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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詩 & 漢文&漢文法

떨어져 진흙되어 화초 보듬는 꽃잎처럼



한시, 계절의 노래(322) 


기해잡시(己亥雜詩) 다섯째(其五) 


[청(淸)] 공자진(龔自珍, 1792~1841) / 김영문 選譯評 


가없는 우수 속에

태양은 기우는데


시인의 채찍 동쪽 가리키니

거기가 바로 하늘 끝


붉게 진 꽃잎도

무정하지 않을지니


봄날 진흙 되어

다시 화초 보듬는다


浩蕩離愁白日斜, 吟鞭東指卽天涯. 落紅不是無情物, 化作春泥更護花. 




이 시 한 수가 있음으로써 중국 근대의 모든 시는 빛을 잃는다. 실로 중국 오천 년 고대사를 마감하고 근현대사의 시작을 알린 시다. 나는 석사논문을 쓰면서 공자진의 『공정암전집유편(龔定盦全集類編)』을 읽다가 이 시를 처음 접했다. 소름이 돋았다. 침몰과 생성, 사망과 부활, 역사와 개인의 모든 이치가 이 작은 칠언절구에 구현되어 있었다. 


먼저 침중하게 떨어지는 석양은 아편에 중독되어 생기를 잃고 썩어가던 청나라 말기 상황을 암시한다. 그것은 더 나아가 중국 오천년 제국 몰락에 대한 비유이기도 하다. 마약 같은 일상의 안일함과 심신을 갉아먹는 진짜 마약 아편에 전 중국이 마취되어 가던 시대에 해맑은 영혼으로 밤새 깨어 있음은 괴롭고도 슬픈 일이었다. 그러나 공자진의 맑은 영혼은 예민하게도 역사의 진실을 심도 있게 통찰해내면서 침몰해가는 석양을 등지고 이제 새로운 태양을 잉태할 동쪽 하늘 끝을 바라보고 있었다. 




공자진을 매개로 청말 공양학은 불교의 보살행, 묵자의 겸애 사상과 융합하면서 실제로 ‘대동’ 세상을 꿈꾼다. 강유위(康有爲), 양계초(梁啓超), 담사동(譚嗣同) 등이 모두 공자진의 학문적 혈손들이다. 공자진은 불교의 이치를 빌려 이렇게 염원했다.


내 몸이 비록 죽어 저 허공중에 아득히 퍼져가고, 저 억겁의 시간속에 가없이 흩어져서 티끌같은 모래알이 되더라도, 그 하나 하나의 모래알속에 하나 하나의 혀가 돋아나고, 그 하나 하나의 혀속에서, 하나 하나의 목소리가 울릴 수 있다면 그것으로써 부처님에 대한 찬양을 무궁토록 계속하리라.……세계는 다함이 없고, 불력도 다함이 없다. 중생도 다함이 없고, 일체의 법도 다 함이 없으니, 나의 발원도 다함이 없기를 소망하노라.(我雖化身, 橫盡虛空, 竪盡來劫, 作其塵沙, 一一沙中, 有一一舌, 一一舌中, 出一一音, 而以贊佛, 不能盡也.……世界無盡, 佛力無盡, 衆生無盡, 一切法無盡, 我願亦無盡.)(「큰 소망을 발원하는 글發大心文」)


‘대동’의 꿈을 실천하다가 어느 날 떨어진 붉은 꽃잎처럼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 해도 그것은 기실 사라짐이 아니다. 내 몸은 무한한 우주 공간에 퍼져가고 억겁의 시간 속에 흩어져서 반드시 또 다른 물체의 씨가 되고 몸이 되고 피가 된다. 


그렇다! 


붉은 꽃잎이 흙이 되어 다시 그 화초의 가지가 되고 꽃이 되는 것처럼 사람의 몸은 죽지 않는다. 인연 따라 무한히 윤회할 뿐이다.(『중국어문학』 제36권, 2000년, 「‘기해잡시평석己亥雜詩評釋’ 서평」 축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