從山上飛,還向上中斂。倦跡自無心,悠悠看不厭。 瑞石閒雲。

潛伏於幽穴,游揚于淺灘。已知魚自樂,重覺我之閒。 水檻觀魚。

寒宵萬籟寂,不語據枯梧。靜對空山月,方知我亦夫。 碧梧涼月。

粘多松髯亞,凍合鶴巢傾。萬玉相輝映,寒光宿客驚。 蒼松晴雪。

澗壑雙龍起,長身蹙巨鱗。何須支大厦?下有把竿人。 釣臺雙松。

閣下寒潭碧,常惺泛酒船。誰知幽窟裏?龍子抱珠眠。 環碧靈湫。

古澗澄無滓,浮舟月滿磯。夜深橫玉笛,松鶴掠人飛。 松潭泛舟。

濃陰密如幄,盤石穩於牀。不用煩揮扇,蕭蕭滿袖凉。 石亭納凉。

白日隱天末,青煙橫樹腰。此間迷去路,何處有幽巢? 鶴洞暮煙。

對影山僧去,溪橋日欲曛。閒情厭塵土,飛錫趂歸雲。 短橋歸僧。

罷牛跨雨中,短篴橫簑裏。村前暮煙沉,不知其所指。 平橋牧笛。

浴水水同潔,立沙沙共娟。隔花拳一足,盡日自閒眠。 白沙睡鴨。

有鳥立蒼巖,長湫風靜處。生涯即此多,湖海何須去? 鸕鷀巖。

灘響已堪聽,名花誰復栽?山家新濯錦,賈客莫相猜。 紫薇灘。

竹逕緣溪出,桃花夾岸齊。武陵橋已斷,那有世人迷。 桃花逕。

春洲可步屧,芳草碧芊綿。誰識余心樂,花紅柳欲眠。 芳草洲。

菡萏高於丈,池塘深沒臍。微微香入袖,皎皎月分溪。 芙蓉塘。

千年五鬣松,偃盖暮煙裏。月下浪吟翁,誰知舊道士? 仙遊洞。


棲霞居士金成遠稿。



김성원 <식영정18영(息影亭十八詠)>




번역문


식영정 18영 息影亭十八咏 


때마침 산마루 위를 떠돌다 

도로 산허리 향해 모여드네 

느린 발자취 절로 무심하고 

둥둥 떠가니 봐도 싫지 않네 


偶從山上飛,還向上中斂。倦跡自無心,悠悠看不厭。

서석산에 한가로이 떠도는 구름



환벽당에서 바라본 식영정 일대

 



깊은 구멍에 숨어 있더니만 

얕은 여울로 헤엄쳐 오르네 

고기 스스로 즐김을 잘 알아 

내가 한가함 다시금 깨달았소 


潛伏於幽穴,游揚于淺灘。已知魚自樂,重覺我之閒。

물가 난간에서 물고기 구경


 

차가운 밤중에 온통 고요하니 

죽은 오동에 기대란 말은 마오 

공산에 뜬 달 고요히 마주하니 

나도 그런 줄 비로소 알았다오 


寒宵萬籟寂,不語據枯梧。靜對空山月,方知我亦夫。

벽오동에 걸린 가을 달



진눈깨비가 솔잎에 달라붙어 

얼어붙으니 학 둥지가 기우뚱 

무수한 백옥덩이 밝게 비치니 

섬뜩한 빛에 숙객이 놀란다오 


粘多松髯亞,凍合鶴巢傾。萬玉相輝映,寒光宿客驚。

푸른 솔밭에 눈이 그친 모습 



환벽당 앞 노송 두 그루



 

시내 골짝에 쌍룡이 일어섰는데 

키가 큰 몸에 큰 비늘 촘촘하네 

하필이면 높고 큰 누각 떠받쳤고 

아래에는 낚싯대 잡은 사람 있네 


澗壑雙龍起,長身蹙巨鱗。何須支大厦?下有把竿人。

낚시터 두 그루 소나무


 

환벽당 아래 차가운 영추 푸른데 

항상 조용히 술 실은 배를 띄우네 

심원한 영추의 굴 속 누가 알리요 

용의 자식이 여의주 물고 잔다오 


閣下寒潭碧,常惺泛酒船。誰知幽窟裏?龍子抱珠眠。

환벽당 아래 영추


 

