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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 이야기

만만해서 동원하기 쉬운 서자들, 이들의 시각에서 북방 사민도 봐야 한다

by 신동훈 識 2026.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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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신윤복 풍속화에 등장하는 저들이 양반이겠는가? 나는 대부분 서자로 본다.

 
이쯤에서 이제 굳이 복잡하게 글을 쓸 필요 없다고 생각하니 

간단히 정리하여 써 보겠다. 

앞에서 쓴 향촌 중인, 

조세 부담자 중 상위계층으로 평소에는 조세를 안 부담하던 이들,
 
향교에 등록하여 교생이라 칭하고는 과거 보는 데는 뜻도 없고 군역 면제나 받으려 한 자들, 

양반들이 모여 이들을 "놀고 먹는 놈들"이라고 부른 이 사람들은 

18세기 무렵 호적을 보면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어느 향촌에서나 양반도 아니고 그렇다고 평민도 아닌 계층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이들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이들 중 대다수는 서자 출신이었다. 

우리나라 조선시대 서자의 숫자. 앞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그 숫자는 절대 적지 않다. 

특히 우리나라는 위에 서자가 있으면 그 아래로 후손들이 줄줄이 금고되는 나라라, 

시골 바닥에 대대로 유학 직역을 세습하는 몇몇 뼈대 있는 적자 집안을 제외하면, 

농사꾼은 아닌 거 같은데 양반도 아니고 싶은 이들은 전부 서자 혹은 서자 후손이라고 봐도 대과가 없으리라. 

이들은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식년 호적 만들 때마다 직역이 계속 흔들려 유학부터 아래로는 군관까지 수시로 계속 고정되지 않았으며, 

뭔 일이 있을 때마다 놀고 는 놈들이라 욕을 먹으며 차출해야 할 일이 있을 때면 일순위로 뽑혔다. 

예를 들어 앞에서 말한 균역법의 선무군관. 

이것도 동네마다 TO가 나온지라, 선무군관은 막상시키려고 보면 할 사람이 마땅치 않았다. 

우선 선무군관은 균역법 이전 군포를 부담하지 않던 층에서 나와야 하는데, 

양반을 빼고 나면 결국 남은 건 서자들밖에 없었다. 

농민들은 지금도 군포를 두 필 부담하고 있는데 어떻게 선무군관이 되겠는가. 

두 필 내던 이를 한 필 내게하고 선무군관까지 시킬 수는 없지 않겠는가?

당연히 그 전에 안 내던 이를 한 필 내게 하고 선무군관을 시키는 것이 맞으니, 

선무군관은 결국 그 동네에서 평소 양반들로부터 놀고 먹는 놈들이라 욕먹는 이들, 

서자들 외에는 할 사람이 없었다는 뜻이다. 

요즘 교과서를 보면 균역법 선무군관은 부유한 평민을 시키고 어쩌고 적어놨는데, 

당연히 잘못된 이야기고, 균역법 실시 이전에는 양반 끄트머리로 분류되어 군포를 내지 않던 서자나 그 후손들이 

균역법 실시와 함께 차출되어 군포를 부담하고 생각도 않던 군관이 되어버린 것. 그것이 바로 선무군관이다. 

군관이라 하니 장교 아닌가? 하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양반 끄트머리로 인정받아 군포를 내지 않던 이들에게 선무군관을 하라는 건

너는 이제부터 양반도 아니라는 이야기와 같으니, 

한 번 선무군관이 된 이들이 순순히 그걸 식년 호적 때마다 받고 앉아 있을 리 있겠는가? 

당연히 그럴 리 없어서 선무군관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몸부림이 시작되니

이 시기 호적을 보면 지난번에 선무군관이었던 이들이 그다음 식년호적에는 다시 업무 업유가 되었다가 

그다음에는 유학으로 돌아가는 등 직역 변동이 엄청 심해지니, 

균역법은 서자들에게 있어서는 재앙과 같은 일이었다 할 수 있겠다. 

우리는 이제 같은 시각에서 북방 사민을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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