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이후 등장하기 시작한 모칭유학들
이들을 사림의 눈으로 보아 무슨 족보와 호적 사기나 치고 다니는 파렴치범 내지는
양반 흉내나 내는 동네 떨거지처럼 쓰는 것이 우리 역사의 기술인 바,
전혀 전혀 그렇지 않다.
18세기 중엽 이후 조선사회에 등장한 모칭 유학은
전체 인구의 절반을 넘는다.
조선 전기에 양반 인구가 5-6프로였다는 것이 통설이고,
17세기만 해도 양반이 전체 인구의 10프로 내외였다는 것인데,
19세기에 모칭 유학이 70프로면 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모칭유학이라는 소리지 뭐 별 것 있겠는가.
다시 말해서 21세기에 어쩌다 보니 선진국까지 가버린 기적을 창출한 한국사회의
정신적 아버지는 사림들이나 양반들 떨거지가 아니라
바로 19세기 모칭유학이라는 말이다.
우리는 이를 한국사에서는 "민중"이라 모호하게 쓰는데
민중이라는 건 역사에 실체가 있는 학술적 용어가 아니다.
졍확히 역사서에 뭐로 나오는 사람인지를 적시해야지
민중이 도대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 알 수도 없고,
이 민중이라는 용어는 21세기 남한의 시민사회를 가리키는 people을
18세기까지 소급하여 적용한 것인 바,
그 시대에는 민중이라는 이름을 붙일 실체가 없었다는 말이다.
이 모칭유학이 20세기가 되면
산업자본가로 바뀌고, 시민사회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요즘 잘 나가는 사람들?
태반이 바로 19세기 모칭 유학의 후손들이다.
그 중에는 자기들은 대단한 양반집 후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고, 물론 그럴수도 있겠지만 (예외없는 원칙은 없으므로)
대분은 17세기까지도 평민과 노비의 후손,
19세기에 비로소 유학을 모칭하면서 상층 계급으로 발돋움하고자 한,
영국으로 치자면 젠트리의 후손이 바로 20세기 우리들이라는 말이다.
지금 잘 나가는 사람 중에 조선시대 양반의 후손들이라고 자임하고 폼잡는 사람들은
정말 그런가 한 번 곰곰히 생각해 보기 바라며,
영국인들이 젠트리에 대해 무한한 자긍심을 갖듯이
한국인들은 모칭유학에 무한한 긍지를 갖는 역사관이 성립되어야
비로소 전 국민이 모두 양반 후손이라는 웃기지도 않는 허위의식을 벗어나
우리 조상들의 위대함을 다시 보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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