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 신라 나해니사금 아들로 관료이자 장군. 동왕 12년(207) 이벌찬이 되고 이듬해 변경을 침범한 왜군을 막았으며, 14년(209) 포상팔국의 난을 진압했다. 19년(214) 서쪽 변경을 침략한 백제군을 토벌하고 사현성을 빼았다가 25년(220) 3월에 사망했다.
삼국사기 권 제2(신라본기 제2) 나해니사금(奈解尼師今) : 12년(207) 봄 정월에 왕자 리음(利音)<혹은 나음(奈音)이라고도 한다>을 이벌찬으로 삼고 중앙과 지방의 군사 일을 겸하여 맡아보게 했다. 13년(208)…여름 4월에 왜인이 변경을 침범하므로 이벌찬 이음을 보내 군사를 거느리고 막게 했다. 14년(209) 가을 7월에 포상(浦上)의 여덟 나라가 가라(加羅)를 침범하므로 가라 왕자가 와서 구원을 청했다. 왕이 태자 우로(于老)와 이벌찬 리음(利音)에게 명하여 6부의 군사를 이끌고 가서 구원하여, 여덟 나라의 장군을 공격하여 죽이고 포로가 되었던 6천 명을 빼앗아 돌려주었다. 19년(214) 가을 7월에 백제가 나라 서쪽 요거성(腰車城)을 공격해 와서 성주 설부(薛夫)를 죽였다. 왕이 이벌찬 리음(利音)에게 명하여 정예군사 6천 명을 이끌고 백제를 치게 하고 사현성(沙峴城)을 함락했다. 25년(220) 봄 3월에 이벌찬 리음이 죽으니 충훤(忠萱)을 이벌찬으로 삼고 군사의 일을 겸하여 맡아보게 했다.
삼국사기 권 제24 백제본기 제2 초고왕본기 : 39년(204) 가을 7월에 군사를 내어 신라의 요거성(腰車城)을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성주 설부(薛夫)를 죽였다. 신라 왕 나해(奈解)가 노하여 이벌찬(伊伐湌) 리음(利音)을 장수로 삼아 6부의 정예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우리의 사현성(沙峴城)을 공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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