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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현장

<로마의 이면> 스페인광장의 키츠셸리하우스

윌리엄 와일러 William Wyler가 감독한 영화 《로마의 휴일 Roman Holiday》(1953)에서 그 깜찍 공주 오드리 햅번Audrey Hepburn이 미국 기뤠기로 그 시대 한반도를 풍미한 배우 남궁원을 빼다박은 그레고리 펙 Gregory Peck을 만나 수작하는 배경 중 하나가 된 피아차 디 스파냐 Piazza di Spagna는 그 기분과 폼을 내려는 사람으로 언제나 북적이는 overtourism 총본산이 된지 오래거니와,


스페인광장의 키츠셸리기념관



그 유명한 분수대와 계단을 전면에 앞세우고 계단이 시작하는 오른편 귀퉁이 제법 우람한 건물채에 키츠셀리기념관 Keats-Shelly House란 작은 명패가 하나 있어, 이곳이 바로 영국 낭만주의 문학의 기린아이자 아이돌들인 존 키츠(John Keats. 1795~1821)와 퍼시 비시 셸리(Percy Bysshe Shelley. 1792~1822)를 기념하는 공간이다. 


둘 다 요절했으며, 영국 낭만주의 신진 삼두마차 중 개중 나이가 제일로 많고, 정우성 빰친 미남 아이돌 스타 조지 고던 바이런(George Gordon Byron. 1788~1824) 역시 한창 때 느닷없이 갔다. 빨리 핀 꽃은 빨리 시드는 법이다.


분수대 저 너머가 키츠셸리기념관



디스트릭트 호수 Lake District 한켠 오두막에서 월리엄 워즈워스 William Wordsworth(1770~1850)가 평생 비서 혹은 시다로 써먹을 요량으로 연년생 터울 여동생 도로시 Dorothy Wordsworth (1771~1855)를 시집도 보내지 아니하고 데리고 살면서, 반항아 새무얼 테일러 코울리지 Samuel Taylor Coleridge(1772~1834)를 만나 의기 투합해, 1795년 《리리컬 발라즈 Lyrical Ballads》라는 작은 시집을 내면서 영국문학은 낭만주의 운동이라는 위대한 기치를 올린다. 


키츠셸리기념관에서 내려다 본 스페인광장 분수대



그 직전 선배 월리엄 블레이크 William Blake(1757~1827)만 해도 다소 중세의 음울함을 풍겼으나, 저 두 사람이 등장하고 소설에서는 월터 스콧 Walter Scott(1771~1832)이 《아이번호 Ivanhoe》와 같은 신선한 작품을 들고나와 로망을 불러내며 내셔널리즘을 부르짖으면서 이젠 로만티시즘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대세가 된다.


저 시집 재판인가에는 장대한 워즈워스 서문이 붙었거니와 이것이 바로 영국 낭만파 문학 등장을 알린 위대한 권리장전이다. 그에서 선언하기를 시[poetry]란


THE SPONTANEOUS OVERFLOW OF POWERFUL FEELINGS


라 했다. 가슴 터질 듯한 감동..북받치는 열정 이것이 저들의 비수였다. 이로써 문학은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간다.


키츠셸리기념관 내부



물론 극성은 곧 패가망신하는 길이라 이 흐름 역시 대략 반세기를 지나 급속도로 쇠락하고 만다. 영문학에서는 로만티시즘(Romanticism) 종말을 스콧이 사망한 1932년 무렵으로 대체로 본다. 이후 영문학은 이른바 빅토리아 시대로 접어들어 리얼리즘이니 자연주의니 하는 새로운 흐름과 인류 역사상 가장 괴기스러움을 자랑하는 보들레르에서 비롯하는 프랑스 상징주의에 자리를 내주고 말지만, 20세기 이래 극성을 구가하는 대중문화를 나는 신낭만주의(Neoromanticism) 운동으로 본다. 


