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노년의 연구

빈한한 선비? 호적에 그런 건 없다

by 신동훈 識 2026. 5. 9.
반응형

강희맹 독조도獨釣圖, 조선 15세기, 족자비단에 담채, 도쿄국립박물관

 
흔히 우리나라 잡록이나 야승 같은 기록들을 보면

모모 선비가 벼슬은 판서 정승인데 청빈하여 

집에 쌓아놓은 재산이 없어 초가집에 살았지만, 태연자약했다는 이야기를 본다. 

물론 예외없는 원칙은 없으니 이런 이가 없었으리라 장담 못하지만, 

남아 있는 조선시대 호적을 보면, 

그 호적 안에 직역이 대대로 유학호나 그럴 듯한 현직의 관직을 써놓은 집 치고, 

노비 몇 명 정도만 간신히 데리고 있는 집은 단 한 집도 없었다고 이야기해 둔다. 

조선시대 호적처럼 재산 (결국 노비의 숫자가 재산을 말해준다)과 신분이 높은 상호관계를 보이는 경우는 없다. 

대대로 양반이다? 백프로 노비는 최소한 수십명에서 최대 몇백으로 끝없이 이어진다. 

이는 뒤집어서 이야기 한다면, 

그렇게 부를 쌓기 위해선 반드시 양반이어야 했고, 

그렇게 부를 쌓지 못하면 조만간 양반에서 탈락했다는 사실을 의미하기도 한다. 

조선시대 선비? 양반? 대학자? 

전부 집안에는 수백명의 노비가 있었고, 

전답을 산과 내를 경계로 가지고 있었다는 말이다. 

이 말은 평민이나 중인이 부를 축적하여 토지를 집적하고 

노비를 사 모으기 시작한 후 어느 시점에는

반드시 대대로 양반 지위를 걱정없이 유지할 수 있는 사회적 신분을 확보해야 한다는 뜻과 같다. 

향촌의 사족들이 왜 대과 급제는 없고 소과도 간신히 하며 입격하여 백패나 얻어 두는 상황이면서도, 

자기 동네 청금록, 향안은 그렇게 악착같이 유지하려 했겠는가. 

안정적인 양반의 지위 없이는 

집안 재산 유지가 안되었기 때문이다. 

흔히 양반이 되면 재산은 따라 왔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조선시대 양반 지위는 대대로 이루어진 재태크의 최종산물이지, 

조선시대 정승 해봐야 녹봉이 대단치 않아

말이 좋아 녹봉으로 먹고 사는 녹사이지

녹사만 해서는 절대로 양반 자리 유지 못한다. 

조선시대 양반 하는 이유? 사족을 하는 이유? 글을 읽는 이유? 문집을 남기는 이유? 

전부 전답과 노비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 related article ***


만석지기들의 가난 타령, 퇴계와 서애의 경우

만석지기들의 가난 타령, 퇴계와 서애의 경우

퇴계는 부자였다. 그것도 열라리 부자다. 장개 두번 잘가서 더 부자됐다. 장인한테 물려받은 논밭떼기가 천지였다. 한데도 틈만 나면 "나는 묵을 게 없어 가난하다"는 타령을 늘어놨다. 서애 류

historylibrary.net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