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진흥왕 12년(551), 신라가 백제와 합세해 한강 유역을 고구려에서 점령할 때 신라군 수뇌진 8장군 중 한 명이다. 당시 관위는 2등 각찬이었다. 나아가 화랑세기 미진부공 전에는 보이는 비대(比臺)와 동일인물일 가능성이 크다. 臺는 약자로 흔히 台를 쓰는 데다 발음 역시 매우 가깝기 때문이다.
삼국사기 권 제44(열전 제4) 거칠부 열전 : (진흥대왕) 12년 신미(진흥왕 12년: 551)에 왕이 거칠부와 대각찬(大角) 구진(仇珍), 각찬 비태(比台), 잡찬 탐지(耽知), 잡찬 비서(非西), 파진찬 노부(奴夫), 파진찬 서력부(西力夫), 대아찬 비차부(比次夫), 아찬 미진부(未珍夫) 등 여덟 장군에게 명하여 백제와 더불어 고구려를 침공하게 하였다. 백제 사람들이 먼저 평양(平壤)을 격파하고 거칠부 등은 승리의 기세를 타서 죽령 바깥, 고현(高峴) 이내의 10군을 취하였다.
☞비대(比臺)
화랑세기 미진부공 전 : 미진부공(未珍夫公)은 아시공(阿時公) 아들이다. 어머니는 삼엽궁주(三葉宮主)이니 법흥대왕 딸이다. 꿈에 백학을 보고 낳았다. 공은 모습이 아름답고 재주가 많아, 법흥대왕이 총애했다. 비대공(比臺公) 등과 함께 궁중에서 자랐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