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호철의 잡동산이雜同散異

나이롱 연세 은행나무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1. 1. 12.
반응형

여기에 대해서는 김 단장도 몇 번 포스팅을 했고 나도 몇 번 포스팅을 했다. 은행나무와 느티나무 수령은 붙이는 놈 마음이다. 워낙에 속성수라 4,50년만 지나도 몇백 년으로 퉁치기 적당하기 때문이다.


필암서원 은행나무



용인 심곡서원 은행나무도 정암선생 심은 게 아니라 최소 19세기 이후에 심은 것이라는 포스팅도 했고, 담양의 인조대왕 계마수라는 후산리 은행나무도 원래 계마수는 18세기까지 감나무였다는 것도 포스팅한 바 있었지만, 저 두 종의 나무는 죄다 거짓말투성이다. 나이테 측정도 쉽지 않거든.

장성에서 절반쯤은 나를 일자무식 수준이고 애향심도 없는 놈으로 취급한다. 장성이 추진한 것들에 일부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했던 까닭이다.

지금도 '장성의 최순실'이라고 불린다는 어떤 이가 광주의 지인이나 장성의 지인에게 씹고 다닌다는 이야기가 귀에 들어온다. 나처럼 하찮아 급도 맞지 않는 이가 그 고귀한 분들에게 변명할 것도 없어서 무시하고 있다. 욕 먹은 김에 하나 더 이야기 한다.


필암서원 은행나무 안내판


필암서원 앞에 은행나무가 200살 이상이고 장성군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는데, 가친께 여쭈니, "나 젊어서 심었다. 너보다 어리다."고 하신다. 사실 5살 무렵 필암서원에서 공부한 적이 있어 기억을 더듬으니 당시에도 없었다.

가친의 기억과 내 기억이 잘못일까 해서 1975년에 발간된 《필암서원지》를 보니 당시에도 없었던 것이 맞다. 가친께 여쭈니 조금 큰 가로수로 심는 크기로 심었다고 하신다.


필암서원도



그럼 그 이전에는 없었냐고 여쭈니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에 어떤놈이 베어 팔아먹어서 없어졌다고 들으셨단다. 그리고 일제강점기까지 기산리 오늘날 문향고 자리에 원래 필암서원의 은행나무 큰게 있었는데 언제 사라진지는 모른다고 하셨다.

결론적으로 필암서원 은행나무는 수령이 50년 내외이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