예스런 골짜기 물때 없이 맑고 

배 띄운 낚시터엔 달빛만 가득 

밤 깊어 들려오는 옥피리 소리 

송학이 사람 스치듯 날아가네  


古澗澄無滓,浮舟月滿磯。夜深橫玉笛,松鶴掠人飛。

송담 뱃놀이



한여름 환벽당


 

짙은 그늘 장막 친 듯 빈틈없고 

너른 바위 평상보다 편안하구나 

성가시게 부채질 할 필요 없지 

으스스한 바람 소매에 가득하니 


濃陰密如幄,盤石穩於牀。不用煩揮扇,蕭蕭滿袖凉。

석정에서 더위 식히기


 

태양은 저 하늘 끝으로 숨고 

청연은 나무 허리에 걸쳤네  

여기에서 나아갈 길 잃으니  

학은 어디에서 둥지 찾을까 


白日隱天末,青煙橫樹腰。此間迷去路,何處有幽巢?

학동 저녁연기


 

그림자 드리우니 산승 돌아가고 

시냇물 다리엔 석양빛 찾아드네 

한가한 마음에 티끌 세상 꺼려 

재촉해 돌아가는 구름 따라가네 


對影山僧去,溪橋日欲曛。閒情厭塵土,飛錫趂歸雲。

다리 건너 돌아가는 스님


비 맞으며 늙은 소를 걸쳐 타고 

짧은 피리 도롱이 걸치고 부네 

마을 앞이 저녁연기에 잠기니 

피리소리 뜻은 알지 못하겠네


罷牛跨雨中,短篴橫簑裏。村前暮煙沉,不知其所指。

들판 목동 피리소리


 

헤엄치니 물도 함께 청결하고  

백사장에 서니 모래까지 곱다 

꽃가지 너머에 한 다리 들고서 

종일 여유롭고 편안히 자누나 


浴水水同潔,立沙沙共娟。隔花拳一足,盡日自閒眠。

백사장에서 조는 오리


 

이끼 덮인 바위에 새 서 있나니 

긴 웅덩이 바람도 불지 않는 곳 

살아갈 날이야 이만해도 많은데 

어째서 호해로 가려고만 하느냐 


有鳥立蒼巖,長湫風靜處。生涯即此多,湖海何須去?

가마우지 바위



배롱핀 시절 환벽당




여울소리 이미 들을만하거니와

이름난 저 꽃 누가 또 심었소

산가에서 비단을 갓 빨았으니

비단장수 눈 흘기지는 마시오


灘響已堪聽,名花誰復栽?山家新濯錦,賈客莫相猜。

배롱꽃 핀 여울


 

대숲 길 계곡 따라 드러나고 

계곡 양편 가지런한 복숭아꽃 

무릉도원 다리 이미 끊겼는데 

어째 길 잃은 속인 있는 걸까 


竹逕緣溪出,桃花夾岸齊。武陵橋已斷,那有世人迷。 

복숭아꽃 핀 오솔길


 

봄풀 덮인 풀등은 걸을 만한데 

향기론 풀은 무성하게 푸르네  

내 즐거운 마음 누가 알아주나

꽃은 붉게 피고 버들은 조는데


春洲可步屧,芳草碧芊綿。誰識余心樂,花紅柳欲眠。

향기로운 풀이 깔린 풀등


 

식영정 구역 새로 조성한 연지



연꽃은 한 길 넘게 쑥 솟아올라   

연못은 배꼽까지 잠길 깊이네 

은은한 향기 옷깃 파고드는데 

휘영청 밝은달 계곡에 어렸네 


菡萏高於丈,池塘深沒臍。微微香入袖,皎皎月分溪。

연꽃이 핀 연못

 


천년은 넘음직한 한 그루 오엽송

일산 같은 가지가 모연에 잠겼다

달빛아래 낭랑히 읊조리는 노인

옛날의 도사라는 걸 누가 알까나


千年五鬣松,偃盖暮煙裏。月下浪吟翁,誰知舊道士. 

선유동


서하처사 김성원 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