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노년의 연구

사림의 눈으로만 보는 조선사

by 신동훈 識 2026. 5. 1.
반응형

우리나라 조선시대 역사의 기술을 보면, 

사림의 눈으로 조선시대 전반을 조망한다. 

첫째, 조선전기의 사족들에 대한 평가를 사림의 눈으로 한다. 

이들은 "훈구파"이고 "관학파"이며, 

적당히 부패하고 제대로 된 유학자도 아니라고 보는 시각은

명백히 사림파가 이전의 사족들을 보는 시각이다. 

분명히 이야기 해 둘것은 조선전기는 이들 "훈구파"와 "관학파"가 주인공이라는 점이다. 

이들에 대한 평가를 사림의 눈으로 하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 

다음으로 이번에는 영-정조 이후, 

16-17세기까지도 누리던 사림의 세계가 점차 사라지고, 

위로는 서인 독재라 하지만, 사실 아래에서는 

평민과 중인들이 대거 상층부로 진입하여 

호적에는 "유학"으로 직역을 자칭하는 사람들이 전체 인구의 70프로를 넘나들게 되었다. 

이번에는 이들을 "사림의 눈"으로 보아, 

이들은 "모칭유학"이라 폄하한다. 

무려 절반이 넘는 인구가 이렇게 되면 "모칭유학"이 되는데 말이다. 

이 모칭유학의 부상을 막기 위해 나온 것이 청금록과 향안 등 각종 

"우리가 제대로 된 양반이다"라는 것을 주장하기 위한 문서들인 바, 

이를 그들이 주장하는것이야 그 이전시기 "사림의 후손"이었던 이들이 자기들 누리던 권력을 조금이라도 더 누리고자 함이니, 

그것은 그런대로 봐줄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런 시각을 현대 한국사에서도 그대로 가지고 있어, 

18-19세기에 부상한 이들 신흥 양반 족속들을 "모칭유학"이라 폄하하면서

제대로 된 양반이 아니라는 둥, 여전히 사림이 조선이 망할때까지

권력자로 계속 누리면서 자기들을 치받고 올라오는 사람들을 폄하하던 시각을

명색이 21세기 한국사학에서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 "사림"이 조선의 주역으로 자임하고 설칠수 있는 시기는 딱 16세기부터 18세기 초반까지 대략 200년 남짓한 기간으로, 

그 이전은 소위 훈구파, 그 이후는 소위 모칭유학에게 역사의 주역 자리를 양보해야 옳다. 

쉽게 말해서 "모칭유학"이 18세기 중반이후에는 조선사의 주역이 되는 것이니, 

이들에 대한 평가를 이미 한물 가고 맛이 간 사림의 눈으로 폄하하는 시각을

그대로 한국사학에서 받아 쓰는 류의 기술은 동의하기 힘들다는 뜻이다. 

사림은 16-17세기 자리 자리나 제대로 지키고 있는게 옳고, 

16세기 이전은 소위 훈구파 사족들에게, 

18세기 이후는 소위 모칭유학에게 조선사회의 주역 자리를 양보하는 게 옳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