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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 이야기

부정父情을 떨치지 못한 흔적들

by 신동훈 識 2026.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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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서자 차별이야 그렇다고 해도, 

천출의 노비와 사이에 아이가 나온 경우

이를 아버지로 부르지도 못하게 하고 노비로 삼아 버린 것은 

인륜의 측면에서도 못할 짓이라 하겠다. 

희생으로 삼기 위해 끌고가는 소를 보고도 측은지심이 일어나는 것을 인지단이라고 한 공맹의 신도라는 이들이 

어떻게 이렇게 잔혹한 시스템을 만들어 놓고는 그것을 수백년간 굴렸을지 의문이다. 

간단한 시물레이션 만으로도 만약 조선시대에 

천출과 사이에 나온 자식을 양반까지는 아니라 서자, 아니 평민으로만 만들어놨어도

우리나라 노비의 숫자는 그렇게 급증하지 않았을 것임에 틀림없다. 

율곡은 적자가 없는 상태에서 서자를 봉사손으로 하여 물려주었는데

이는 당대에도 사족들 사이에 욕을 많이 먹었다. 

대동야승 등 당대의 기록들을 보면 율곡이 서자로 대를 잇게 했다고 욕질을 하는 기록이 많이 나온다. 

그리고 율곡이 당대에 서얼허통을 주장한 것도 바로 자신의 서자 때문이 아닌가 하는 혐의도 받았다. 

서자를 적자처럼 대우하는 것도 이렇게 욕을 먹던 시절에 

일천즉천 제도를 바꾼다는 것은 사족으로서 많은 욕 먹을 것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었음에 틀림없고, 

내가 결정했다고 해서 그냥 훌러덩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은 분명하다 하겠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조선시대 족보를 보면, 

적자가 없는 상태에서 서자만 남겨두고, 

양자로 대를 잇지 않은 집안이 있는데, 

이런 집안은 대개 그 서자의 다음대는 족보에 올리지 앟았던 경우를 많이 본다. 

아마도 그 서자의 자손은 틀림 없이 계속 이어지고 있엇을 것인바 (실제로 그 서자의 후손이 백년 후 족보에 다시 등장한다)

족보를 짓는 이들이 그 자손들을 족보에서 빼버리고 그 서자는 "서자"라고 기록하여 남겨 두었으니

(후손이 끊어지면 무후라고 적게 되니 이 경우는 후손이 있는데 서자라고 그 후손을 족보에서 빼버린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그 아버지 되는 이는 이괄의 난에 공을 세워 진무원종공신이었는데도

집안에서 서자로 대를 잇게 하니 아예 그 후손을 족보에서 지워버린 것이다. 

홍길동전을 보면, 

길동의 아버지 홍판서는 길동이 얼자로 태어난 한을 호소하자 처음에는 냉정히 꾸짖다가 

길동이 집을 떠나려 하니 마침내 호형호부를 허락하니 

이때 호형호부를 허락한다는 것은 적어도 그 집안에서는 더 이상 그는 노비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였던 것인 바, 

만약 길동이가 집을 떠나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을 것인가? 

홍판서가 길동에게 호형호부를 허락한 것은 다름 아니라 그가 멀리 떠난다 했기 때문으로, 

집에서 떠나 출세하여 율도국 왕까지 된 길동 정도는 아니라도, 

서자로 집에 사느니 차라리 멀리 세거지를 바꾸어 적자로 세탁할 수만 있다면

한 번쯤 해 볼 만한 시도였겠다 싶다. 

실제로 조선시대 족보를 보면, 여러 가지 정황상 서자가 분명한데도 

적자로 기재되어 그 후손도 계속 족보에 오르고, 

세거지를 바꾸어 다른 고을로 낙향하여 하급 사족일 망정 사족으로 연명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는 명백히 그 아버지가 부정에 못이겨 그 아들을 적자로 세탁하여 멀리 멀리 한 재산 떼어 보낸 것으로 생각한다. 

이런 경우는 족보에서 언뜻 언뜻 보이는 장면이지만,

실제로 조선시대 사회계층을 시물레이션 해보면, 

서자를 적자로 세탁하지 않으면 도저히 불가능한 수치가 확인되는 경우가 있다. 

쉽게 말해 서자 중 그 아버지가 적자로 세탁하여 호적에 올리거나 

아니면 족보에 올리지 않으면 불가능한 숫자가 나온다는 것이니

예를 들어 양반의 숫자는 19세기에 70퍼센트대로 급증하기 전에도 (유학의 경우)

이미 18세기에 상당히 퍼센트가 올라가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는 서자는 무조건 중인으로 떨어뜨려 버리고 양반에서 탈락하는 원칙이 

일정 부분 부정되고 변칙적으로 용인되는 사례가 없으면 달성 불가능한 숫자라 할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서슬 퍼런 서얼금고, 일천즉천의 시대에도

부정에 못이겨 그 자손들을 서자나 천출에서 몰래 몰래 빼주는 아버지가 분명이 존재했다는 뜻이다. 

인정에 기반하지 않은 사회는 결국 조만간 무너지게 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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