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뭐 요새 고고학 관련 소식은 주종이 배포 기관에서 써준 대로 긁어다 붙이는 수준이라 한심하기 짝이 없어 이럴 거 같음 언론이 왜 존재하는지 모르겠다.
전남 함평군 발 함평 진양리 화동고분군 발굴 성과도 그러해서,
함평군에서는 마치 자기네가 직접 발굴한 것처럼 해서 보도자료를 포장했으니,
그럴 리는 없고 관련 보도를 읽어봐도 도대체 어느 기관에다 의로해서 조사했는지 가장 기본하는 정보조차 보이지 아니한다.
암튼 이에 의하면 보존 정비계획 수립과 역사문화자원 활용을 표방하며 어느 기관이 발굴을 수주해서
지난 10월 이래 개중에서도 1호분이라고 이름한 무덤을 파제낀 결과(보존정비 수립하는데 왜 파나? 암튼)
첫째 이 무덤 전반하는 명세서를 확보했으니 사람으로 치면 키 몸무게 전반하는 건강 상태를 확인했다는 것이니,
이건 건강검진할 때 도입부에 처음 실시하는 피뽑기까지 과정과 똑같아서
봉분 지름 16m 정도로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은 둥그니,
그 내부는 무덤방[玄室]과 출입시설[羨道]을 갖춘 전형하는 백제(사비)시대 굴식돌방무덤[횡혈식 석실분]임을 확인하되,
무덤방은 봉분 하나에다가 두 개를 쌍둥이처럼 썼다니 부부를 묻었거나 아니면 일가족 무덤으로 썼을 것이다.
뭐 방 하나에 쳐박지 왜 돈 많이 들어가는 저런 식으로 만들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놉을 했으면 두 배로 노임이 들고 막걸리가 얼마야?
그만큼 돈이 많은 사람이니 저러지 않았겠는가?
품과 무덤 구조 혹은 그 껴묻거리는 비례하기 마련이다.
이 평범성을 이제는 심각히 접근할 때다.
왜?
실제로 그 껴묻거리 양상을 보면 이곳에 묻힌 사람 보통내기 부자가 아니었다.
동네 이장 혹은 면장 혹은 조합장 혹은 지서장을 뛰어넘은 그 무엇이다.
초대형 지주이거나 이곳 상업을 독점한 토호였을 것이다.
무덤방은 대형 판석을 다듬어 만들었다자나? 돈이 얼마야?
이를 조사단은 당시의 정교한 석재 가공 기술의 일면을 살펴볼 수 있다고 했다는데
웃기는 소리.
쩐주가 돈이 많으면 뭘 못하겠는가?
이를 정교한 석재 가공기술로 볼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제작 의뢰한 사람 주체로 봐야 한다.
이런 돌방무덤은 거의 백퍼 도굴됐는데, 이곳 역시 그런 양상이 두드러진다.
다만 그런 가운데서도 건진 물건이 중요해서
조사단에서는 두 돌방을 각각 1호와 2호라는 번호를 붙여 구분한 모양인데,
아마도 1호 돌방일 듯한데,
그에서는 출입구 쌓인 흙(아마 도굴 과정에서 쌓였거나 그에 따른 결과일 것이다)에서 육각형에 꽃무늬를 새긴 금동판 쪼가리가 드러났다.
이 금동판 생긴 모양새 보면 거의 금동관 같다.
실제 조사단에서도 인근 함평 신덕고분 출토 금동관과 유사함을 든다.
봐라!
금동관을 쓸 정도로 묻힌 사람 혹은 그 가문은 떵떵거렸지 아니한가?
2호 돌방에서는 길이 99cm인 큰 칼과 은실로 용무늬를 그려 넣은 칼집 장식이 드러났다.
이걸로 보면 두 돌방을 차지한 사람은 부부 관계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한 부와 권력을 세습한 부자인가?
그 각각하는 무덤방에는 그네들 부부가 묻혔을까?
암튼 기타 이것 말고도 금동제관못과 청동족집게, 은제꾸미개, 흑옥과 같은 물건들이 나왔다.
몽땅 털리고도 저런 부스러기를 남긴 데다.
이 무덤 만든 시기를 언제로 봤는지 모르겠지만
사비시대 백제를 운운했으므로 6세기 중반 이래 7세기 중반이 되겠다.
이럴 때는 6~7세기 어간이라 하면 된다.
뭐 이러고도 계속 마한 타령인데, 그러겠지?
이때는 완전히 백제화한 뒤라고?
에라이, 마한이 어딨어?
나아가 이 무덤도 그렇고 이렇게 당시 중앙을 기준으로 백제 역시 지방 곳곳에 이런 떼부자 무덤이 포진하는데,
고고학은 그 부와 권력의 원천을 파헤쳐야 한다.
매양 안이하게 해상 거점 무역 장악 이런 거지 발싸개 같은 설명은 집어치고,
그 해상 무역이 뭔지를 밝혀내야 한다.
하다못해 고등어 장사를 했는지 멸치어장을 했는지 이런 구체하는 양상을 밝혀내야 한다.
어케?
찾아보면 방법 다 있고 돌파구 있다.
안 해 보니 모를 뿐이지 한 번 해 보면 거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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