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지나개나 다 간다는 청송 주왕산 주산지를 나는 2015년 5월 17일에야 처음으로 내 눈으로 봤다.
9년이 흐른 지금 다시는 보지 못했으니 또 볼 날이 있다 장담은 하지 못하겠다.
돌이켜 보면 저 주산지는 이 즈음 그것이 선물할 녹음이라는 경관보다
그 앞짝 유황오리가 언제나 기억에 남는다.
녹음이 녹이라면 유황오리는 노랬다.
유황 마시면 불로장생한다 하는데 내가 혹 그렇다면 저 주산지 유황오리 덕분이라 말해둔다.
저곳 풍광은 시시각각이라 삼십분 만에 없던 물그림자가 생기기도 했다.
수변 왕버들이 빚어내는 경관 역시 가히 일품이었다.
앞에 말한 유황오리는 이 댁이었다.
반응형
'문화재현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더스문명의 아이콘 Priest-King, 결론은 nothing (24) | 2024.05.19 |
---|---|
잉카 문명의 황금유물들 (24) | 2024.05.19 |
목욕탕 패션의 완성은 메두사 (27) | 2024.05.18 |
500년 전 위대한 파라오 투트모시스 3세를 불러낸 바켄무트 Bakenmut (25) | 2024.05.18 |
Ten-panel Folding Screen with Paintings on the Five Moral Rules, Joseon Dynasty (25) | 2024.05.1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