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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락 10년 경자년, (왕이) 보병과 기병 5만을 보내 신라를 구원하게 했다. 남거성(男居城)부터 신라성(경주)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왜병이 가득하였다.
관군이 도착하자 왜적이 퇴각하여 그 뒤를 지체없이 쫓아 임나가라의 종발성에 이르니 성이 곧 항복하였다. (판독 해석에 적잖은 논란이 있으나 예선 대세에 지장이 없다.)
저 광개토왕비문이 얼마나 개뻥인지는 이것 하나로도 명백한데
이 뻔한 거짓말조차 개뻥이라 지적한 이가 이 지구상 오직 김태식 한 명이라는 점도 신통방통하다.
475년 백제와의 전면전을 선언한 고구려는 3만을 동원했다.
이 전쟁이 고구려로서는 어떠한 의미가 있었는지는 여러 번 지적했거니와 이 처절한 복수극을 준비하고자 고구려는 몇년간이나 만반의 준비를 했다.
그렇게 해서 다닥다닥 긁어 모은 군사가 3만이었다.
그런 고구려가 지 아버지 담덕이 때 지들 전쟁도 아닌데 신라를 침입한 왜를 토벌한다며 5만명을 발동해?
말 같은 소릴해야 믿어주는 척이라도 할 게 아닌가?
함에도 저 뻔한 거짓말에 기초한 글이 도대체 몇 편인 줄 모르는 실정이다.
심지어 저 뻔한 거짓말에 속은 고고학 글도 부지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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