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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詩 & 漢文&漢文法

소리 없는 곳에서 듣는 우레소리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9. 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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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계절의 노래(251)


무제(無題)


[現代中國] 루쉰(魯迅) / 김영문 選譯評 



루쉰



온 사람들 검은 얼굴로

쑥덤불에 묻혀 사니


어찌 감히 슬픈 노래로

대지를 흔들 수 있나


마음은 드넓게

광활한 우주와 이어져


소리 없는 곳에서

우레 소리 듣는다


萬家墨面沒蒿萊, 敢有歌吟動地哀. 心事浩茫連廣宇, 於無聲處聽驚雷.



루쉰




루쉰의 첫 번째 필명은 알검생(戛劍生)이다. 창과 칼을 든 투사라는 의미다. 만청(晩淸) 지식인들의 상무정신과 한족 중심주의를 잘 보여주는 필명이다. 


안으로 만주족 조정의 부패와 밖으로 제국주의의 침략에 직면한 중국 한족 지식인들은 양무운동, 변법유신운동, 혁명운동을 통해 오랑캐 만주족 황실을 타도하고 한족 중심의 새로운 정부를 건립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웨이위안(魏源), 궁쯔전(龔自珍), 캉유웨이(康有爲), 량치차오(梁啓超), 쉬시린(徐錫麟), 추진(秋瑾), 장빙린(章炳麟) 등 개혁가들은 중국의 문약함을 극복하려고 상무정신을 강조했다. 


초기의 루쉰도 이의 영향을 받았다. 이런 상무정신을 바탕으로 그가 난징에서 광물에 관한 신학문을 배운 일이라든지, 일본으로 가서 의학을 전공한 일은 모두 당시 중국 개혁적 지식인의 일반적인 경향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루쉰은 센다이의학전문학교에서 환등사건을 겪은 후 소위 상무정신의 한계를 절감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당시 미생물학 강의 짜투리 시간에 루쉰은 그의 일생을 좌우할 정신적 충격을 경험한다. 중국 땅에서 일본군에게 총살 당하는 중국인을 중국인들이 구경하면서 박수를 치고 환호하는 슬라이드 장면을 통해 루쉰은 자신이 견지하고 있던 상무정신이나 자신이 배우고 있던 의학기술이 육체적 강함만을 추구하는 껍데기 학문에 불과하다고 깨닫는다. 


“무릇 우매한 국민은 체격이 아무리 온전하고 아무리 건장하다 해도 아무런 의미 없는 구경거리나 구경꾼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병사하는 사람이 아무리 많더라도 그걸 꼭 불행하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우리가 제일 먼저 착수하려 했던 것은 그들의 정신을 개조하는 일이었다.” 


양무운동으로 들여온 서양의 무기와 신기술, 유신운동으로 획득한 입헌군주제, 혁명운동으로 성취한 중화민국이라는 공화제는 모두 실패했다. 황제라는 명칭은 총통으로 바뀐 데 불과했고, 중국 사회의 식인 구조와 중국인의 정신승리법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그건 난공불락의 철옹성이었다. 



전쟁기념관. 상무정신의 표상으로 세운 것이다.



이 지점에서 루쉰은 ‘참인간 세우기[立人]’에 나선다. 인간 정신이 바로 서지 않는 한 육체의 건장함과 제도의 변혁은 한갓 신기루에 불과하다고 인식한 것이다. 루쉰과 량치차오 그리고 루쉰과 마오쩌둥(毛澤東)이 바로 이 지점에서 갈라선다. 


그러나 루쉰의 이 꿈은 너무나 근본적이고 너무나 철저해서 이루기 어렵다. 루쉰의 소설을 감싸고 있는 절망적이고 슬픈 어둠 및 루쉰의 잡문을 지탱하고 있는 견강한 전투 정신은 이처럼 근본적이면서도 비타협적인 그의 인식을 잘 보여준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검은 얼굴로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우리 민초, 국민, 서민, 민중, 인민들의 비인간적 삶은 얼마나 개선되었는가? 대지를 뒤흔드는 슬픈 노래가 과연 존재하기나 하나? 



전쟁기념관



루쉰은 소리 없는 곳에서 우레소리를 듣는다고 했지만 지금 우리 현실은 모든 것이 적막강산으로 변해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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