같은 낭만파라 해도 그 선하(先河)를 연 워즈워스와 코울리지도 이내 구태로 몰리기 시작한 데다 특히 전자는 월계관까지 쓰는 바람에 권력을 얻는 대신 시정詩情은 급격히 잃으니 이들을 격렬히 비판하면서 그 빈자리를 꿰찬 아이돌 그룹이 바이런 셸리 키츠, 쓰리 보이즈다. 이 셋은 사이가 좀 묘해서 셸리는 양다리 걸치기라 양쪽에서 칭송받은 반면, 바이런은 키츠를 그다지 인정하지 않았다. 


키츠셸리기념관 응접실



저들은 저 순서가 곧 나이순이라, 나이팅게일이며 목동이며 종달새 노래한 시인들이라 생각하기 십상이나 25세에 요절한 천재 키츠도 그리 단순화할 수는 없다. 


저들 중에도 가장 어린 키츠가 가장 비참한 최후를 맞았으니 결핵인지 뭔지에 걸려 회복 불능 판정을 받고는 요양하러, 혹은 죽음을 맞으러 이태리로 간 것이다. 


하지만 이조차 여의치는 못해 나폴리로 입항하려 했다가 검역에만 물경 일주일이 걸렸고, 겨우 통과해 이곳 스파냐광장 한 켠에 집을 얻었다가 결국 그에서 최후를 맞으니, 그 집 저 침대가 그의 최후를 보듬은 자리다. 


키츠가 죽은 침대



그가 죽자 교황청은 집인지 가재도구들을 불태워버리라 한다. 어찌됐건 그것들이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오늘에 전한다.


이들에 얽힌 로마의 사연들을 근자에 접하고는 기간 그런 상처들을 놓쳤다가 불현듯 한때는 영문학도를 꿈꾼 늙다리 기자가 각중에 현장 확인차 저들의 무덤과 집과 죽은 침대를 둘러보곤 만감이 교차했다고 말해둔다. 


몇년 전, 직장 생활 만년을 기약하는 학과 동창 두어 명이서 퇴직하거나 해고 당하면 미련없이 장기 영문학 기행을 하자는 도원결의를 했다. 


키츠가 숨을 거둔 침대. 실제 그 침대라 한다.



근자 그 출발지로 어디를 삼을 것인지 잠시 논란이 있어, 태국에서 해야 한단 놈도 있고(이유는 모른다. 아마 환락문화에 대한 선호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키플링과 《A PASSAGE TO INDIA(인도로 가는 길)》에 착목해 인도로 하잔 놈도 있으니, 20세기 가장 위대한 시인 예이츠를 만날 더블린에서 마무리할 이 여행에서 로마 역시 뺄 수는 없으리라. 


바이런은 아마 소아마비였을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 해도 암튼 다리가 매우 불편했고 그것이 200년 전 정우성에겐 콤플렉스였다.


낭만주의 본령은 고대 그리스 로마라, 그리스 독립전쟁 발발하자 참전한 그는 헤엄을 쳐서 그리스 섬을 들락거렸다는데 지금 언뜻 생각나지 않는 그 섬도 보리라. 


키츠의 소위 데드마스크



그러고 보니 영국 낭만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이 중에 그 남상을 이룬 것으로 평가하는 블레이크와 워즈워스가 천수를 누렸고, 코울리지 역시 그런 삶을 비스무리하게 살았지만, 그 최전성기 시인들은 모조리 병이나 사고로 요절하고 말았다.


바이런은 36세에 말라리아로 갔고, 셸리는 나폴리 앞바다서 요트 타다가 익사했다. 참으로 드라마틱한 삶을 살다간 이들이다.


로마 구심 세스티우스 피라미데가 있는 그 주변에 조성한 이교도 공동묘지에 묻힌 키츠 묘비명은 이렇다. 


Here lies one whose name was writ in water.


물에 쓴, 혹은 물로 쓴 이름은 금방 지워지기 마련이니, 아마도 그가 이 구절을 사용한 의미는 이 세상에 잠깐 살다간 이름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었을지 모른다.


그와 셸리의 죽음은 그들의 무덤을 둘러보면서 다시금 다룰 기회가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