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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 朝鮮列傳 : 元封 2년(BC 109)…그 해 가을에 樓船將軍 楊㒒을 파견해 齊로부터 배를 타고 渤海를 건너게 하고 군사 5만으로 左將軍 荀彘는 요동에서 출격해 右渠를 토벌하게 했다. …좌장군이 이미 양군을 합해 맹렬히 조선을 치니, 조선의 相 路人과 相 韓陰과 尼谿相 參ㆍ將軍 王唊이 서로 모의하기를 “처음 누선에게 항복하려 했으나 누선은 지금 잡혀 있고 좌장군 단독으로 將卒을 합해 전투가 더욱 맹렬해 맞아서 싸우기 두려운데도 왕은 항복하려 하지 않는다.” 하고 [韓]陰ㆍ[王]唊ㆍ路人이 모두 도망해 漢나라에 항복했다. 路人은 도중에서 죽었다. 元封 3년(BC 108) 여름, 尼谿相 參이 사람을 시켜 조선왕 右渠를 죽이고 항복해 왔으나, 王險城은 함락되지 않았다. 죽은 우거의 大臣 成已가 또 [漢에] 反해 다시 軍吏들을 공격했다. 좌장군은 우거의 아들 長降(䧄)과 相 路人의 아들 最로 해금 그 백성을 달래고 成已를 죽이도록 했다. 이로써 드디어 조선을 평정하고 四郡을 설치했다. 參을 봉해 澅淸候로, 陰은 荻苴候, 唊은 平州候, 長은 幾候로 삼았으며, 最는 아버지가 죽은데다 자못 공이 있었으므로 溫陽候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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