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병 징집 중에 장준하와 더불어 탈출해 광복군에 들어가고 훗날 고려대 총장을 역임하는 김준엽金俊燁은 1920년 생으로 알려져 있고 실제 각종 공문서에도 그리 되어 있으며 무엇보다 그 자신이 그렇게 주장했다.
위키피디아 사전에서는 그의 생몰을 1923년 8월 26일 ~ 2011년 6월 7일로 적었으니, 이는 새로운 사실이 반영된 것이라 보아야 할 성 싶다.
물론 예외가 있겠지만 1920년으로 볼 경우 문제도 없지 않아 보통 코스를 밟았다면 학병 징집 무렵엔 학교를 졸업해야 한다.
나이가 학병으로 징집되기엔 적지는 않으나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1943년 발급된 게이오대학慶應義塾 학생증을 보면, 그의 출생년이 1923년으로 적혔다.
나아가 이때 그가 파고 다닌 명함을 보면 본과가 아니라 예과豫科였으니 엄밀히는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고등학교 과정이었다. 그러니 1923년생이 맞을 것이다.
당시 호적이 나이롱임은 말할 나위가 없지만 두 가지 중 하나를 택한다면 어느 쪽이 실상에 가까울까?
1923년이 더 현실에 부합한다.
1925년생 벽사 이우성의 경우, 심산 김창숙이 성균관대 개교 직후 벽사를 교수로 임용하려 면접까지 봤다가 너무 어려 대학을 마치게 하고는 나중에 뽑았다는 증언이 벽사 입을 통해 있다.
이로 보면 김준엽이 1920년생으로 한 것은 아래 설명과는 달리 해방 이후 아닌가 하는 심증이 간다.
올해가 그의 탄생 백년으로 간주해 그 기념전을 준비한 고려대박물관은 김준엽이 자신의 출생년을 1920년으로 바꾼 까닭은 중국에서 만 22세 젊은 나이에 동방어문전과학교 전임강사로 부임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신의 나이를 세 살이나 늘려야 했던 식민지의 조숙한 청년은 줄곤 1920년생으로 살았지만, 그의 출생년은 1923년이었다고 덧붙인다.
이리 되면 장준하와의 관계도 묘해진다. 평생 동지라는 장준하張俊河는 1918년 8월 27일 평안북도 의주군 출생이다.
김준엽은 같은 평북이지만 강계 출신이라 다섯살 차이가 난다. 물론 저때는 다섯살 정도는 친구로 트기도 했다. 청록파 시인 중 박목월과 박두진은 1916년생이고 지훈 조동탁은 1920년생이지만 친구였고
1924년생 김대중과 1929년 1월생 김영삼도 사적으로는 말을 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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